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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철학

by 홍재희 Hong Jaehee



주변에서 밥은 잘 먹고 다니냐는 말을 종종 듣는다. 집에서 잘해 먹고 산다 하면 깜짝 놀라거나 에이 설마... 라며 미심쩍어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반응을 볼 때마다 궁금해진다. 흐음.... 내가 집에서 밥도 안 해먹을 관상인가?


집밥은커녕 요리도 안 할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사실 나는 집에서 먹는 밥, 스스로 해 먹는 밥이 제일 속 편한 사람이다. 내 뱃속이 가장 편안해하는 음식을 해서 혼자 느긋하게 먹는 밥상만큼 만족스러운 것이 없다. 친구들은 내 밥상을 보고 환자식 또는 절밥이라고 농담을 던지곤 하는데 제철에 나는 재료를 쓰고 가공식품을 배제한 요리, 빨간색이 거의 없고 싱겁고 심심한 요리를 주로 하기 때문이다.



원체 비장이 약한 데다 위장장애가 있어 소화능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맵고 짜고 달고 자극적인 음식을 잘 못 먹고 빨리 먹지도 못한다. 매운 걸 못 먹는 건 가족력이다. 그러다 보니 유독 밥 빨리 먹는 사람들과 같이 먹는 밥상은 힘들다. 한국인들 태반이 밥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씹지도 않고 빨리 먹는다. 앞에 앉은 사람을 투명인간으로 만들고 접시에 코 박는 사람들과, 여전히 군대 내무반에 계신 듯 오 분만에 숟가락 놓는 남자들과 함께 먹는 밥처럼 고역인 밥상이 없다.



나는 일하는 중에는 뱃속이 예민해져서 부담스러워 많이 먹지 않는다. 아니 사실은 많이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다. 허기를 채우고 배가 부른다 싶으면 바로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그런데도 옆에서 더 먹으라고 많이 먹으라고 자꾸 추켜대는 사람들이 꼭 있다. 양으로 승부해야 잘 먹었다고 자위하는 사람들, 배가 불러도 게걸스럽게 먹고 또 먹는 사람들, 배가 터질 때까지 먹는 것에 목숨 거는 사람들, 남의 식습관에 감 놔라 배 놔라 참견하고 잔소리하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한국식 '정'의 표현이라는 건 십분 알지만 한 두어 번을 넘어서면 그건 관심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에겐 쓸데없는 오지랖이다. 함께 먹되 자기가 좋아하는 걸 알아서 먹으면 된다. 똑같이 다 같은 걸 같은 양으로 먹어야 할 이유는 없다.



어딘가 불편한 밥상은 체한다. 억지로 괜찮은 척하는 술자리는 탈 난다. 마음이 편하지 않을 때 보기 싫은 인간과 먹는 자리는 꼭 그렇다. 함께 하는 밥상이 편안한 사람이 내게 좋은 사람 나와 잘 맞는 사람이다. 내 위장이 인간관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다. 함께 먹고 마실 때 편안한 사람은 소통도 잘 된다. 내가 편한 사람과 마주한 밥상만큼 행복한 것도 없다.



나이 들수록 밥상에서 편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술상도 마찬가지다. 인생 별 거 없다. 자신이 먹고 마시는 것을 스스럼없이 보여줄 수 있는 상대를 마주하는 것,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밥상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 해도 복이다. 운 좋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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