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진짜 너 그만두고 뭐하고 살거야?
월요일이 되면 벌써부터 무거워지는 어깨가 가끔은 출근가방에 안에 들어 있는 회사 노트북이 돌덩이로 유명한 맥북이여서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출근 하기 위해 내린 성수역에는 항상 쫄깃해보이는 떡볶이와 함께 고소한 버터 냄새가 함께 나를 반긴다. 버터와 함께 구워지는 햄치즈 토스트 냄새를 맡다 보면 바로 옆에 더 달콤한 향기를 뽐내는 커피번 냄새가 인사를 해준다. 사실 이렇게까지나 오감을 느끼며 출근하는 사람이 아닌데 갑자기 초능력이 생긴 것처럼 모든 것에 반응하게 되었을까?
바로 3일전 주간회의때 일어난 일이다. “팀장님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 한마디가 벌써부터 풍기는 수상한 냄새는 팀장님께도 닿나보다. 말씀하시라고 말할 법한 팀장님이 문득 카페를 가자고 하셨다. 회사를 나와 카페로 가는 발걸음부터 이미 내 마음은 가볍다. 어느때보다도 엘레베이터 숫자를 보는게 즐겁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니, 특유의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바람이 확 다가온다. 얼른 회사로 들어가려고 미처 넣지 못해 이리저리 흩어진 의자들을 바라보며 계산대 앞에 간다. 내가 즐겨 먹던 콜드브루를 시키기보다 잘 안먹는 녹차라떼를 시켰다. 그렇게 음료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바라본 팀장님의 표정도 이미 단호하다. “그래서 할 말이 뭐에요?”
분명 하루 전날에는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해서 퇴사를 한다고 해야지, 했던 것과는 다르게 너무나 빠르게 나온 두괄식의 말.
“ 팀장님 저 퇴사하겠습니다.”
3초정도의 침묵뒤에 왜 퇴사를 하는지 마음의 단호함을 확인한 팀장님과 이미 엑셀만 밟고 있는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퇴사처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퇴사를 위해 쓰게 된 사직서에는 결재 프로세스가 얼마나 복잡한지 6명에게 결재 승인을 받아야 했다. 인사팀과 논의 후에 남은 연차도 작성하고 항상 하던 업무들도 정리하다보니 점점 퇴근 시간도 다가온다. 이리 저리 메일에 답장을 보내고 내일 할 업무들을 리스트업하고 노트북을 닫고 나오는 길.
오랜만에 만난 이전 팀원 분의 질문이 나를 다시 과거로 돌려놓는다. “그렇게 힘들었어요?” 그 말에 잠깐 그분의 눈을 보았다가 대답을 한다. “저는 옆에 팝업이 열려서 보러 가려구요.” 동문서답을 하는 나에게 그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집 조심히 가라고 한다. 대충 둘러서 말했지만 정말로 근처에 팝업이 열린 것을 보고 목적지 없이 구경한다. 사람이 원래 힘들 때는 가만히 생각하기 보다는 몸을 움직이는게 좋다고 한다. 그렇게 구경하고 싶지도 않았던 팝업을 구경하며 오늘 작성한 사직서를 다시 떠올려본다.
오늘 작성한 것처럼 보이는 사직서는 이미 2달전부터 임시문서로 내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었다. 항상 마음 한켠에 첫사랑에게 보내지 못했던 편지마냥 아침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 켰다가 마우스 커서가 깜빡이는 것을 보고 다시 닫는 것을 반복 하곤 했다.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온 사직서는 임시문서로 저장되어 있을 때와는 다르게 날개를 달아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팀장님에게로 부장님에게로, 이사님에게로, 대표님에게로.
이 회사를 들어오고 싶었던 마음만큼 간절하게. 이번에는 나오고 싶은 마음을 담아 간절하게 사직서를 작성한다. 어쩌면 입사때보다도 더 원하는 이 마음이. 첫 출근 날 기록한 인사기록카드와 어쩌면 같지 않을까? 회사는 첫 출근날과 퇴사날이 데칼코마니처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우리는 원해서 들어온 회사를 원해서 나간다. 다음은 세상이 나한테 던지는 질문
"그래서 너 이제 뭐하고 살거야?"
거기에 내가 답하고 싶은 답. 열심히 정주행한 드라마 '미지의 서울' 속 미지의 독백을 나에게 읽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