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참으로 녹록지 않습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우리는, 종종 타인이 시키는 대로 살기를 강요받곤 합니다. 부모님은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며 너는 내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매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간섭하고 태클을 걸기도 하지요.
하지만 아이들이 북한군도 무서워한다는 중학교 2학년이 되면, 비로소 내 삶이 더 중요하다며 반기를 들기 시작합니다. 이때 끝까지 자식을 소유하려 드는 부모는 결국 마음의 병을 얻게 됩니다.
불교의 사성제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집착(집성제)이 곧 괴로움(고성제)의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법정 스님께서 그토록 무소유를 강조하셨던 것이겠지요. 연인이나 부부 사이, 심지어 돈벌이에서도 이 집착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제 명대로,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존주의 철학을 떠올려 봅니다. 파이프 담배를 든 사르트르를 아십니까? 실존주의는 철저히 나를 세상의 중심에 둡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이기에,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단하는 행위의 주체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의 자유 의지로 선택하고 결정을 내렸으니, 그에 따르는 책임 또한 온전히 나의 몫입니다. 타인의 뜻이 아닌 나의 선택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삶을 보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대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소유의 집착에서 벗어나 무소유의 자유를 배우고, 동시에 실존의 결단을 통해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선택과 책임으로 완성되는 삶, 그것이 바로 진정한 행동 철학이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자세가 아닐까요? 오늘 하루, 여러분은 어떤 선택으로 여러분만의 실존을 증명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