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형님에게서 벗어나기로 했다.

이제야 하는 세대분가!

by 바다나무


눈이 많이 내린다. 그렇지만 시골에 꼭 다녀와야 할 것 같아 길을 나섰다. 오늘은 시부모님 산소에 가기 위해서다. 시골의 황량한 들판에 내리는 눈발은 더 차고 왠지 쓸쓸했다. 동네는 겨울이라 사람의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겨울이 되면 시골마을은 한적하다. 몇 달 전까지 사과로 빨갛게 물들었던 온 동네가 눈꽃 나라가 되었다. 시집올 때만 해도 이런 날이면 마을 어귀를 들어서면 동네꼬마 녀석들이 눈싸움을 하거나 마을 앞 꽁꽁 언 개울에서 썰매를 탔다. 오늘은 그저 어느 집에 매어놓은 개소리만 가끔씩 들릴뿐 적막하다. 남편은 본인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 그런지 골목의 높고 낮음까지 훤히 알고 있어 적당한 속도로 눈길을 안전하게 운전한다.


다음 주면 명절이다. 몇 년 전 시아주버님이 돌아가시고부터는 제사를 산소에서 지낸다. 형님이 연세가 많은 데다 몸이 약하고 자주 편찮으신 상황에서 제사를 준비하는 게 남편은 불편했나 보다. 형님성격에 병이 나더라도 못 지낸다고 말씀하실 분은 아니고, 그렇다고 둘째 아주버님이 계시는데 우리가 지낸다는 것도 조심스럽고, 이래저래 제사는 우리나라 문화중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로 남는 가족행사다.


결국 식구들이 모여 회의를 열어 앞으로의 제사는 산소에서 지내기로 하였다. 결정을 하고 난 남편은 왠지 명절을 지내고 친정에 오는 누나(시누이)들에게도 알려야 할 것 같아 연락을 했다. 다들 다른 집안의 며느리들로 제사의 힘듦을 느끼고 있던 터라 다소 서운한 감은 있지만 막냇동생이 중간에서 잘 조정해 주었다고 격려해 주었다.


올해부터는 명절 전 주에 성묘를 다녀오려고 한다. 명절이 되면 교통이 복잡하거나 시집간 딸이 친정에 다니러 오니까 우리도 형편에 맞게 날짜를 조정하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표면화된 이유이고 이제 시댁에서 진정한 독립을 하려고 기 때문이다. 형식적인 세대분가는 오래전에 이루어졌지만 마음속으로는 난 아직도 시댁에서 분가하지 못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형님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형님을 조카들에게 온전히 내어 드려야 할 것 같다.


시댁에 가보니 대문은 열려 있는데 형님은 계시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드려보니 마을회관

(경로당)에 계신다고 한다. 한동안 코로나로 인해 문이 닫혔다고 안 가시더니 이제는 괜찮은 모양이다. 형님께는 산소에 들렀다 잠시 후 회관으로 간다고 말씀드리고 산소로 발길을 옮겼다.


산소는 시아버님, 시어머님, 시아주버님 외에도 다른 시댁 어르신들이 함께 계시는 종중묘이다. 날씨 좋은 날 올라가면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양지바른쪽에 위치해 있다. 오늘은 무덤마다 눈이 희끗희끗 쌓이고 있었다. 부모님 산소 앞에서 절을 두 번 올리고 술을 따라 드렸다. 언젠가 예초기가 없어 한나절을 가위로 벌초를 해서 손가락에 물집이 잡혔던 산소이다. 눈이 와서 춥지 않냐고 여쭈어봐도 말씀이 없으시다. 한 달 뒤 남편 퇴임식 끝나고 다시 오겠다고 고(告)하고 내려왔다. 오면서 조금 아래에 자리 잡은 시아주버님 묘소에도 들러 잠시 예를 표하고 눈이 내린 산길을 걸어왔다. 늘 그랬듯이 산소에 갔다 올 때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무언가 두고 오는 사람처럼... 함께 가야 하는데 우리만 가는 것처럼...


시댁식구들은 내게 너무나 따뜻한 분들이었다. 방학이면 나는 남편과 일주일 이상씩 이곳에서 머물렀다. 불편한 시댁이지만 불편하지 않게 해 주셨다. 도시에서 자란 철 모르는 며느리를, 동서를 진심으로 아껴 주셨다.

남편이 8남매 중 막내아들이라 시어머님은 자상한 할머니 같으셨고, 어려서 부터 남편을 뒷바라지해 주신 형님은 엄마 같으셨다. 직장 생활하는 동안의 우리 집 먹거리는 형님이 지금까지 제공해 주셨다. 둘 다 새로운 곳으로 발령 났을 때 딸도 돌보아 주셨다.


오죽하면 여조카(형님딸)가 "작은엄마는 우리 엄마 큰딸이야!"라고 했을까? 형님은 이 나이 될 때까지 막내동서인 나에게 지극정성이시다. 예로 여조카가 직장을 안 다닐 때 당신 딸은 시간이 여유가 있으니 직접 까서 먹으라고 통마늘을 주시고, 내게는 바쁘다고 곱게 빻은 마늘을 하나씩 먹기 좋게 칼집을 내어 얼려서 주셨다. 늘 고맙게 생각한다. 친정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처럼 의지했다. 퇴직을 하고 연로하신 형님과 맛있는 것도 먹고, 온천도 가고, 여행도 가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또한 내 버킷리스트에 있다.


형님이 계시는 마을회관에 들렀다. 연세 드신 동네분들이 몇 분 계셨다. 모두 얼굴이 낯익은 분들이시다. 형님께 명절에 못 와서 미리 들렀다 말씀드리고 기다리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친구분들과 함께 심심할때 드시라고 준비해 온 간식을 회관에 두고 나왔다. 그러고 보니 아버님 때문에 경로당에 가끔 간식을 챙겨 드리고는 꽤 오랜 기간 발길이 뜸했던 것 같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부모님 대신 형님이 경로당에 계신다. 형님은 나의 부모님이시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셨어도 형님이 계시는 한 나는 시댁을 외면할 수 없다.


시댁 식구들

해는 중천에 떴건만

모처럼 휴가 온 막내며느리

아직도 꿈속을 헤맨다.

행여나 시끄러워 잠 설칠까?

행여나 자리 바뀜 하여 잠 못 이룰까?

모두가 사뿐한 걸음걸이 한다.

직장 생활하는 며느리

무에 그리 대수던가?

제 배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할 뿐인데,

이렇듯 시댁식구들 배려함에

그저 숙연해질 따름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마주 함에

아침잠 없이 설쳐대는 손주 녀석

혹여라도 에미잠 깨울까 노심초사다.

시모는 꾸부정한 몸 들이밀어

엉거주춤한 모양으로 손주 녀석 등에 업고

자부의 게으름을 모르는 척한다.


도심의 생활에 지쳐 보여

오늘의 휴식이 안식이 되길 바라며,

갖은 푸성귀로 조반 지어

상보 덮어 조용히 방 어귀에 밀어 두고

몸뻬바지 입고 호미자락 메고

형님은 동서 방에서 멀어져 들로 나가신다.

한잔 술 얼큰히 취해 옷매무시 풀려 가지고

모처럼 온 손주 녀석 준다고

반쯤 녹은 아이스크림 손에 들고서

십리 길을 행보하신 시아버님!

삽짝 거리부터 고래고래 소리치신다.

얘야! 할아비가 느그 좋아하는 아이스께끼 사 왔다!”

.


매거진의 이전글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