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을 걸으며 꿈을 찾아간다.

제주 살기 14.

by 바다나무

꿈이 있었다. 아주 작고 소박한 꿈. 이것을 버킷리스트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다소 유치한 감이 있어 킷리스트에 넣지 않았다. 오늘 그 꿈을 이루었다. 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꿈을 꾸어 본 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니 다소 쑥스러워 웃음이 나고 민망해진다.


묵었던 숙소를 체크 아웃하고 다음 숙소에 체크인하기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가는 길에 옛 추억을 되살릴 수 있다는 추억의 빵집이 있다기에 들러 수제 햄버거를 두 개 샀다. 그 옛날 먹성 좋던 여고시절 자율학습시간에 선생님 몰래 야금야금 한입씩 베어 먹고 책상밑에 감추었던 추억의 "사라다 햄버거"이다. 빵가게 문을 여는 순간 추억에 사로잡혀 정겨움에 매점으로 같이 뛰어갔던 옛 친구들이 떠올랐다. 어디선가 다들 잘 늙어가고 있겠지.


서귀포에서 성산 쪽으로 이동하는 중에 우리는 제주 올레길 5코스를 걸었다. 5코스는 "남원큰엉"이라고 하는 곳부터 "쇠소깍 "까지 가는 올레길인데, 우리는 "망창포"에서 "태웃개"를 지나 "한반도 포토존", "호두암", "유두암"을 거쳐 "남원큰엉 입구"까지 거꾸로 걸었다. 혹자는 이 길을 대한민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라고도 한다. 키가 큰 동백나무로 두른 마을 풍경이 아름다웠고, 울창한 숲을 지나 바다와 만나는 해안길이 너무 예뻤다. 걷는 내내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가 발걸음을 경쾌하게 했고, 넓은 바다가 가슴을 탁 트이게 해 주었으며, 울창한 숲이 눈과 코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배낭을 멘 외국인,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엄마와 딸, 젊은 연인들, 나이 든 부부,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이 바다에 취해, 풍경에 취해 사진을 찍으며 올레길은 걷고 있다. 저 멀리 기암절벽 아래에는 세월을 낚는 풍류객도 인다. 예쁜 동백숲을 지나고 울창한 대나무 숲을 지나면 커다란 나무 사이로 밝은 햇살이 새어 들어온다. 그곳을 지나면 또 넓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냥 멋지다. 좋다. 행복하다. 더 이상의 수식어로 표현할 길이 없다.


풍경에 취해 걸어가다 잠시 쉬기로 했다. "남원큰엉 입구"다. 정자에 앉아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배낭에 넣어둔 아까 산 수제 햄버거를 꺼내 먹었다. 그 옛날 먹던 담백한 맛이다. 커피가 생각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자에서 바라보니 약간 비켜선 어둑한 건물의 옆모습이 카페 같다. 오늘 여행코스에 들어있지 않은 우리의 정보망을 벗어난 카페라 아이스커피 한잔만 테이크아웃하여 정자에서 목축임만 하기로 했다. 차가 반대쪽에 있어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니까.


카페로 들어갔다. 어둑한데 뭔가 화려하다. 창쪽의 스탠드 의자에 젊은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있다. 그 너머 윤슬에 바다가 아름답게 보인다. 뭔지 모를 재즈음악이 흘러나온다. 다소 신나는 음악이다. 카운터에 아이스커피 한잔을 부탁해 놓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카운터 옆에는 주인장이 쓴 책도 있고, 오지지역을 여행하면서 찍은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이 있는 앨범도 있다. 책을 펼쳐서 읽다 보니 좀 더 읽고 싶어졌다. 아니 이런 카페 분위기를 연출하는 주인장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다. 정자에서 기다리고 있을 남편에게 전화해 이곳에서 잠시 머물다 가자고 하였다. 오늘의 카페는 이곳이 당첨이다.


카페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1층은 식사와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고, 2층에는 색연필, 크레용, 펜이 준비되어 있어 그림을 그려보거나 글씨를 쓰는 공간이 따로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편안한 소파가 마련되어 반쯤 누워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애견카페라 고양이도 있고 뭔가 자유분방했다. 나는 2층의 야외 테라스로 갔다. 당초 테이크 아웃을 하려던 것이었기에 실내에서는 마실 수 없어서 2층에 자리를 잡 것이다.

내 꿈은 여기부터다. 바로 앞에 바다가 보였다. 편안한 나무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하늘을 보았다. 청명한 하늘에 맑은 구름이 떠 다닌다. 음악이 귀를 즐겁게 해 준다. 간간히 파도소리도 들린다. 작가의 삶이 궁금해 가지고 온 흥미로운 책이 있다. 앞에는 따뜻한 향이 나는 커피가 있다. 상큼한 봄바람은 코 끝을 스친다. 나의 지기도 옆에 있어 든든하다. 바다, 하늘, 음악, 하얀 구름, 파도소리, 커피, 남편, 지금으로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최적의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다. 한 번쯤 이런 파라다이스 같은 곳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것이 내 꿈이다. 완벽했다. 다소 유치할 진 몰라도.


한 시간 정도 머물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곳의 시그니처 음식인 피자를 햄버거 배가 불러 못 먹어 본 것이 아쉬웠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돌아오면서 곱씹어 생각해 보니 유독 내가 이 카페에 매료되었던 것은 커피를 기다리면서 읽은 주인장이 쓴 책의 서문 지도 모른다. "이 글은 나의 서툰 여행의 기록이다. 누구에게 길 떠나는 것에 대해 배워 본 적 없고, 요구받은 적 없는, 순수하고 서툰 여행의 기록이다"라는 이 말이 나를 주저 물러 앉게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제주여행을 하며 을 쓰고 있다. 아주 어설픈 글이라 를 대변하 이 글귀에 동질감을 느꼈으리라.


카페의 주인은 사진작가였고 산행전문가였다. 그가 쓴 책에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교감하고, 자신을 재발견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만난 카페에서 나는 파랑새를 찾아가는 꿈을 이루었고, 그 카페의 주인장이 쓴 글에서 앞으로의 나의 꿈을 이루어 는 힘을 얻는다. "모든 풍경은 단 한 번뿐이다"라는 말이 삶의 의미로 가와 힘과 용기를 더한다.


오는 길에 들른 현지인 맛집에서 몸국을 먹고 또 다른 제주를 맛보다. "몸"은 " "해초"를 의미한다. 새로 옮긴 숙소가 반짝이는 불빛으로 우리를 반긴다. 야경이 아름답다. 늦은 시간 못 먹고 돌아온 피자가 눈에 밟혀 부대시설에 있는 카페에서 야식으로 즐겨본다. 옛 추억의 음식도 먹어보고, 다른 인생 2막의 주 작고 소박한 꿈도 롭게 꾸어본다. 꿈은 살아가는 힘이다.


※ 혹시 모를 여행자를 위해 다녀온 장소를 기록해 본다.(오뚝이 빵집. 올레길 5코스. 로빙화. 가시식당. 덕천연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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