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박쥐라는 동물이 방송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숙주로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박쥐는 하늘을 나는 유일한 포유동물이다. 비행할 때 40도까지 상승하는 체온 때문에 박쥐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하더라도 바이러스가 잘 번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감염 증상이 없어 박쥐 자신도 모르게 주위에 바이러스를 전파하게 된다. 박쥐가 메르스, 사스, 에볼라, 코로나 등 여러 가지 신종 전염병을 옮기는 바이러스의 중간 숙주로 지목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박쥐는 생김새도 괴기하고 새도 짐승도 아닌 것으로 취급되어 인간들에게 별로 호감을 받지 못한다. 그러한 박쥐에게 친근감을 갖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 즐겨 보았던 만화 영화 <황금박쥐> 때문인지 모르겠다. 집에 TV가 없었던 나는 만화 가게에 가서 만화책 5권을 보고 나서야 TV를 한 번 볼 수 있는 쿠폰을 받았다. 그 쿠폰으로 황금박쥐를 보는 날은 가슴이 설레었다. 위기의 순간에 황금박쥐가 나타나 문제를 싹 해결하는 것을 보면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황금박쥐를 보기 위해 용돈을 아껴 그 만화 가게에 꽤 다녔다.
박쥐에 대한 어렸을 적 추억이 하나 있다. 초등 3학년 말에 이사한 우리 집은 상봉동 봉화산 아래에 있었다. 집에서 남쪽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면목동과 중곡동에 걸쳐 용마산이 높게 하늘에 걸쳐 있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그 산을 바라보았다. 그 산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어떤 어른은 거기에 큰 동굴이 있고 그 동굴 안에는 박쥐가 살고 있다고 했다. 박쥐와 동굴이라는 얘기가 내 호기심을 자아냈다. ‘어쩌면 그 동굴 안에 박쥐와 함께 신비스러운 다른 것도 있을지 몰라.’ 언젠가 꼭 그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확인해 봐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러나 한나절 허허발판을 지나 해발 348미터의 산에 올랐다가 돌아오는 왕복 8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는 초등학생에게 무리인 듯싶었다. 호기심이 더위와 함께 끓어오르던 어느 여름날 나는 만만한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저 용마산 꼭대기 동굴에 박쥐가 살고 있는데 우리 박쥐를 잡아서 한 마리씩 나누어 갖자! 어떻게 생각해?”
“박쥐? 거기에 박쥐가 있대?”
“어떤 어른이 거기 동굴에 박쥐가 있다고 했어. 박쥐는 낮잠을 자니까, 잠잘 때 가서 잡으면 돼”
“그런데 너무 멀잖아.”
나는 손가락으로 용마산 정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 봐. 바로 보이지. 좀 먼 것같이 보여도 똑바로 쭉 가면 금방 갈 수 있어. 우리가 지금 간다면 해가 지기 전에는 돌아올 수 있을 거야. 박쥐를 잡아 키워서 시장에 내다 팔면 돈도 벌 수 있어. 오는 길에 산딸기도 따 먹고….”
망설이는 아이 3명을 겨우 설득해서 우리 4명은 박쥐를 잡으러 용마산으로 향했다. 점심 식사용으로 구멍가게에서 빵을 하나씩 사고 박쥐 다리를 묶을 때 쓰기 위해 노끈을 허리에 찼다. 혹시 많이 잡을 경우를 대비해 박쥐를 담을 밀가루 포대도 준비하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용마산 꼭대기를 계속 바라보면서 걷고 또 걸었다.
뙤약볕도 맞고 바람도 흘려보내고, 풀밭의 나비와 벌들 사이로 야생화 향을 맡으며 들길을 한참 걸었다. 흐르는 땀을 식히려 잠시 나무 그늘에 기대어 앉아 혹시 박쥐 한 마리만 잡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의논하였다. 서로 양보하지 않아 결국 각자 하루씩 돌아가면서 박쥐를 가지고 있기로 하였다.
발바닥에서 땀이 나와 신발이 미끄러워질 때쯤 용마산 아래턱에 도착하였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 동네가 가물가물 보일 듯 말 듯 꽤 많이 걸어온 것 같았다. 다리의 피로감은 박쥐를 잡을 기대에 얼마든지 견딜 것 같았다. 풀밭을 헤치며 산길을 따라 올랐다.
저 멀리 중랑교와 경희대학교 국제회의장 건물이 보였다. 버스 타고 지나다닐 때는 한참 떨어진 곳이라고 느껴졌던 건물이 손에 잡힐 듯 들어오는 것이 신기했다. 갑자기 세상이 좁아 보였다. 시원한 산바람을 쐬며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금방 다다를 것 같은 산 정상은 계속 올라가도 그대로였다. 동네의 봉화산 160미터 정상에 오르는 것도 대단하게 생각했던 우리가 이렇게 멀리 그것도 두 배 이상 높은 용마산을 오른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가져온 빵을 나누어 먹었지만 이제 슬슬 배가 고파졌다. 다리의 피곤함도 점점 더하고 입도 말라 왔다. 말은 안 하지만 모두 여기에 따라온 걸 조금씩 후회하는 눈치였다.
“이제 조금만 가면 된다. 박쥐가 놀라서 도망가지 않게 동굴에 들어갈 때는 살살 걸어야 해!”
나는 아이들을 다독였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동굴이 높아서 키가 닿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였다.
‘애들을 목말 태워서라도 잡아야지.’
드디어 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머릿결을 날렸다. 저 아래 광나루의 굽이치는 한강이 보이고 그 뒤로 천호동과 지금의 하남시 그리고 물결치듯 겹겹이 산들이 이어졌다. 태어나서 이렇게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은 처음이다. 공주와 왕자가 사는 동화 속 같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눈동자는 커졌다. 한동안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펼쳐진 풍경을 눈에 주워 담았다. 다리의 피곤함은 싹 달아났다.
꿈을 꾼 듯 시간을 잠시 흘려보내고 정신을 차려 우리는 동굴을 찾았다. 바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반대편으로 조금 내려가니 평평하게 꽤 넓은 곳이 나타났다. 샘이 나오는 곳 주위에 몇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군복 입은 장병과 그의 연인인 듯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팔짱을 끼고 함께 멀리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코스도 훨씬 짧고 올라오기 쉬운 워커힐 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인가 보다.
드디어 그 뒤로 동굴이 보였다. 그러나 생각했던 만큼 길거나 넓지 않았다. 산 귀퉁이가 조금 안쪽으로 움푹 파였고 그림자로 안이 어두운 정도이다. 바위 동굴 안에는 어떤 중년 아저씨가 촛불을 켜 놓고 중얼거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그 외에 박쥐도 없고 신비스런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바위와 돌덩어리가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크게 실망하여 옆에 서 있던 어른에게 물었다.
“아저씨, 여기 박쥐가 안 사나요?”
“박쥐? 글쎄 이런 데 박쥐가 살까? 이렇게 짧은 굴에?”
어이없어 하는 그 사람에게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이 산에 박쥐는 어디에 있어요?”
“그건 나도 모르겠다.”
갑자기 다리의 피곤함이 쫙 몰려왔다. 생각보다도 훨씬 많이 걸어서 왔는데 신비의 동굴도, 박쥐 그림자도 못 보고 돌아가게 되었으니 허탈할 뿐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다른 동굴이 또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걸어왔던 바위 사이를 돌아서 다시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우리 동네가 까마득히 보였다. 우리가 저렇게 먼 길을 왔단 말인가? 아이들은 박쥐보다도 집에 갈 걱정을 먼저 하는 것 같았다.
해는 이제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내려가야 한다. 서둘렀는데도 면목동 동네에 내려 왔을 때에는 이미 땅거미가 밀려오고 있었다. 중곡동이 종점인 시내버스가 전조등을 켜고 면목동 비포장도로로 들어서고 있었다. 지친 다리를 끌고 패잔병처럼 동네 어귀에 들어설 때에는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동네 어른 하나가 우리를 보더니 큰 소리로 말한다. “아이고 얘들아, 아침부터 사라지더니 도대체 어디에 갔다 온 거냐? 너희들 엄마가 낮부터 찾으러 사방 다니느라 정신없었다. 집에 빨리 가 봐라.”
그날 나는 잔뜩 화가 난 엄마에게 엄청 두들겨 맞았다. 애들 엄마가 우리 집에 와서 광영이가 애들 데리고 어디로 사라져서 밤이 되도록 오지 않으니 빨리 찾아내라고 난리를 피운 모양이다. 남들 앞에서 자식 야단치는 것이 올바른 훈육 방법인 양 보란 듯이 엄마는 동네 사람들 앞에서 사정없이 나를 때렸다.
“애 교육 잘 시키세요.” 한마디 뱉으면서 애 엄마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물러났다.
집에서 쫓겨난 나는 밤늦게 집 담장을 넘어 부엌 위 창문을 열고 다락방으로 몰래 기어들어 갔다. 들키면 또 맞을 것 같아 동굴 속 박쥐처럼 숨죽여 있다가 결국 엄마에게 들켰다. 동굴 속 박쥐라면 날아갈 수도 있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