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봄만 되면 허리가 나가는게 무슨 봄맞이 연례행사가 된 것만 같다.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아침부터 정형외과행. 반 년만에 마주한 의사는 예의 무표정.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보고 이번엔 또 무슨 일로 왔나 묻는다. 나같은 환자를 한 두번 본 게 아니니 양치질 하는 것처럼 익숙하겠지.
주사 한 방 맞으셔야겠네요.
평소엔 코치와 재활 PT 운동을 한다. 그런데 그 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코치 없이 혼자 두 시간 넘게 헬스를 했다. 더 열심히 날마다 해야지 했는데 그게 무리였나보다. 과유불급. 평소에 안하던 짓을 하면 꼭 탈이 난다. 아프지 않으려고 건강하려고 시작한 운동인데 혹 떼러 갔다가 오히려 혹 붙인 격. 나도 모르게 큭 웃음이 났다.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인과관계를 따져봐야 아무 소용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ㅡ이십대 교통사고를 당하고 허리와 골반에 큰 충격을 받았는데도 부러지고 피흘리는 데 없으니 멀쩡하다며 큰소리치고 병원이든 한의원이든 치료 한 번 안 받았던 것 그게 결국 오늘날까지 이르렀던게 아닐까. 몇 시간이고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글만 쓰다가 결국 고질이 된 게 아닐까. 십자인대 나갔을 때 파열 후 재건 수술까지 받고서도 제 때 운동을 시작하지 않아서 허리까지 악화된 게 아닐까. 허리 디스크 환자인데다가 완경 후 골다공증에 시달리는 어머니처럼 그 자식이니 닮아서 나도 그리 되는 건 아닐까. 이러다 골골 팔십하겠다. 가진 거라곤 몸뚱이 하나뿐인데 날이 갈수록 큰일이다. 카메라 들어야하니 어쨌든 몸을 잘 추스려야겠다.
2.
병원가는 택시 안. 허리 아퍼 엉거주춤한 날 보고 택시 기사가 젊은 분이 어쩌다가 쯧쯧 한다. 치료 후 들린 약국에서 약사왈 젊은 분들 운동하다가 허리 많이 다치죠 한다. 저 젊지 않아요 한 마디 하려다가 말았다. 추리닝에 후디 캡모자에 마스크 쓴 외양만 보면 젊다 착각하시겠지만 속은 팍 늙었답니다.
어릴 적 젊을 때 원 없이 인정 사정 볼 거 없이 막 산 댓가라 생각하며 위안 삼지만 정신력 멘탈 갑을 받쳐주지 못하는 몸뚱이가 야속하기만. 역시 몸은 정직하다. 세월은 기억을 조작하지만 몸뚱이는 거짓말을 못 한다. 살아온 삶의 흔적을 몸은 고스란히 간직한다. 인생의 나이테는 몸뚱이에 아로새겨진다. 병과 통증은 살아온 삶의 증거다. 역설적이게도 아플 때만큼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 또 없다.
근처 카페에 들렸다. 주변 직장인들이 점심 후 커피 한 잔, 북적댄다. 상큼한 연두 분홍색 가디건 샬랄라 주름치마 봄옷으로 단정한 여자들. 시원하게 반팔 반바지를 입은 청년들까지, 정말 봄이다. 이들 사이에서 홀로 츄리닝에 후드를 뒤집어쓴 내가 이질적인 존재같다. 삼삼오오 여럿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쏴르르 몰려 떠나간다. 문득 점심을 여럿이 같이 먹고 커피를 함께 마시러 다니던 시절 사람들 무리와 어울려 지낸지가 언제였던지를 떠올려 봤다. 까마득한 옛날인 것만 같다.
카페에 붙어있는 그림이 저절로 눈에 들어온다.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무슨 계시인가. 지금 내가 도저히 취할 수 없는 자세로 세 명의 사람이 사이좋게. 이렇게 등을 활처럼 휘어 허리를 접고 아치를 만들 수 있었던 적이 언제였더라. 너무 쉬워서 코웃음쳤던 장난같던 자세였더랬는데. 아, 옛날이여. 뒤집고 제비돌던 그 시절, 덤블링하던 그 시절의 나를 추억한다. 나이든다는 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을 몸이 녹슬어간다는 걸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 마냥 서글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