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亡者)의 도시락과 하얀 나비
나는 노인종합복지관에서 매주 화요일 독거노인에게 도시락을 배달한다. 일주일 분의 갖가지 밑반찬을 커다란 보온 백에 담아 전달하고 빈 용기는 수거해 온다. 이 일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었다.
얼기설기 비좁은 비탈길…. 주차할 공간을 찾아 빙빙 돌다가 깜빡이 켜놓은 채 재빨리 뛰어가 낡은 주택 세입자에게 배달하고 오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골목 거주자에게 배송하는 택배기사의 고충이 어떤지 헤아려진다. 운전이 서툴거나 방심하면 골목길에서 언제든지 자동차가 긁히고 안전사고가 날 수도 있다.
희미한 조명 아래 4층 계단을 올라가면 살아있는 자들의 무덤 같은 고시원이 나온다. 나처럼 날씬한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쪽방이 쭉 늘어서 있다. 성인 혼자 간신히 누울만한 자리와 딱 그만큼의 빈 공간이 전부다. 조형물이 딸린 부자의 무덤은 아마 이보다 훨씬 넓을 것이다.
처음 여기에 도시락 배달왔을 때 왠지 꺼림직했다. 고시원 현관문을 열자마자 먼저 퀴퀴한 냄새가 맞이했다. 이곳 사람들 삶에서 배어 나온 고달픔이 대기 중에 흩어져 아우성치는 것 같다. 어느 방에서는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온다. 중국 동포의 억양도 들린다.
가방을 들고 음침한 복도를 지날 때에는 누군가 뒤에서 내리쳐서 뺏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다.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낯선 장소에 들어설 때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내가 새가슴이기 때문은 아니라고 스스로 변명했다.
몇 달이 지났다. 이제 보니 꺼림직한 것도,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선입견이었다. 그곳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좀 힘들고, 불편한 환경일 뿐이다. 책가방을 메고 도서관으로 향한 꿈에 부푼 청년도 있었다. 도시락을 전해주면 잘 먹겠다며 공손히 인사하는 어르신을 보면서 편견을 가졌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우리가 헤아리지 못할 사정이 각자에게 있을 것이다. 함부로 얘기하기 어려운 삶의 두께가 그들의 어깨에 매달려 있다. 알지 못하는 인연의 끈이 쉽게 놓아주지 않나보다. 그들을 존경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그들을 존중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나는 그들이 좀 더 나은 곳에 빨리 자리 잡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고시원에 배달하고 나올 때 햇살이 오늘따라 밝게 느껴졌다. 5성급 호텔에서 나오는 신사의 머리에도 똑같은 햇살이 떨어지리라….
설 연휴가 끝나자 내가 배달해야 할 도시락 숫자가 하나 줄었다. 받아 드시던 여자 어르신 한 분이 연휴 기간 중 사망하였다고 한다.
‘용궁보살’ 간판을 단 무당집을 지나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 힘든 좁은 골목길을 한참 올라갔다. 허름한 이층 가파른 계단 위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철제 현관문 앞에 도시락 가방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말끔히 설거지한 빈 그릇 8개가 차곡차곡 담겨 있다. 망자(亡者)의 마지막 식사였는지도 모른다.
빈 용기를 수거하여 골목을 내려오는데 눈물이 글썽거린다.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약간 부어오른 얼굴이 환자 같아 보이기는 했지만 걸어서 치료받으러 다닐 만큼 거동에는 큰 문제는 없던 것 같았는데…. 갑작스러운 죽음은 뜻밖이었다. 세상을 뜨는 일에 예고편이 없으니 언제라도 가능한 일이지만 금방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머리칼을 제치고 이마의 땀을 닦는 나에게 그 여자분은 미소 지으며 수고하신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눈이 내려 계단이 미끄러운 날에는 혹시나 해서 내가 다 내려갈 때까지 고개를 내밀고 지켜보았다.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리면 미리 현관문을 열어 빈 용기가 든 가방을 내어주고 새 도시락을 받았다. 그 작은 성의가 참 고마웠다.
보통 문을 두드려서 사람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본인이 직접 수령하는지 확인하고 배달일지에 기록했다. 어떤 어르신은 귀가 잘 안 들리는지 한참 동안 두드린 적도 있었다. 거동이 편치 않으신 분들이라 일어나 문 열고 도시락을 받기까지 시간이 꽤 소요되었다. 춥거나 무더운 날에는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락 밴드 싱어처럼 긴 머리의 남자가 짙은 선글라스 쓰고 도시락 배달하는 것이 새로워 보였는지 호기심 어린 눈길을 연신 내게 돌렸다. 병색 어린 얼굴에 짓는 미소가 하얀 나비 같았다. 아무런 무늬가 없는 하얀 나비…. 왠지 하얀 나비 같았다. 어렸을 때 동네 어귀 채소밭에서 흔히 보았던 나비다. 활기가 넘치고 기운찬 그런 미소는 아니었다. 고마워하는 마음, 호기심, 알듯 모를듯한 슬픔이 배어있다. 싱어송 라이터 김정호가 떠올랐다.
특별히 그 여자 어르신과 대화를 많이 나눈 것은 아니다. 그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직계 연고자는 없고 4촌 동생과 함께 살고 있으며 몸이 아프다는 정도이다. 그런데 하얀 나비가 나풀거리는 듯한 미소가 자꾸 눈앞에 아롱거다. 미리 나와서 도시락 가방을 전해 받으며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모습과 함께... 내 손을 거쳐서 전달된 도시락을 먹고 건강을 되찾기를 마음속으로 빌었었다.
지금 나는 망자(亡者)의 마지막 식사였던 빈 도시락 가방을 들고 서 있다. 눈물이 글썽여진다. 하얀 나비가 나풀거리는 듯한 미소가 지워지지 않는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특이한 미소이다. 그동안 많이 아팠을 것이다.
눈 덮인 계단을 잘 내려가고 있는지 지켜보던 관심, 걸음 소리를 듣고 미리 나와 있는 배려, 긴 머리에 선글라스 쓴 도시락 배달 남자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어린애 같은 호기심이 그 하얀 나비 미소에서 새어나왔다.
이제 그 하얀 나비는 삶의 저편으로 날아갔고, 나는 다시 여기에 올 일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덧없는 삶인가 보다. 잠시 인연이었던 하얀 나비의 미소는 작은 일에도 큰 울림이 있음을 깨닫게 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덜거덕거리는 빈 도시락 소리가 망자(亡者)를 위한 진혼곡(鎭魂曲) 처럼 들린다. 골목을 돌아서면서 앞으로 만나는 모든 이에게 좀 더 관심과 배려, 선입견 없는 호기심으로 대하리라 다짐한다. 하얀 나비 미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