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 나이든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 즉 나이 든다는 것은 결국 실망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라는 걸 깨닫는 것은 내게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젊음이 내 피와 살 내 이름이었을 때 내가 불안해한 것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하나를 선택하면 순간 세계가 그대로 끝나버릴 거만 같아서 하나를 결정하면 모든 걸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거만 같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만 싶었던 시기.
그런데 사람이 가장 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유 없이 갑갑하기도 하고 외줄 타기를 하는 광대처럼 마냥 불안했던 시절.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찬란히 쏟아지는 햇살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던 시기. 그래, 여름 한낮 작열하는 태양 아래 그대로 멈추어버린 시간에 고마워할 줄 몰랐던 내 젊음. 가진 것이라곤 오로지 젊음이라서. 내세울 것이라고는 젊음 하나. 오로지 그것 하나밖에 없어서. 나는 젊음으로 조바심내고 젊음 때문에 외로웠으며 젊음 앞에 방황하고 무력했다.
나이 불문하고 스스로 '나이 먹었어 이제 늙었어'라고 말하긴 쉽다. 하지만 그 질문조차 선택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는 것이 바로 젊음이란 걸 그때는 몰랐다.
실상 젊음이란 언제나 질문 자체를 잘못하는 나이다.
젊어서는 늙음이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 머리털이 너무 많아서 신경질을 낼지언정 자고 일어나면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셀 날이 온다는 것을 젊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처럼. 나이는 몸으로 먹지만 마음으로 알아채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나이 듦. 생로병사란 말을 음미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게 될 때 나이 듦이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당신은 이미 나이 들고 늙고 병들어 있다.
젊음이란 것이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것처럼 나이란 것도 진짜 한 번 제대로 먹어봐야 느낄 수 있는 무엇인지도 모른다. 삶이란 것은 세월이 몸에서 기름기를 쪽 빼가고 얼굴에서 광채를 앗아갈 때쯤 그제야 깨달음이라는 걸 주는데 사실 그 깨우침이란 게 뭐 대단하거나 거창하지도 않다.
더 이상 어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늙지도 않은 이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답을 모르겠는 질문이 하나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묻기는 쉽지만 대답하기는 너무 어렵다. 언제쯤 이 질문이 편안해질까. 지금보다 더 나이를 먹고 더 이상 먹을 나이가 없을 때 그즈음에서야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까.
요즘은 질문이 하나 더 늘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결국 해답을 찾기 위해선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생의 문이 닫히는 그 순간까지
삶의 마지막 그 끝까지 가봐야 하는 것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