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진정 폴리아모리가 가능한가?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간연애)를 추구한다는 남자를 만났다. 자신은 사랑을(True love) '믿지'않으며 연애 역시 '믿을' 수 없다고. 그러나 내 눈에 그는 사랑이나 연애가 아니라 그저 여자를 다시 말해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연애는 믿음의 차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는 그가 다자간연애를 지향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솔직히 나는 이성애 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 가부장제사회에서 남녀 간 사회문화적 경제적 젠더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폴리아모리는 한낱 이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성애자가 아닌 동성애자조차도 이성애 연애의 공식대로 구애를 펼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비독점적 다자간 연애가 말 그대로 ‘비독점적(!)’ 으로 다자간에 성립할 수 있을까?
소위 사랑과 연애에 부록처럼 따라오는 상대방에 대한 소유욕을 특히 독점적인 배타적 섹스를 포기할 사람이 정녕 있을까?
폴리아모리를 지향하는 사람이 다자간 연애에 반대하는 사람이거나 독점적 연애를 지향하는 여성 또는 남성과 사귈 때, 당신과는 다른 성적 가치관을 지닌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될 때, 그렇다면 그 관계는 무엇이라 규정할 수 있는가. 그것은 폴리아모리인가 아닌가.
(이성애자) 남성의 폴리아모리 선언에 여성들은 그가 그냥 바람둥이가 아닐까, 책임은 지지 않되 여러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싶을 때 꺼내드는 카드, 최적의 변명은 아닐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현실적으로 성적 자기 결정권조차 남녀 간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성은 해방된 성적 주체로 인정받지만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은 개인의 고유한 권리로 존중받지 못한다.
나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실제로 당신이 폴리아모리를 실천한다면 당신처럼 동등하게 자유로이 성적 관계를 맺고자 하는 여성,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실험하며 다자간 연애를 실천하는 여성을, 당신과 똑같은 욕망을 지닌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거부감이나 혐오감없이 인정할 수 있는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또한 그처럼 남김없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고 실천하는 여성 또는 폴리아모리를 지향하는 여성에게 당신은 지배권을 행사하거나 소유욕이나 질투심을 발동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열등감에 사로잡히거나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가. 당신은 진정 해방된 사람이라고 자신하는가.
이성애자 남성의 비독점적 다자간 연애 선언이 어딘가 공허한 울림처럼 들리는 이유는 자신의 자유로운 연애 관계와 섹슈얼리티의 실험에선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도 상대 파트너 여성이 해방된 주체로서 자유롭게 다양함 파트너와 맺는 관계를 동등한 의미에서 존중하는 남성을 현실에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성의 폴리아모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존중하는 남성을 현실에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개념적으로는 이론적으로는 관념적으로는 지지한다 그럴 수 있다면서도 정작 제 애인, 그러니까 제 여자로 여기는 여자는 안 된다,라는 이율배반과 위선이 있을 뿐이다.
성해방은커녕 성평등도 백안시하는, 성과 섹슈얼리티에 관해서는 뒤로 호박씨나 까는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과연? 내가 아직 못 만나봐서 식견과 경험의 폭이 좁아서 그럴 수도 있으니 만일 그런 남성이 있다면 그와 같은 남성을 알고 있다면 내게도 알려주시라.
독점적 연애의 환상에 빠져 있거나 배타적 섹스를 고집하는 전형적인 이성애 연애공식을 수행하는 이들은 남녀관계에서도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라는 가부장제의 성역할 고정관념이 강고하다. 따라서 이들이 말하고 꿈꾸는 폴리아모리란 고작 타자를 통해 실제 경험하지 못한 관념의 삽질 폴리아모리에 대한 낭만적 환상은 아닐까.
문득 일처다부제(일부다체제가 아니다!)를 주제로 한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가 떠올랐다. 아내가 결혼(!)하는 것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이미 이혼한 아내/헤어진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와 사귄다고 앙심을 품고 여자에게 서슴없이 칼부림을 하는 한국 사회에서 폴리아모리라니. 나는 쓰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