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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단상

봄은 사랑이다

by 홍재희 Hong Jaehee





사나흘 만에 집 밖을 나섰다가 가슴이 쿵....! 했다. 하늘에 시나브로 봄이 당도했던 것. 겨우내 말라죽었다 생각한 은행나무 가지에 봄의 정기가 움틀거리고 있었다. 땅힘이 뿌리를 타고 하늘로 하늘로 뻗쳐 오른다. 가로수 밑동에 파릇파릇 풀들이 솟아났다. 보도의 갈라진 틈 사이사이마다 풀꽃이 기지개를 켠다. 경이롭다. 봄이 엉덩짝 무거운 겨울을 힘껏 밀어 올리고 있는 풍경. 쌀쌀한 꽃샘추위에도 생명은 부지런히 봄을 실어 나른다. 땅은 봄으로 분주하다. 봄은 땅에서부터 온다.


파란 하늘이 몹시 그리웠다. 어제는 미세 먼지 묵은 때를 깨끗이 털어버린 산뜻한 하늘이 펼쳐졌다. 뺨에 닿는 바람마저 푸르고 푸르렀다. 마음이 깃털처럼 날아올랐다.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본다. 한숨 두 숨 푸른 봄바람 소리가 들린다. 바람은 물결을 일으키고 맥박은 밀물 썰물 심장은 바다가 된다. 살아있음에 전율하는 순간. 생을 호흡하는 순간.




걸어가는 길목 길목마다 무더기무더기 피어난 매화가 개나리가 목련이 벚꽃이 하하 호호 노래한다.

펑펑펑, 사방 천지에서 울리는 생의 폭죽. 부풀어 오르는 그리움, 어질어질한 그리움. 이 잿빛 도시에 색이 없다면 꽃이 피지 않는다면 얼마나 잔인할까. 나는 또 얼마나 침울했을까. 이 세계에 희망이 있다면 나는 저 꽃 한 송이에 희망을 걸겠다. 꽃들에게 희망을. 봄을 잉태한 꽃들에게 입맞춤을. 봄꽃이 만발할 때 즈음 나는 아지랑이 같은 사랑을 꿈꾼다.


따스한 햇살이 솔솔솔 내리쬐는 울 동네 마을 풍경. 걸음을 멈추고 봄이 느릿느릿 걸어가는 골목을 오래오래 내려다봤다. 봄이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껌 하나 사탕 하나 젤리 하나 까먹고 지붕 위에 길게 모로 누워 하품하는 길냥이들과 노닥거리다가 나뭇가지 위 이름 모를 새들과 조곤조곤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러다 봄이 포로롱 포로롱 하늘로 날아올랐다.


네가 돌아왔구나! 가슴에 눈물이 살포시 차올랐다. 가만히 가만히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으면 알 수 있다. 보고 듣고 만지고 널 느낄 수 있다. 봄. 겨우내 뒤도 안 돌아보고 날 떠나버린 님이 멀리서 돌아 돌아 살아 돌아왔다.

게으름뱅이 봄, 정주고 또 떠나도 미워할 수 없는 봄, 이제나 저제나 올까 싶어 날 애태우던 봄, 그 봄이 고개를 돌려 함박웃음을 짓는다. 봄. 봄이 내 품으로 달려온다. 두 팔 벌려 껑충껑충 달려온다.





귀갓길. 해넘이. 햇살이 벚꽃에 살포시 입을 맞춘다. 벚꽃 잎마다 노을빛이 스며든다. 흐드러진다. 사방팔방에서 폭죽 터지듯 팡팡팡 사랑하는 소리. 봄이 사랑을 나눈다. 눈이 부시다.


하늘에 두둥실 떠오르는 두 글자.


황, 홀.


​https://youtu.be/VSe3fgkq428?si=nEjk8VeyezcRhwq​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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