1년을 나름 바쁘게 지냈다. 백수의 삶이 과로사 직전에서 잠시 멈추었을 뿐. 그래서 브런치와는 잠시 인연을 끊었다. 굳이 이유를 대라고 하면 잘 쓰지도 못하는 글을 부여잡고 끙끙거리며 늦은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밤의 무게를 느끼는 순간, 별안간 찾아온 초대하지 않은 손님, 이석증!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면서 내 몸이 중심을 잃을 때 난 세상과 작별하는 줄 알았다. 처음 겪는 지구회전이 나를 회오리 속으로 밀어 넣는 줄 알았다.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노화현상이든, 면역력이 떨어진 탓이든 늦은 밤 시간의 여백을 난 차지 할 수가 없었다. 가족 누구도 나의 사색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커서를 지켜낼 여력이 없었다. 이렇게 이석증이라는 병은 가장 먼저 글쓰기와의 이별을 재촉했다.
이러한 이유로 잠시 은퇴 후의 일상에서 글쓰기와 멀어졌지만 시간은 의외로 빠르게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지나갔다. 돌아보니 지난 한 해 동안은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으로 동네의 커뮤니센터를 자주 드나들었다. 초보 수준의 오카리나와 보테니컬 그림 그리기를 배윘다. 틈틈히 파크골프 운동을 하며 자유로운 여가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이석증이 재발되지 않아 정상적으로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필라테스를 하고 걷기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보강하며 한 살씩 더해지는 나이에 근육을 붙잡아 두려고 노력하였다.
일 년 동안 이렇게 소소한 일상의 삶을 살면서 은퇴 3년 차는 자연스럽게 또 다른 세상에 적응하고 있었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땐 여행을 하며 삶을 환기시키곤 하였다. 주말이면 바다나무 농장에 가서 흙과 함께 자연인의 삶을 살았다. 어쩌면 나는 은퇴 후의 내 삶의 지침서를 나만의 방식으로 집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족함도, 넘치지도 않은 일상 속에서 그저 오늘이 내 인생의 최고이며, 마지막 날인양 하루를 살아내는 나만이 사용할 수 있는 인생 교과서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나라가 탄핵으로 시끄러울 때쯤 지난해 치앙마이 한달살이를 끝내고 돌아가면서 다시 오겠다고 끊어놓은 비행기 티켓을 들고 또다시 길을 나섰다. 잠시 현실도피 같은 죄책감이 내발목을 잡았지만 예정된 계획이었기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번에는 두 달 이라는 여정을 소화해 보기로 하였다. 벌써 이곳에 온 지 보름이 지나간다. 기록되지 않는 것은 기억되지 않기에, 내 기억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록해 본다.
치앙마이에서는 어젯밤 새해를 맞이하는 축포가 밤새 이어졌다. 새해는 모든 사람들이 축복받기를 소망해 보며 우리나라가 어서 빨리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길 기도해 본다. 더 이상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다시 또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