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기원.
1.
부처의 깨달음 큰 말씀을 모아놓은 <숫타니빠따>에서 아지 따가 "세상의 커다란 두려움이 무엇인가" 묻자
부처는 "집착과 괴로움"이라 대답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은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만남이 깊어지면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그로부터 고통이 따르는 걸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를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어리석음을 버리고,
속박을 끊고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길을 알고, 진리를 이해하고,
모든 집착을 제거하여 번뇌를 버린다면,
그는 세상을 바르게 흘러가리라.
멀리 사는 것이나 가까이 사는 것이나,
태어난 것이나 태어날 것이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행복하라.
그러하다.
방황하는 삶이 아니라 방랑하는 삶,
뭘 더 얻고 뭘 더 취하는 삶이 아니라 더 버리고 더 내려놓고 덜 연연하며 덜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
뱀이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나듯
새해에는 집착을 내려놓고 괴로워하지 않을 자유를 향해 천천히 그러나 쉬임 없이 나아가리라 꿈꾼다.
내가 바라는 단 하나의 삶이다.
2.
바로 어제였으나 이제 먼 과거가 되어버린 묵은해들을 잠시 떠올려본다. 봄과 가을 병원에서 두 차례 어머니 간병을 했다. 사이사이 촬영을 하고 알바를 하고 시나리오를 썼지만 일 년의 반을 병원에서 보낸 듯한 느낌이었다. 영화 편집은 더디게 흘러갔고 먹고사니즘에 치여 작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대었지만 스스로가 변명인 줄 알고 있었다. 그 사이 계절은 흘러 녹음이 무성하다 낙엽이 떨어지고 눈이 내렸다. 그렇게 시나브로 해가 바뀌었다.
그 와중에도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 같은 인연도, 모진 풍파를 이긴 나무처럼 오래되고 깊고 단단한 인연도 있었다. 만나고 헤어지는 삶, 떠나고 떠나보내는 삶. 지나간 일은 마음 쓰지 않는다. 아닌 인연은 바람처럼 떠나보낸다. 후회는 남기지 않는다. 미련은 그 자리에 두고 떠난다.
지난해 할 일 목록을 다시 들여다본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못했나. 무엇을 남겨두고 무엇을 지우고 살았나. 나는 여전히 무엇을 꿈꾸고 있나. 한 일보다 하지 못한 일이 더 많다. 픽 웃음이 나온다. 아마도 이 목록은 한 해 동안이 아니라 죽기 전까지 해야 할 일 목록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새 해에 실천할 일이라 제목을 쓰고 새 목록을 적는다.
새해에는 나는 여행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사람들 사이로 여행하는 나무처럼. 그리고 마음속에 푸른 하늘 아래 등대를 하나 심고 밤바다를 떠도는 배를 인도하는 등대 그 불빛을 향해 걸어가는 나를 그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실한 것도 없는데 받기를 바라는 건 날로 먹으려는 심보. 요행을 꿈꾸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복이 오도록 스스로 행하십시오.
새해
여러분 모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시길
안녕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