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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습이여 안녕~~!

by 홍재희 Hong Jaehee


1.


결혼한 남동생의 아내는 동생을 오빠라 부른다. 그 오빠란 소리를 들을 때마다 으윽... 낯간지럽다. 내 인생도 내 관계도 아니니 그냥 모른 체한다.


내 인생에 오빠라 불리는 인간은 피가 8분의 1 섞였다는 꼰대 사촌들과 사회에서 만난 사람 중에 내가 자발적으로 오빠란 호칭을 부여 했던 딱 2명. 그중 한 명은 세상을 떴으니 이제 단 한 명이다. 앞으로도 부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명절이라고 더 이상 제사도 지내지 않으니 일부러 친척을 만날 필요도 없다. 친가든 외가든 마치 큰 어른 노릇 아빠 행세하는 친척 오빠 따위를 만나지 않아도 되어 정말 다행이야.



2.


추석연휴.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큰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큰집에 가지 않은 지도 수년이 되었고 몇 해전 납골당에 모셔둔 아버지의 유골을 산개한 후 성묘를 드리러 갈 이유도 사라졌고 제사마저 더 이상 지내지 않는 추석 연휴. 아버지 제사 대신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간단한 묵상으로 대신한다. 올해는 어머니가 병상에 누운 후 처음 맞는 추석이라 간단하게. 탕국 하나 끓이고 평소대로 먹었다.


3.


결혼한 동생이 연휴 주말에 제 아내의 고향에 장인과 장모를 먼저 뵈러 갔다가 손에 바리바리 과일을 싸들고 추석 전날밤 어머니 댁에 들렀다. 솔직히 나는 동생의 아내가 추석에 우리 집에 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동생과 결혼한 배우자라 하지만 비좁은 집에 객식구라니 부담스러웠다. 결혼은 걔네 둘이 했지 나나 엄마랑 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아버지 추도식에 왜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 참석해야 해? 나는 불편하다고 구시렁대었다.


그런데 굳이 둘 다 오겠다 했다. 이미 서로가 추석 연휴에 양쪽 집을 똑같이 번갈아 오가기로 결정했다나. 결혼 첫 해인 데다 병원에 누워있느라 아들 결혼식에도 참석 못한 노모와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정 앞에 인사차 들리고 싶다 했다고.



4.


다음날 아침 다들 느지막이 일어났다. 마침 일어난 동생 아내가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길래 내가 한 마디 했다. 앞으론 이런 거 하지 마세요. 그냥 쉬세요. 나는 동생 아내는 며느리가 아니라 이 집을 방문한 손님이라 생각한다. 그는 동생과 결혼한 사람이지 동생이나 나와 같은 우리 부모님의 자식이 아니다. 네 그렇습니다. 전 며느라기 질색입니다.


내가 밥을 안치고 계란말이 하나 만들고 동생이 불고기를 볶고 동생의 아내가 음식을 나르고 그렇게 같이 밥상을 차렸다. 어라? 어색함 없이 흘러가는 이 그림 생각보다는 괜찮은데 싶었다. 십여분 남짓 아버지 추도식을 마치고 다 함께 아침을 먹었다. 식사 후 동생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커피를 타서 동생 아내와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ㅡ불편하지 않나요?

ㅡ아뇨. 하나도 안 불편한데요. 전 언니 편해요.

ㅡ그래요? 으응? 그런가?


하하 호호 웃는 그네의 진짜 속마음이야 모르겠지만 하긴 제사도 지내지 않고 제사음식도 차리지 않고 밥 한 끼 같이 먹고 가는 거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집 안에서 불편한 사람은 나 하나였나 보다.


미국에서 언니에게 추석 안부 전화가 왔다. 동생 부부가 왔다 하니 언니왈. 아니 피곤할 텐데 왜 아직도 집에 있어? 얼른 보내. 빨리 가서 쉬지 뭐 하는 거임?


웃겼다. 언니나 나나 이럴 땐 생각하는 게 똑같다.



5.


밥상을 물린 후 집안에 새로운 식구가 늘면 늘 그렇듯 어머니가 동생 아내에게 우리 집 가족 사진첩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후에 동생부부가 제들 집으로 떠났다. 추석 하루 한 끼 밥상으로 마무리. 다시 조용하고 고즈넉한 연휴 일상으로 돌아왔다. 제사를 하냐 마냐를 두고 어머니와 지지고 볶고 싸우기를 수차례ㅡ 이렇게 내 대에서 우리 집은 제사를 폭파해 버리겠다는 다짐은 드디어 결실을 본 셈이다. 속이 다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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