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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나라 우리 동네

익숙한 게 편안하다.

by 바다나무

올해도 지난해 묵었던 동네에다 숙소를 정했다. 며칠만 여행하다 갈 것 같으면 조금 비싸고 고급스러운 곳에다 숙소를 정하겠지만 한 달 이상을 묵게 될 상황이라 아무래도 가성비가 좋은 쪽을 택하게 된다. 물론 나이가 젊어 향락과 변화무쌍함을 추구했더라면 올드타운이나 님만해민 쪽에 거주지를 정했을 텐데, 편안하고 안정적인 것을 원했던 터라 조금은 시골스런 싼티탐에 묵을 장소를 정했다.


이곳은 현지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고 다행히 시기적으로 일찍 예약을 했기에 투베이 호텔을 저렴하게 렌트할 수 있었다. 싼티탐이라는 곳이 이름 그대로 싼 티가 나지만 내가 생활하기는 아주 익숙하고 편안한 동네다. 주변에 커다란 재래시장인 타닌시장이 있고, 경치가 좋으며 커피값이 저렴한 "드솟 카페"가 있어 한 달이라는 시간 속에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곳이다. 작년 한 달 동안 묵었던 곳이라 지리도 다소 익숙하고 몇 곳의 단골 가게도 있어 무엇보다 낯선 곳에서의 두려움이나 어색함이 없었다. 한 번의 경험이 이렇게 친숙함으로 다가들 줄이야.


우선은 익숙함으로 지난해 관광을 했던 편안한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치 내가 없는 동안 얼마나 변했는지를 점검하듯, 한국에서의 시끄러운 마음을 달래고자 먼저 치앙마이대학 안의 앙깨우 저수지를 찾았다. 사람들이 많이 산책하며 명상을 즐기는 곳이기도 하다. 잠시 호수를 바라보며 멍 때리기도 하다 벤치에 누워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감고 공기 중의 내 호흡을 느껴보기도 했다. 한국을 떠나왔다는 느낌이 조금씩 피부에 다가들었다. 오기 전까지 TV속에서 계속되던 온갖 시끄러운 잡음들이 저 멀리 호수 속으로 침잠했다.


한참을 치앙마이대학 안을 산책하다 커피 한잔을 마시러 카페에 들렀다. 푸르름과 함께 비취색 호수가 있는 "NO 39"카페, 가운데 호수를 둘러싸고 자연스럽게 앉아 커피를 마시는 곳이다. 라이브로 음악도 들려주는 감성카페로 치앙마이를 오는 사람들에게 꽤나 알려진 곳이다. 변한 것이 있다면 관광객들이 카페구경만 하고 음료를 마시지 않고 돌아서는 탓인지 이번에 방문했을 때는 출입문을 카운터 있는 쪽에서 통제하고 있었다. 료부터 시키라는 의미리라.


앙깨우 호수의 물도, 카페 호수의 물도 또다시 찾아온 나를 평온하게 맞아 주었다. 그냥 편히 쉬었다 가라고. 이곳에 오니 사람들이 전혀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졌다. 커피 한잔의 수혈이 물멍으로 몽롱해져 가는 정신을 붙잡아 주었다. 퇴직을 하면서 시간이 지남에 력이 저하될 거라는 불안감에 몇 년 동안은 바쁘게 세상구경을 하며 자유로운 삶을 아야겠다고 계획었다. 언제, 어떤 상황들로 인해 계획이 변경될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별 무리 없으니 감사할 뿐이다.


한참 지난 한 해를 기억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니 배고픔이 느껴졌다. 다행히 이번에는 차량을 렌트하였으니 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운전이 조심스러워 택시를 타고 다녔더니 아무래도 다소 불편한 감이 있었다. 이제 차도 있으니 지난해 가보지 못한 구석구석을 겨보려 한다. 제주 한 달 살기에서 처럼.


오늘은 살짝 지난 추억들을 더듬으며 다시 돌아온 치앙마이에 가볍게 신고식을 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쌀국수와 쏨땀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했다. 일 년 전 입맛이 되살아 났다. 뜨끈한 국수국물이 웅크렸던 마음을 녹아내렸다. 한국을 떠나오면서 불편했던 마음들이 연일 들려오는 뉴스에서 자유롭게 벗어날 수 없었던 탓이었을까? 이제 조금씩 발걸음을 내디뎌 보리라.


※ 혹시 모를 여행자를 위해 다녀온 장소를 기록해 본다.( 싼티탐 "카페 드솟", 치앙마이대학 "앙깨우 저수지", "No39" 카페. "반캉 왓" 예술인 마을. Martin's Kitchen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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