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자본주의 사회 한국인의 아파트사랑
한국인 대부분은 아파트 중독자다. 한국인들의 아파트 사랑, 아파트 중독증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연령 세대 불문 대화를 나눠보면 모든 이들에게 내 집 마련의 상징은 바로 아파트 입성이다. 한 치의 예외도 없다. 그리고 그 아파트는 더 새것, 대기업 건설 시공사, 새 브랜드여야 한다. 대기업 브랜드를 단 아파트를 내 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정말 끔찍하게 천박하고 자본주의적이지 않나. 아파트가 집(home)이라기보다 투자상품(product)이라는 걸 브랜드명보다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없다.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는 사는(to live) 보금자리라기보다 과시적 현금성 투기 대상(to buy, to sell)이다.
45년간 살던 우리 집이 재개발로 헐리고 그 위에 들어선 대단위 아파트 단지 한 동에 어머니가 임대로들어가 산다. 하늘이 보이는 마당 철마다 나비가 날아오는 꽃밭이 있던 단층 주택 179-24번지를 잃고, 콘크리트 아파트 602호를 얻었다. 현재 어머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이편한 세상 파크힐스'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힐스(hills)는 맞는데 파크(park)는 언감생심. 나무 몇 그루 가로수 대충 심어놓고 공원인 척하는 아파트단지는 파크힐스(언덕 있는 공원)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민망하다. 내 눈에는 아파트 단지가 모로 세운 거대한 성냥갑에 단추구멍을 수도 없이 뚫어놓은 거대한 성채, 출입을 불허하는 그들만의 요새, 성냥갑 공장으로밖에 안 보인다. 건너편에는 자이 뒤로는 삼성 래미안 대각선으로는 벽산 그 너머에는 대림. 사방이 아파트로 둘러싸여있다. 그러고 보니 숲은 숲이다. 아파트 숲. 콘크리트 공원.
산자락에 세워놓은 20층 높이의 아파트 한 채가 23억을 호가한다. 전세는 기본 5억 이상이다. 월세는 보증금 1,2억에 백만 원을 가뿐히 넘는다. 수 년 전에 부모님이 아파트 재개발에 도장 찍고 현금청산으로 받은 돈이 3억이다. 3억과 23억. 기이한 일이다. 비현실적인 숫자 놀음 앞에 잠시 현기증이 난다. 단지 상가 부동산 이름은 뉴욕 파크힐스다. 처음에 이 간판을 보고 뿜었다. 뉴욕과 무관한 서울, 언덕배기 아파트 단지에 입성한 한국인들의 속물적 욕망이 너무 솔직해서. 뉴욕 파크힐스는 진짜 센트럴 파크라도 있지. 여기엔 도대체 무엇이 있나. 시간도 역사도 동네도 모두 개발로 밀어버리고 그 위 배수지 자리에 코딱지만 한 공원을 만들어 놓고 뉴욕과 비등한 파크힐스가 되고자 하는, 돈에 환장한 비루한 영혼들, 날것의 욕망뿐이다. 부끄러움 없이 대놓고 이글대는 욕망에 눈이 멀 정도다.
택시를 탔다.
어머니가 사는 00 아파트로 가자 했더니 택시기사가 아는 체하며 반색을 했다.
자기도 거기 산다면서.
아 그러세요? 하며 죽을 맞춰주었다.
그랬더니 기사가 이 동네가 요즘... 좀 살죠.
잘 사는 동네라며 뻐기듯 자랑을 한다.
나는 그만 삐딱해져서 반문했다.
뭐가 좀 사는 건데요?
여기에 제대로 된 공원이 하나 있기라도 하나요?
가게도 하나같이 똑같고, 문화도 없고, 개성도 없고,
식당 카페도 죄다 프랜차이즈, 구리고 음식 맛도 꽝이고,
꼴랑 붕어빵처럼 찍어낸 못생긴 콘크리트 고층 아파트 밖에 없는 동네인데요.
그랬더니 기사가 입을 다물었다.
아마도 택시 기사의 머릿속에 '잘' 산다는 건 아파트 시세가 20억쯤 되는 거는 걸 뜻하는 것일 게다.
대놓고 돈 자랑. 지긋지긋하다. 돈이면 장땡. 속물근성. 징글징글하다.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요즘 어린애들은 사는 집을 그리면 아파트를 그린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서울에서 흔치 않게 아파트가 없고 단층주택과 골목이 남아 있는 옛날 동네다.
주말마다 2030대 젊은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카메라를 들이대며 셀카를 찍는 광경을 본다.
이들에겐 골목길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조차 신기한 체험이다.
주말 한나절 복고 놀이 레트로 코스프레를 하고 나서 이들은 다시 제가 사는 아파트로, 혼자 사는 원룸, 오피스텔로 돌아갈 테지.
그리고 아파트로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을 꾸고 오늘도 잠자리에 들 테지.
내가 나고 자란 동네는 이제 아파트 성채, 콘크리트 숲이 되었다. 상전벽해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처럼 어울리는 곳이 또 있을까. 옛 모습은 남김없이 모조리 사라졌다. 골목길과 옹기종기 이웃한 단독주택과 계단과 축대 그리고 담장 너머 장미덩쿨과 감나무, 동구밖 아름드리 나무의 추억, 옛 동네의 정취는 이제 내 기억 속에나 있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거리를 걷는다. 올려다보기만 해도 몹시 피곤하다. 사방이 똑같은 외형인 초고층 아파트와 뻥뻥 뚫린 차도와 쇼핑모르 상가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서 걸으면 쉬이 피로가 몰려오는 거리. 도대체 걸을 맛이 안 난다. 정이 안 간다. 오만 정이 뚝 떨어졌다.
요즘 유행하는 한국의 고층 아파트 건축은 건축이 아니다. 수익성만을 따져 용적율에만 올인한 거대한 네모 상자를 도저히 건축이라고 불러줄 수가 없다.
아파트를 지어도 왜 디자인이 하나같이 똑같을까. 베란다 하나 없이 눈구멍만 뚫어놓은 저 네모 상자 어디에 도시의 미학이 건축이 담겨있나. 위로 올리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이 없다. 숨이 막힌다.
이런 곳에 사는 인간들의 머릿속을 생각했다. 디자인도 미감도 철학도 뭣도 없는 감옥 같은 아파트에서 좋아라 하고 사는 한국인들. 남에게 보이는 모습에 그리 신경 쓰는 한국인들이 자신이 사는 이런 아파트의 흉측한 외관에는 왜 1도 신경 쓰지 않을까? 아파트 시세가 몇 십억 그새 또 얼마 올랐다고 기뻐하며 기꺼이 자발적 감옥생활을 원하기 때문이겠지.
전국팔도 고층 아파트의 못생긴 외관을 혐오하는 건 나 같은 사람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부동산을 소유했다는 자부심에 도취되어 있을 것이다. 수십 억 짜리 셀에서 사는 대한민국 중산층의 취향이란 참으로 후지기 짝이 없구나. 억 소리 나는 값비싼 감옥에 사는 촌스런 돼지들이 따로 없다.
탐욕의 바벨탑. 언제 무너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