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고난받는 자들의 자비로운 우상

영화 - <파워 오브 원

by 낭만천사 유광영

나는 2000년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와 인근의 프레토리아 그리고 선시티를 방문한 적이 있다. 여기서는 TV 방송을 3가지 언어로 한다. 영어, 아프리칸스 그리고 줄루어이다. 이 나라의 백인은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는데 스스로를 아프리카너라고 부른다. 아프리칸스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네덜란드어에서 유래된 일종의 방언이라고 할 수 있다. 줄루어는 5개 주요 종족 중 다수인 줄루족의 언어이다.


넬슨 만델라 이전 백인 정권하에서는 인종 분리 정책(아파르트 헤이트)으로 화이트, 칼라, 블랙으로 나누어 차별과 활동에 각종 제한이 있었다. ‘칼라’는 백인과 흑인 사이의 혼혈 및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을 말한다.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이 노동자로 인도인들을 다수 데려온 이후 대부분 칼라는 인도계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한국과 일본의 경제력이 커지니까 한국인과 일본인은 칼라가 아닌 준 백인으로 취급했다니 웃음이 나왔다. 이 영화에서 PK가 알렉산드라라는 흑인 구역에 들어가 듀마와 복싱 경기할 때의 심판이 혼혈인 ‘칼라’인 것으로 보인다.


남아공 방문 중 이 영화에 나오는 흑인 거주지와 비슷한 요하네스버그 근교의 빈민가를 자동차로 지나친 적이 있었다. 그때 흘낏 보았던 그곳의 열악한 환경은 영화에서 보았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에서보다도 빈약한 인프라에 밀집된 인구로 인해 상황은 더 안 좋아 보였다.


이 영화 <파워 오브 원>이 내게 관심을 끈 이유는 내가 만났던 순박한 현지 흑인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역전시장에서 경비를 서는 흑인들은 코 흘리는 유치원 아이들처럼 산만했고, 백인 관리자는 이들을 달래기도 하고 큰 소리로 겁주기도 하면서 일을 시켰다. 흑인 노동자는 관리자의 고함에 잠시 주눅이 들었다가 금방 저희들끼리 희희덕거렸다. 표정이나 행동에 전혀 진지한 모습이 없다.


철부지 눈동자에 꾸밈없는 미소를 지으며 흥정하는 시골 장터의 흑인은 초등학교 바자회에 참가한 어린이 같다. 거래를 하는 것인지 놀이를 하는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태평스럽고 느긋하다. 악착같이 팔아 보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 같은 그런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목공예품 한 점씩 사지 않을 수가 없다.


호텔 앞에서 기념품을 팔고 있는 흑인은 덩치가 산처럼 큰데, 표정과 행동은 어린 '곰돌이 푸' 수준이다. 율동으로 박자를 맞추며 갖은 아양을 떨고, 하나 사 달라고 하는데 값도 엄청 싸다. 저렇게 순박하니 과거 백인들에게 속절없이 당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흑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대도시의 치안이 불안해졌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대부분 흑인들은 폭력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았다.


그때만 해도 같은 백인인 아프리카너와 영국계 사람들과의 관계가 앙숙인 것을 잘 알지 못했다. 보어전쟁이 있었고 영국이 승리하면서 이 땅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정도만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역사에 대해 잠깐 살펴보다가 얽힌 과거에서 흘러온 그들의 정서에 대해 다소 수긍이 갔다. 피에 새겨진 기억은 희석되지 않고 세대를 넘어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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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워 오브 원>은 제2차 세계대전 전에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영국계 청년 PK가 차별로 고통받는 흑인들의 인권에 눈떠가는 과정을 그렸다. 그는 대자연 속에서 흑인들과 함께 편견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는 꽃향기와 새소리 속에서 자랐다.”


흑인 유모의 아들 톤데와 함께 자연의 소리를 듣는 법을 배웠다.


부모의 사망으로 기숙학교를 거쳐 할아버지에게 보내지고 PK는 여러 사람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삶의 지혜와 용기를 배우게 된다.


학교에서 아프리카너 학생들로부터 비열한 폭력을 당하고 어린 그는 마음속 깊이 두려움이 생겼다. 원주민 무당 다불라 만지는 두려움을 쫓아내는 의식을 거행하고 줄루 용사의 투혼이 용기를 줄 것이라고 했다. 무당의 신비스러운 의식(儀式)으로 두려움이 사라진 PK는 세상에서 가장 힘 있는 존재로 여겨졌던 코끼리도 그의 용감함에 존경을 표할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머리는 두 가지 일을 한단다.

많은 자료를 기억하고

새로운 생각을 해내기도 하지.

학교에서는 자료를 얻고

자연에서는 생각을 배워라.

뭐든지 질문을 하면

자연은 모든 해답을 준단다.

찾을 것과 질문할 것을

알게 된 다음에는

네 스스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자연은 모두 서로 협동한단다.

해가 없으면 달빛도 없지

둘이 합쳐서 달빛이 생겨”


할아버지 친구인 독일인 피아니스트 볼렌 슈타인 교수에게서는 서구적 교양과 함께 자연에서 지혜를 얻는 법을 배웠다.


“권투 배울래요?”

“난 너무 작아요.”

“염려 마세요. 머리를 쓰면 이겨요. 처음엔 머리로 다음은 마음으로 아시겠죠?”

“네”


수용소의 흑인 죄수 기엘 피트에게서는 복싱 테크닉과 함께 비굴해지지 않는 용기를 배웠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했고, 흑인들을 도와주고 편지도 써주는 PK를 볼 때마다 그곳 흑인들은 전설의 레인 메이커 노래를 불렀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필요해요. 없는 것 보다는 낫죠.

”레인 메이커는 오래된 전설이고 사랑이나 미움보다도 더 힘있는 종교에요.“


구름이 모여 비가 되고

대기의 수증기가 모여 구름이 되고

기온과 습도의 변화에 따라 수증기가 생기고

태양이 비치는 시간과 각도에 따라 기온과 습도가 변하고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는 시간에 따라 태양이 비치는 시간이 달라진다.


모든 현상은 인과가 서로 물려 있으니 한 단면은 다른 면의 결과이자 원인이다. 인과의 불투명 너머에서 보이지 않는 끈은 여전히 작용하는데, 불확실함을 두려워하는 인간은 불확실성을 위로받으려고 우상을 섬긴다. 희망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두려워하고 고난받는 자들에게 유일한 종교는 희망이다. 희망은 그들의 자비로운 우상이다. 레인 메이커다.


무자비한 수용소 간수가 피트를 별다른 이유 없이 폭행하고 똥을 핥아먹게 하는 모욕을 주는 모습을 지켜본 PK는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분노로 바뀌었다. 인간의 야만성과 그의 무력함 때문에… 피트로 인해 위기를 넘기 덕분에 벌을 모면한 흑인들은 피트를 존경하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 부르면 3일간 굶는데도 모두 아랑곳 하지 않고 피트를 존경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비굴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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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소장은 장관이 시찰하러 올 때 음악 콘서트를 열어 줄 것을 볼렌 교수에게 부탁하고, 망설이던 그는 피트의 눈짓에 그만 콘서트를 수락하고 만다. 음악회를 왜 해야 하느냐는 볼렌의 질문에 피트는 장관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해달라고 한다. PK가 시키면 부족들이 함께 노래할 것이라고 한다. 피트는 특별히 자기들을 위해서 노래를 작곡해달라고 교수에게 청한다.


피트의 기발한 생각에 볼렌 교수와 PK는 감탄하며 노래를 작곡한다. 아프리카의 리듬은 단순하고 반복적이지만 태고(太古)에서 내려온 깊은 떨림을 담고 있다. 몸 안에서 뭔가 꿈틀거리게 한다. 몸의 꿈틀거림이 마음을 깨운다. 볼렌 교수의 곡에 피트는 가사를 붙인다. 가사는 간수들 욕하는 줄루어이다.


피트의 말대로 부족들은 모두 PK의 지휘 아래 열심히 합창 연습을 했다. 반목하던 여러 부족은 하나로 단합되고 그들의 희망은 점점 커갔다. 콘서트는 크게 성공적이었다. 모든 부족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면서 하나의 공동체 의식이 생겼다. 하나의 목소리가 되면서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활력을 찾았다.


이 같은 분위기를 눈치챈 간수가 콘서트장에 가는 피트를 붙잡아 곤봉으로 두들겨 패며 노래 가사의 뜻이 무엇이냐 다그친다. 피트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PK가 달려갔으나 부족들의 합창을 들으며 피트는 끝내 숨을 거두었다.


“모두 하나가 됐어요. 처음으로! 도련님은 레인 메이커에요”

그 짧은 순간 동안 그는 자유인이었다. 피트는 죽었지만 모두 하나가 되면 힘이 될 수 있다는 깨우침을 부족들에게 남겼다.


전쟁이 끝나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PK는 수용소에서 있었던 피트와의 일을 작문으로 발표하여 감동적인 이야기라는 선생님의 평가를 받는다. PK는 피트에게서 배운 복싱 실력을 발휘하여 요하네스버그 고교 복싱대회에 챔피언이 된다.


복싱 경기장에서 처음 만난 마리와의 짧은 사랑 이야기는 스토리의 전개에 양념처럼 들어가는 클리쉐로 보인다. PK가 마리아 학교 기숙사 담을 넘는 장면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킨다. 복싱은 가장 본능에 충실한 스포츠이고, 로맨스는 가장 본능에 충실한 정신작용이다. 우아한 포장으로 로맨스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흑인은 무서워.”

“백인이 더 무섭지.”

“백인이 왜?”

“정말 몰라? 만난 적 있어?”

“흑인을? 기회가 없었지.”

“기회가 있으면 만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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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얼결에 PK는 흑인구역 알렉산드라에서 흑인 챔피언 듀마와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 PK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고 듀마와 흑인들은 PK를 “즐루의 수호신”이라고 연호한다. PK의 복싱 경기를 지켜본 날 마리아는 흑인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닫고 새로운 인식을 갖는다. 듀마는 대결에서 패했지만 PK를 레인 메이커라고 부르며 둘은 가까운 사이가 된다. 듀마는 단순히 복싱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족을 위해 분명한 비전과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지치고, 지치면 분노가 생기지.

분노는 폭력을 부르게 돼.

그렇게 되면 흑백 모두 피해를 당하지.”

“무슨 얘기야?”

“우리에게 글을 가르쳐줘.”

“난 자신 없어”

“나는 아프리카를 믿어. 우리는 미래를 믿지. 자네는 뭘 믿지?”


듀마와 헤어지고 나서 PK가 유색인 전용 수도에서 물을 받아 마시는 장면은 앞으로 그의 행동을 암시하는 듯하다. PK는 웅장한 폭포 앞에 서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다. 자연은 모든 질문에 답해준다는 볼렌 박사의 말을 떠올린다. 결국 PK는 교장 선생님을 설득하여 토요일 밤에만 학교에서 야학을 한다는 허락을 받아낸다.


“너희가 열 명쯤 가르친다고 얼마나 달라지지?”

“한 방울의 물이 폭포가 됩니다.”


그 한 방울의 물을 폭포로 끌어모으는 구심력은 희생이다. 지도자의 희생, 선구자의 희생. 뜻있고 값진 희생의 피땀이 역사를 회전시킨 엔진의 연료이다.


그러나 야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찰에 발각되고 야학은 중단된다. 경찰 책임자 중 한 사람은 PK가 어렸을 적에 학교에서 그를 비열하게 괴롭혔던 보타였다. 보타 상사(上士)와 오래된 악연이 이어지고 나중에는 보타가 PK 앞에서 죽음을 맞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선과 악의 대결 구도는 언제나 흥미로운 인류의 심리 원형(archetype)이다.


보타는 PK가 다니는 호피체육관 관장을 흑백분리법 위반으로 체포하고 건물에 불을 지른다. 의로운 체육관장은 모두를 향해 외친다.


“더 이상 모른척 할 수는 없어.

당당히 싸우라고 말로만 떠들 수는 없지.

남자답게 싸워!

바보가 되지 마!

비겁하게 굴지 마라!

옳다고 믿으면 싸워!”


보타의 폭행으로 듀마는 한쪽 눈을 실명한다. 복싱 체육관에 불길이 치솟고 이를 지켜보는 PK의 눈에도 분노의 불길이 솟아오른다. 이 순간 PK는 어떤 결단을 내렸을까? 운명의 저울추는 분노의 무게가 누른다.


친구인 길버트의 아저씨 교회로 옮겨 야학을 계속하던 중 보타를 앞세운 경찰이 들이닥쳐 폭력으로 해산시킨다. 얻어맞고, 쓰러지고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 PK와 길버트는 부상을 당한다. PK를 염려한 마리아가 달려가는데 밀쳐져 바닥에 쓰러지면서 머리에 피가 흐르고 즉사한다.


마리아의 장례식날 묘지에서 마리아의 아버지가 PK를 발견하고 쫓아가 삽으로 내리치려 한다. 그 순간 흑인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 엄숙하게 레인 메이커 노래를 부르며 다가온다. 문상객들은 놀라서 바라보고 PK는 울컥 눈물을 쏟는다.


국비 장학생이 되어 옥스퍼드 대학으로 떠나기 전에 PK는 작별 인사를 하러 듀마를 찾아갔다가 결국 남아서 흑인 야학을 계속하기로 결심한다. 그날 밤 보타가 경찰을 이끌고 거주지 제한법 위반으로 PK를 체포하러 흑인 구역에 쳐들어온다. 경찰은 총을 겨누며 PK를 찾아내라고 살벌하게 다그친다.


“나 때문에 큰 사고 나겠어.

나만 가면 돼.”

“너 때문이 아니야.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야.

그들이 널 잡는다 해도 끝나지 않아.”


PK를 계속 숨겨주는 흑인들에게 경찰은 총격을 가하고 집에 불을 지른다.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 여기저기 사람들이 쓰러지자 흑인들도 이에 대항한다. 쌍방에 사상자가 생긴다. 마을은 불타오르고 순식간에 생지옥이 되어버렸다. 이를 보다못해 자신을 체포하라고 PK가 나타난다. 보타는 PK를 손봐주겠다며 격투를 벌인다. 육탄전에 밀린 보타가 비겁하게 PK의 등 뒤에서 권총을 빼 들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라, 듀마가 나타나 각목으로 보타를 내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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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이들은 경찰의 눈을 피해 멀리 달아난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PK와 듀마의 어깨에 아프리카의 붉은 태양이 걸려있다. 영화는 이렇게 끝나는데…. 부당한 상황에 의로운 행동으로 맞선 PK와 듀마의 힘겨운 모습에 오랫동안 가슴이 시렸다. 그리고 오래전에 만났던 남아공 흑인들의 순박한 모습이 떠올랐다.



개봉 : 1992.12.24.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국가 :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러닝타임 : 123분



- 낭만천사 유광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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