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프리랜서는 말이 프리(free) 랜서고 좋게 봐서 비정규 계약직 또는 개인사업자라고 붕리지실상은 그냥 백수다. 스스로 일감을 찾아다닐 능력이 없거나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면 굶어 죽는다. 자유와 낭만으로 포장되는 프리랜서의 삶이란 영화 속에나 있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실하고 실력이 출중해도 알아주지 않으면 소용없는 세계가 프리랜서의 세계다. 프리랜서는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기까지 수년이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억대를 벌어들이는 유명인이 아닌 다음에야 대다수 프리랜서는 늘 생계에 쪼들린다.
성수기에는 밀려드는 일거리에 쉴 시간도 없지만 겨울 같은 비수기에는 일이 없다. 알바라도 전전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프리랜서는 수입이 들쑥날쑥해서 대출도 어렵다. 수입이 없는 비수기에도 줄어드는 통장 잔고에 불안에 떨지 않으려면 프리랜서에게 강한 멘털과 자존감은 필수다. 따라서 들쑥날쑥한 가계와 불안정한 생활에 심장이 쪼그라드는 사람, 남의 시선에 연연하고 남과 비교를 자주 하는 사람,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는 삶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라면 프리랜서보다 차라리 월급쟁이로 사는 게 더 낫다.
프리랜서란 남의 지시와 명령에 따르지 않고 자유롭게 시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일할 수 있고, 같은 업무 대비 고소득을 올린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계약과 마감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주말이건 공휴일이건 계약 기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시간이 모자라면 무조건 일해야 한다. 마감이 코앞이면 월급쟁이들처럼 빨간 날 놀 수 없다. 모든 계약 조건을 스스로 정하고 지키고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다. 일이 없으면 수입도 없다. 보험도 실업급여도 뭣도 없다. 자율성을 선택한 대신 안정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게 프리랜서의 삶이다.
프리랜서 하면 왠지 오롯이 제 능력과 힘으로 먹고사는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혼자 일하는 사람일수록 잘 안다. 남의 도움과 타인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사람이 귀하다는 걸을 프리랜서로 살면서 오히려 뼈저리게 느꼈다. 프리랜서는 소속만 없다 뿐이지 일에서 인간관계가 반이다.
나는 프리랜서로 살면서 만난 수많은 이들에게 유형무형의 도움을 받았다. 집단이든 개인이든 수많은 타인과 일정한 관계를 맺으며 살게 되어있다는 것을 배웠다. 프리랜서가 되면서 오히려 사람의 소중함을 인연의 귀중함을 절실히 깨우쳤다. 오로지 혼자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란 이 세상에 없다. 저마다 차이가 있을지언정 어떤 일이든 어느 정도 협업은 필수다. 따로 또 같이. 그것이 프리랜서가 가슴에 새겨야 할 좌우명이 아닐까.
인터넷이 없으면 안 되는 세상이지만 나 같은 프리랜서는 정말이지 인터넷이 없으면 큰일 날 뻔했다. 랜선으로 맺은 인연으로 일을 하기도 하고 온라인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일을 하게 되어 가까워진 사이도 있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도 평소에는 바빠 온라인으로 소식을 주고받는다. 매우 가늘고 길게 느슨하게 이어지는 인연이 내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편안한 관계다.
모든 만남은 에너지와 정성이 필요하다. 한정된 에너지를 잘 분배해서 정성스럽게 써야 한다. 창작자로서는 아무도 안 만나지만 개인이자 자연인인 나는 언제든지 이웃과 친구와 가족을 만난다. 달도 차고 기울듯이. 초승달인 내가 있고 보름달인 내가 있다. 그동안 숱하게 만났던 인연과,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이제는 가만히 제 자리에 돌아와 문을 걸어 잠그고 그 안에 넘쳐흘렀던 이야기들을 가지런히 펼쳐 놓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걸 안다. 이곳에 둥지를 틀고 살게 되면서부터 그런 느낌이 들었고 지금까지 그 느낌대로 살았고 앞으로도 살 작정이다.
프리랜서인 나는 주로 일하는 공간이 집이다. 따라서 사소한 일로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일상은 되도록 느긋하게 꾸민다. 홀로 있어야 가능한 자유다. 밥상도 느긋하게 간단히. 과정이 복잡하고 맛있는 최상의 음식은 굳이 내가 할 필요가 없다. 난 요리사나 세프가 목적이 아니다. 집밥은 간단하면서 맛있으면 된다. 청소는 생각날 때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한다. 단, 화장실만큼은 더러워졌다 싶음 곧바로 한다. 지저분한 집 때문에 스트레스받기 싫다. 매일 아침 일어나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고, 구석구석 먼지를 닦는 일은 종종 한다. 집안일을 할 때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다. 그리고 아무 생각도 안 한다. 오직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행위에만 열중한다.
혼자 있으면 시간이 많지만 시간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즉, 혼자 있지만 진짜로 혼자 있어야 한다. 특히 집에서 일을 하는 경우에 더 그렇다. TV는 없으니까 상관없고, 인터넷, 휴대전화도 멀리한다. 휴대전화는 아예 묵음으로 해놓는다. 그렇지 않으면 글을 쓸 때 방해받아서 흐름이 깨진다.
때로는 책도 조심해야 한다. 글을 써야 하는데 책이 너무 재밌어서 읽다가 하루를 다 보낸 적도 있다. 넷플릭스도 위험하다. 한 회 두 회보다가 밤을 꼴딱 새우고 아침을 맞은 적도 많다. 무엇이든 한 번 빠지면 지나치게 빠져드는 게 문제다. 나 같은 사람은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호기심이 강하고 흥미를 끄는 것에 그대로 빠져드는 중독적인 성향이 강해서 규칙이 더욱 필요하다. 글을 쓰거나 창조적 작업을 할 때는 그것이 무엇이든 지나치게 빠지면 도박과 중독과 다를 바 없다. 시간을 뺏기고 생각을 강탈당한다.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소한의 규칙이 있어야 한다. 누가 일상을 대신 관리해 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지킬 수 있는 규율이 필요하다.
혼자 일하고 쓰고 촬영하는 일을 하다 보면 상습적으로 찾아오는 것들이 있다. 허리와 어깨 통증은 일상다반사다. 30대는 며칠씩 밤을 새우고 잠을 줄여가며 일해도 견딜 수 있었지만 점점 몸에 이상이 왔고 균형이 깨지자 이후에는 몸의 교정이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다. 글이 잘 안 써진다거나 마감 시간에 쫓긴다는 이유로 촬영장에서 끼니를 거르고 건너뛰다가 과식을 하거나 늦은 시간에 밥을 먹었다. 탈이 나기 시작했다. 몸은 불규칙한 생활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위장병, 식도염이 재발했다. 불규칙한 식사, 들쑥날쑥한 일정,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를 왔다 갔다 하며 이동이 잦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일정하지 않은 생활을 지속하다 보면 나이 들면 결국 병이 찾아온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프리랜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건강한 몸뚱이 말고는 가진 게 없는 프리랜서에겐 몸이 전부다. 프리랜서는 몸이 탈이 났을 때 아플 때 대신할 사람도 백업할 재산이 없을 때 가장 서럽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나 자신을 지탱하고 견뎌내게 하는 힘의 근원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체력 관리와 일상의 규칙이다.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는 식사 시간도 규칙성을 따라야 한다. 제때 잘 자는 것과 더불어 제때 잘 먹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매일 걷고 또 걷고. 산책하고, 몸을 움직이고, 자극적인 음식이나 과식을 피하고, 밤에는 가급적 물 외에는 아무런 음식도 먹지 않는다. 늙어가는 위와 장도 뇌도 쉬게 해 주어야지. 네가 날 잘못 만나 고생이 많다.
프리랜서로 오래 버티려면. 홀로 늙어갈 시대에 무엇보다 자기 관리는 기본값이다. 직장을 다니거나 조직의 구성원일 때는 내가 아파도 대체할 사람이 있다. 하지만 프리랜서인 나는 누구도 나를 대체할 수 없다. 대체 불가한 일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최악의 위험부담이 될 수도 있다. 스스로의 판단과 업무 순서와 일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프리랜서의 최대 장점이자 최악의 단점이다. 따라서 프리랜서에게 체력은 곧 정신력이자 실력인 셈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는 시간마저. 아무것도 안 하고도 잘 보낸다. 세상에 똑바로 서 있지만 삐뚜루 보기를 좋아한다. 비뚜름한 눈으로 바라보고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세계를 상상한다. 읽고 쓰고 상상하는 것을 너무나 사랑한다.
뭔가는 할 때는 초집중하지만 뭔가를 안 할 때는 아예 안 하는데서도 재미를 느낀다. 인간이 벌이는 활동은 발전이기도 하지만 지구상에 족적을 남기는 자체가 공해라는 생각도 든다. 되도록 나서서 이곳저곳에 자국을 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여행을 떠나서도 되도록 흔적을 남기지 않고 돌아오려고 한다. 배 터지게 먹고 마시고 싸는 여행은 내 취향이 아니다. 캠핑장에서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사라진 흔적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꾸준히 산책을 가거나 공원에 누워 게으르게 멍을 때리거나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낮잠을 청하고 햇빛을 쬐거나 따릉이를 타고 시내를 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작고 예쁜 카페에 들어가 맛있는 카푸치노를 마신다. 좋아하는 음악에 귀 기울이고 여유를 만끽하는 게 훨씬 재밌다.
일이 없을 때 혼자 있을 때 우울감에 빠지거나 정신이 나태해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한다. 스스로 잘 굴러가려면 자기 관리가 관건이다. 자제력이 필수다. 나는 원래 환경적인 면에서 물자를 낭비하는 유형은 아니다. 물건 소유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서도 그렇고 내 활동은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걷기, 산책, 돈 많이 안 쓰고도 즐길 수 있는 여가활동은 은근히 많다. 셀프컨트롤.
나는 한결같이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은 못 된다. 늘어지면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진다. 어릴 적 어머니는 말끝마다 '귀찮아'를 연발하며 늘어져있는 나를 보고 혀를 끌끌 차며 너처럼 게을러서 어디다 쓰냐고 잔소리를 했었다. 손이 야무지고 매사에 흐트러짐 없이 완벽했던 부지런한 성품의 어머니 눈에는 기분 내키면 하고 성질나면 관두며 게으름을 피우던 나는 당신의 성에 안 차는 자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게으름은 여유이지 나태함은 아니다. 게으를 수 있는 건 여유를 의미하지 태만과 무기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게으름과 귀차니즘은 다르다. 최선을 다해 고요하고 즐겁게 지낸다. 내가 나에게 쏟는 노력과 시간은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
열정만으로 먹고살기는 어렵다. 나는 열정을 불태워 명작을 만드는 천재가 아니다. 잘하는 일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하다거나 으뜸가게 좋아해서 잘하는 걸 업으로 삼으면 되려 싫어진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최고로 잘 하진 못해도 그걸로 밥벌이를 삼았으니 잘된 일이라 치자.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은 내 소유물도 아니고 내 마음대로 통제도 안 되니 내가 견디어야 할 그 무엇이다. 그러므로 견딜 수 있을 만큼 좋아하자. 잘 사랑하자. 격정적으로 미친 듯이 사랑하지 말고 잘 사랑하자. 오래가는 사랑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한 것이다.
과거에는 미친 듯이 좋아하고 죽도록 사랑했지만 그 순간이 값지기도 했지만 그런 불꽃 튀는 사랑은 쉽게 사그라들고 깊은 상처로 남는다. 그러니 이제는 멀리 넓게 보자. 그윽이 그리고 잔잔하게 멀리서 좋아하는 게 오히려 사랑인지도. 그러니 오래가는 사랑을 하자.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그윽이 잔잔히 사랑하자.
일상생활은 단출하게.
생각은 단순하게.
하지만 상상은 거대하게.
그리하여 자유롭고 외롭게.
살며 사랑하며 배우는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