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날아온 철새를 가까이서 만났다. 뭐든지 제철에 어울리는 일들을 마주할 때 흐뭇함에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니 이 계절에만 볼 수 있는 귀한 손님을 맞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제철에 나는 채소와 과일의 섭취는 의사가 권장하는 식생활이다. 건강해지기 위해 우리의 몸이 스스로 추구하는 타고난 지혜이다. 제철에 나는 싱싱한 과일과 채소는 그 시기에 꼭 필요한 영양소를 제공하여 계절적 활력을 더해 준다.
겨울철 귤, 이른 봄 딸기, 초여름의 토마토, 한여름 참외·수박, 늦여름의 포도·복숭아, 가을이 되면 사과·배·감 등 제철에 먹는 과일은 우리의 입맛을 새롭게 한다. 냉이, 아욱, 쑥갓, 상추, 두릅나물 같은 싱싱한 제철 채소는 계절의 향기를 더하여 새로운 기운을 돋워 준다.
제철 음식을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추억이 누구나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다. 늦여름 시장 입구 노점에서 방금 산 싱싱한 포도알 하나를 따서 아내의 입에 넣어 주며 웃던 일, 산골 마을을 지나다가 향긋한 더덕 향에 고개를 한번 돌렸던 기억 등…. 철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과일과 채소는 우리의 정서를 다채롭게 끌어낸다.
요즘은 온실 재배로 인기 많은 꽃은 사시사철 화원에서 쉽게 살 수 있지만 들판에 펼쳐진 야생화 무리가 철 따라 변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큰 즐거움이다. 산수유와 개나리를 보며 봄날의 희망이 솟고, 찔레꽃·아카시아·코스모스 옆에서 이루어진 시절 인연을 떠올릴 때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행복한 추억 한 조각을 건져 올리는 일이다.
이러한 감흥은 제철 곤충과 동물을 맞이할 때도 그렇다. 햇살 따라 떠도는 노랑나비, 귀가 먹도록 울어 대는 도심 가로수의 여름 매미, 한여름 밤 개구리들의 합창, 동네 뒷산의 뻐꾸기 소리는 세상의 건조함 속에 잠시 마음을 적셔 주는 청량제다.
오늘 경안천 하류에서 겨울 철새인 고니를 만났다. 시베리아에서 3,000킬로미터를 날아온 아주 귀한 손님이다. 잠시 산책하러 경안천을 찾았는데 뜻하지 않게 보기 드문 고니 무리를 보니 가벼운 흥분의 물결이 가슴을 흔든다. 보물찾기한 느낌이다.
갈대숲 사이에 긴 목을 꼿꼿이 세우고 유유히 떠 있는 고니는 참 도도해 보인다. 이 백조를 떠받치는 자존감이다. 날개를 퍼덕이며 수면 위를 날아오를 때의 몸짓은 그 도도함을 충분히 용서할 만큼 우아하다. 일본 항공사 로고가 고니를 형상화한 이유를 이해할 것 같다. 고니 옆에 색깔이 짙고 오리처럼 보이는 작은 무리의 새는 기러기라고 카메라 옆의 사진작가가 알려 준다. 고니의 우아함과 대조적으로 귀여운 모습이다.
고니가 비상(飛上)할 때 거대한 망원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에서 셔터 음이 연신 터져 나온다. 사진작가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늘어놓은 시간의 그물에서 결실을 건져 올리는 손동작이다. 우리가 달력에서 보는 철새 사진은 이렇게 추운 날 꽁꽁 언 사진작가의 손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 순간의 아름다움은 긴 시간 고통의 결과이다.
오늘 제철 동물인 고니와 기러기를 보고 나니 왠지 횡재한 것 같다.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1년 중 단지 한두 달 정도 잠깐 볼 수 있는 현장을 목격하였다는 흐뭇함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때가 되면 그 시절에 어울리는 일이 있다. 아름다운 고니와 기러기 무리를 마음껏 본 일은 새해 첫 달에 어울리는 일이다. 희망과 기대를 품어 올리게 한다. 사람도 때가 되면 누군가에게는 제철 동물처럼 기대와 희망을 주게 되지 않을까? 나는 어떤 사람에게 겨울철 고니처럼 설레게 하는 사람으로 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