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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숲 숨 삼

삼밭에서 노래하다

by 홍재희 Hong Jaehee



의료용 대마 합법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지인 감독을 따라 경기도 파주에서도 더 북쪽, DMZ와 가까운 지역에서 정부의 허가를 받아 삼을 키우고 있는 농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실제 거주민을 제외하고는 외부인은 여권을 지참하고 신고를 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군사지역. 장단콩 마을을 돌고 나서 원래 목적지인 삼밭 농장으로 향했다.


이 날 내가 삼밭에 누워 맡은 그 향은 평생을 가도 잊지 못할 것이다.

코 끝을 찌르는 알싸하고 삼삼한 그 풀향기.

온몸을 휘감고 오감을 자극하고 심장을 진동시키며 뇌와 공명하는 그 향이라니.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허파에서 용솟음치는 파도소리가 났다. 바다처럼 출렁거렸다.

풀들의 노래. 아아아 감탄사가 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피톤치드 삼림욕은 삼 향에 비할 게 아니다.

편백나무 향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1950년대엔 김포공항 주변에도 삼밭이 즐비했다고

당시 주둔한 퇴역 미군의 증언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우리 들판 어디나 푸르게 푸르게 무성하던 삼이 금기의 풀 죄악의 상징이 되었다니 역사는 기실 모순투성이다.

박정희 유신 독재는 삼의 운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삼, 즉 대마는 한국인들 머릿속에 모든 마약 중의 마약, 마약의 대명사로 낙인찍혔다.

중독성으로 따지면야 니코틴 알코올이 더 막강할 텐데

어이없게도 오직 대마만 불법이다.


긴장을 이완시키고 스트레스와 통증을 완화하며 감각을 해방시키는 마리화나는 한국인들을 경제 발전을 위해 몸 바쳐 일할 산업역군 노동기계로 개조해야 할 박정희 정권에게 위험한 풀이었을 것이다. 까라면 까는 상명하복 노동자, 15시간 초과노동하는 근면 성실한 근로자 대신 풀떼기를 피우며 피스~피스 평화를 노래하며 자유해방 따위를 부르짖는 해방된 자유인은 눈엣가시였을 테니.


대마를 둘러싼 부조리한 한국 현실, 삼이야말로 이데올로기와 정치의 희생양이 아닐까.


몇 해전 대수술을 마친 직후 어머니에게 모르핀보다 80배 강한 초강력 마약인 펜타닐을 진통제란 이름으로 들이붓는 광경을 지켜봤다.

섬망까지 찾아온 어머니와 펜타닐. 끔찍했다.

그 날 이 후 가슴 한켠에 소망 하나가 자라났다.

나는 훗날 죽음을 기다리면서 대마초를 피우다 가고 싶다.

적어도 삶의 마지막 국면에 통증에 시달리며 펜타닐에 몸뚱이가 푹 절여지기보다 마리화나를 피우며 웃으며 떠날 수 있기를.......




삼밭은 푸르러 푸르러

올려다본 하늘이

흔들리는 삼잎이 숨을 쉰다.

머나먼 정글 태고의 숲 한가운데

나는

누워있다.

바람이 불고 햇살이 희롱하는 사이에

삼이 노래한다.

아롱다롱 풀내음

지친 내 영혼을 살포시 어루만진다.



https://youtu.be/OzwLarhOoXM?si=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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