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운동이 보험, 건강이 재테크

by 홍재희 Hong Jaehee



매년 본편에 오른 영화를 심사하는 영화제가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심사일이 되었다.

1년만에 다시 만난 사람들.

영화제 본선 심사할 때만 얼굴 맞대고 인사하는 사이지만 반가웠다.

그런데 날 보더니 다들 한마디씩.


- 아니, 뭐했는데 몸이 이렇게 좋아졌어요?

- 운동하나봐요?

- 몸이 작년이랑 다르네. 장난아니네.

- 아, 네. 헬스하고 있어요.


라고 대답은 했지만......


저요? 제가요? 정말 그런가? 나는 내가 봐도 달라진 하나도 없는 거 같은데. 거참, 쑥스럽구만.

몸이 좋아지기는커녕 때마다 이런 저런 잔병에 입퇴원을 반복하는 난데. 사람 겉만 보고는 알 수 없는데.

웃음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몸뚱이가 재산이라 카메라 들려고 운동하고, 편집하려고 운동하고, 글 쓰려고 운동하고, 일하려고 운동하고,허리 안나가려고 운동하고, 아프기 싫어서 운동하고, 진짜 살려고 운동하는 건데.



프리랜서 노동자, 예술인에게는
몸뚱이가 전부다.
건강이 재산이다.



재작년 여름에는 이석증이 재발해서 입웠했었다.

잘 먹으라고 쉬어야한다고 편안하라고 오는 공주병 꾀병같은 병.

겨울에는 어지럼증에 병원을 재차 찾았다가 기립성저혈압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과로하고 잠 못자고 잘 못 먹고 몸무게가 줄고 몸에 무리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지럼증이 온다.

이석증은 내 몸이 이상신고를 알려주는 바로미터.

작년은 초강력 무더위에도 선풍기랑 냉풍기 덕에 겨우겨우 슬기롭게 잘 넘겼다.

지난 겨울 최강 한파도 탈 없이 넘겼으니 올 여름도 무사히 별탈 없이 잘 넘어가기를.


헬스 PT 코치는 늘 말했다.

회원님. 더 많이 드세요. 회원님 같은 분은 근육이 붙으려면 지금보다 살이 좀 더 쪄야 돼요. 많이 드세요.

그건 알죠. 그런데 식도염에 위장장애가 있어서 제가 뭘 많이 먹질 못해요.

조금만 잘못해서 속병이 나거나 배탈이 나면 몸무게는 도로 나미아미타불.

체지방 체질량 근육량 모든 게 감소.

PT 코치는 그런 날 늘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운동을 마치고 나면 의식적으로 고기나 생선을 그것도 못하면 계란 두부라도 꼭꼭 챙겨먹는다.

날마다 달걀 두 개 꼬박 꼬박.

무릎이 아작나고 십자인대 수술 후 딱 하나 다짐한 게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나간 무릎을 또 다치게 하진 않겠다는 결심.

퇴원할 때 수술을 집도했던 담당 의사는 콕 찍어 강조했다.

약간의 과장을 곁들어 겁까지 주면서.

인대 연골이 날아간 무릎이 늙어서도 멀쩡하려면 말이죠.

근육 힘으로 버티셔야합니다.

살찌면 비만하면 절대 안 돼요. 그 하중을 무릎이 다 받아요.

1kg 찔 때마다 무릎에 2-3배 많게는 10배 하중이 가요.

그럼 퇴행성 관절염이 반드시 옵니다. 그럼 아파서 못 걸어요. 아시겠어요?

그러면서 의사는 겉보기에도 비실비실 했던 나를 흘낏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환자분은 그럴 거 같진 않네요.


나이들어 제대로 걸을 수 없다니

20kg 배낭을 매고 여행을 갈 수 없게 되는 미래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살기 위해서라도 근육을 키워야겠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고마운 의사야.

운동 중간 쉬는 시간에 문득 거울을 바라본다.

뭐, 살이 찔거 같진 않아. 아직까진. 좋았어.



코치는 입이 닳도록 내게 주문을 걸었다.



체력은 근력에서 나온다.
정신력은 근력에서 나온다.


처음 헬스를 시작할 때는 한 쪽 다리로 서 있지도 못하고 그대로 모로 쓰러졌었다.

바닥에서 발을 떼자마자 지탱하던 다친 다리가 푹 꺾였다.

몸이 한 쪽으로 기우뚱 볏짚처럼 푹 쓰러지는데 정말 큰 충격을 먹었다.

다친 다리의 근육이 없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몸의 균형이 깨져 있을 줄이야.

지금은 오른 쪽 왼 쪽 할 거 없이 한 쪽 다리로 1분이상 서 있을 수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남들이 들으면 뭐 그런 거 하나로 그토록 기뻐하겠냐 하겠지만

다치기 전에는 의식하지 않고 되던 동작이 뜻대로 되지 않았던 사람은,

재활이라는 긴 시간을 보냈던 사람은,

아파본 사람은 안다.

외다리로 서기. 그 작은 움직임 하나를 성취해냈을 때의 희열을.



여하튼 뭐든 꾸준히 하면 보답이 오는데 그 보답 중에 최상의 보답을 주는 건 운동인 거 같다.

몸은 거짓말을 안한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단, 과유불급.

뭐든 과하면 다치거나 아프다.


나이들수록
성격은 얼굴에 나타나고
생활은 체형에서 나타나고
본심은 태도에서 나타나고
감정은 음성에서 나타난다.



나이들수록 반듯하게 정갈하게 깔끔하게 몸과 마음이 퍼지지 않고 살고 싶다.

격언을 마음에 새기며 나는 오늘도 운동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