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 구교도소(Old Melbourne

멜버른에서 보낸 한 철

by 홍재희 Hong Jaehee

멜버른에 머무는 동안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이 곳을 다녀왔다니까 친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자긴 십수년을 살았어도 가본 적이 없다며 도대체 교도소엔 왜 가는거야? 하며 날 신기해하던.

음… 난 이 도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지나온 과거가 역사가 이 도시를 거쳐간 사람들이 감춰진 이면이 이야기가 궁금하거던.


멜버른 구교도소(Old Melbourne Gaol).


서울로 치면 서대문형무소 같은 곳이다. 그러나 이 감옥에 식민지 해방 투쟁을 하다 독립 운동가들이 수감되었으리라 생각하면 안 된다.

호주 대륙 멜버른에 도착하여 원주민 법을 무시하고 영국식으로 셈하여 헐값에 지금의 야라강변 멜버른 땅을 사들인 존 배트맨 설교사를 비롯한 초기 영국 이주민들. 1850-60년대 19세기 중엽부터 시작한 영국인들의 이주 속도는 19세 말에 이르러 비약적으로 빨라지고 영국에서 건너오는 이주민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일명 골드러시. 금광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진정 그 끝이 없는지. 일확천금에 눈이 먼 영국인들로 홍수를 이룬 멜버른은 급속도로 규모가 커지고 그 대가는 치안부재 빈곤확산 각종 범죄 증가. 당시 멜버른 총독부는 치솟는 범죄율에 골머리를 앓는다.




이곳은 당시 영국에서 이송한 죄수뿐만이 아니라 멜버른에서 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수용하던 교도소다. 살인강도 등의 죄목으로 수용된 범죄자들은 호주에서 교수형이 금지될 때까지 이곳에서 예외 없이 목이 매달려 처형되었으며 교수형 장면은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감방마다 전시한 게시물은 이곳에서 교수형 당한 죄수들 신상 명세를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들의 인종, 출생 연도, 학력 사항, 죄목, 체포 날짜, 판결 내용, 처형 일시까지 빠짐없이. 기묘했다. 교수형 당한 죄수는 영국계 백인이 대다수지만 중국인, 에보리진 원주민 그리고 여성들도 있다.



호주인들에게는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유명한 강도범 "무법자 네드 캘리"도 이곳에서 처형되었단다. 로빈훗이나 의적 홍길동 또는 임꺽정을 연상시키는 네드 캘리 형제들. 그는 범죄자인가 영웅인가. 골드 러시 때 아일랜드에서 이주한 부모와 일정한 거주지 없이 황야를 떠돌며 가난에 찌들어 부랑아처럼 산 네드 켈리. 문득 유전무죄 무전유전을 부르짖은 지강헌 일당이 떠올랐다.


교수형 장소에 서서 목 매달린 죄수들을 묵상한다.



사형당한 죄수들의 시체는 범죄자 연구용으로 해부되거나 전시된 후 교도소 마당에 묻혔다. 전시장 곳곳에 죄수들의 두개골이 있다. 당시 범죄자의 뇌구조는 다르다는 골상학의 잔재. 인간을 관상과 두개골로 범죄자형이라 낙인찍는 인간들이란. 무엇이 인간인가.



날 때부터 살인자가 되고 강도범이 되도록 점 찍힌 사람은 없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환경과 빈곤 그리고 무지가 만들어낸 사회상을 보지 않으면 이처럼 극단적인 결정론의 오류에 빠진다. 그런데 여전히 이런 우생학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자는 흑인은 후진국 사람들은 게으르고 무능해서 가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인간들이.


골드러시 황금으로 번영을 누린 멜버른은 동시에 빈곤과 범죄와 기아가 들끓는 도시였다. 한쪽에는 대영제국 빅토리아 여왕을 기리는 멋들어진 총독부 건물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범죄자들을 수감하여 교수형에 처하던 교도소가 있다. 영국 본토 제국에서 파견한 지배자들은 멜버른에서도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고 몸뚱이 하나로 바다를 넘어온 노동자는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다 병들어 죽고 총질을 하고 돈을 빼앗고 사람을 죽여 처형당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인종 민족 언어가 달라도 노동자가 소유한 것은 몸뚱이 하나뿐이다.


이토록 아름답고 조화롭기만 한 멜버른은 불과 일 이백 년 전에는 알코올과 아편 중독과 매매춘의 도시였다. 중심가를 벗어나면 약탈과 강도짓을 일삼는 무법천지였다는 사실을.


멜버른이라는 도시가 생긴 역사 그리고 그 이면을 알면 알수록 만감이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