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나이트 마켓
멜버른 빅토리아 시장은......
빅토리아 시장이 1878년에 처음 개장했으니 140년 되었다. 영국 이주민들이 영국이 아닌 호주땅에서 2백여 년이 될까 말까 한 이주 역사를 뿌리 없음을 뿌리 있음으로 증명하기 위해서, 호주 대륙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영국을 곳곳에 심어놓기 위해서, 그들의 짧은 역사를 보존하려고 얼마나 강한 집념으로 강박적일 정도로 집착하는가는 멜버른 도시 곳곳에서 거리와 건물을 보면 알 수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이 빅토리아 재래시장이다. 빅토리아 시장 건물은 시에서 빅토리아주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
멜버른 여름은 축제의 계절이다. 멜버른 최대의 재래시장인 빅토리아 시장은 여름내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나이트마켓 야간시장을 연다. 올해가 벌써 야간시장 20주년이란다. 평상시 청과물 시장인 가건물내부가 전부 먹자골목과 수제 비누 오일 팔찌 목걸이 드림캐쳐 사진엽서 그림 등 수공예품 기념품 옷가게 등으로 변신하는 것. 푸드코트에 매대를 차린 음식은 전부 바비큐 소시지 핫도그 빠에야 파인애플볶음밥 등 노상에서 조리가 쉽고 간편히 먹을 수 있는 식사다. 고기 굽는 냄새와 연기가 자욱하다. 시내에서 영업 중인 식당에서 여기에 가판대를 차리는데 킹스트리트에서 본 한식당 강남포차가 여기서 꼬치를 팔고 있다.
시장 거리 바깥에서는 마임과 서커스 쇼가 한창이고 시장 길목 한쪽에는 락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다. 시장 안쪽에 설치한 간이 무대에서는 매주 다른 음악 공연이 열린다. 오늘은 라틴 삼바 밴드 다음 주는 동유럽 집시 음악 밴드. 세계 음악 총출동. 음식과 음악 그리고 사람들 친구들과 담소. 삼박자.
시장 한편에 타로점 보는 사람도 있다. 얼마냐 물었더니 무슨 질문이든 오케이 이십 분에 45불이란다. 잠시 여기서 자릿세 내고 점보면 어떨 것인가.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먹고 마시느라 정신없다. 분위기 보니 당최 글러 먹은 듯.
여름내 나이트마켓은 월수요일 영업을 하지 않는 시장 특수를 살리고(어차피 쉬는 날 뭐 할 거 없을까 하는 묘안) 기존 청과시장이 매대를 차렸다 시장이 파하면 물건을 트럭으로 옮기는 이동식이라는데 주안점을 두고 착안한 아이디어일 듯. 여하튼 청과물 상인들은 영업하지 않는 날이니 손해 볼 것 없고 식당은 야간에도 돈 벌 기회가 생겨 좋고 손님들은 먹으면서 시장구경하니 좋고. 관광객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밤에도 놀거리 생겨 좋고.
서울 시장은.....
서울에는 약령시 경동시장을 비롯 남대문시장 노량진 수산시장 중부시장 광장시장 동묘 벼룩시장 망원시장 등 서울 전체에 재래시장 천지다. 잠시 우리도 이런 기획을 하면 어떨까 잠시 궁리해 봤는데.... 안될 거 같다.
일단 서울 재래시장은 밤에도 문을 열고 노는 날 없이 영업시간이 너무 길다. 점포마다 이동식이 아니라 붙박이라 각종 밴드 공연을 하기에는 영업 방해라 욕먹을 듯. 따지고 보면 멜버른은 과거 재래시장을 전부 통합해 빅토리아 시장 하나로 만든 셈. 그렇게 본다면 규모로만 따지면 서울은 청과물시장 따로 수산시장 따로 약재시장 따로 포목시장 따로 벼룩시장 따로 하나하나가 빅토리아 시장을 넘어서지 않는가. 엄청난 인프라다. 서울의 재래시장에 비하면 빅토리아 시장은 그저 귀여운 애교 수준이다.
그렇다면 발상을 바꿔 서울의 조건에 맞게 서울에 있는 재래시장만 도는 시장투어를 만들어 보는 것은. 하루 코스 이틀 삼일 코스로. 주간 투어코스와 아예 나이트 마켓 코스 이렇게. 시장만큼 눈이 즐겁고 입이 즐겁고 요지경인 세상이 없다. 그 나라 사람들 사는 모습을 직접 피부로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서울에는 빅토리아 시장 규모 이상으로 큰 시장이 종류별 품목별로 있으니 이를 이것만 잘 활용해도 좋을 것이다. 시장마다 먹을거리 식당 길거리 음식이 지천이니 시장 특성을 장 살린 시장 안내 책자와 영문 표지판 지도도 제작하고 동시에 인터넷으로도 검색가능하게. 외국어 시장 투어도 만들고. 특정 요일에 명물이 될 음악 공연도. 이는 남대문 광장시장이나 동묘 망원시장 정도에서는 노천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어딜 가나 스피커를 크게 틀어놓고 교통량이 많아 소음이 심각한 공간을 피해서.
덕수궁 돌담길 야간 도깨비 시장이 신선하긴 했다. 한강 푸드트럭 축제도 남산 한옥마을 야간 장터도. 하지만 없는 걸 일부러 만들어 예스러운 척해봤자 푸드트럭으로 새로운 척하기보다 이미 있는 곳을 활용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상인이나 손님 관광객 서로에게 좋은 시너지가 된다면. 게다가 그게 더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최적일 듯. 경동시장의 역사는 조선 왕조의 역사다. 동묘시장에서는 동묘의 역사를 알려주면서 잡동사니 벼룩시장의 세계로 그리고 지금 현재 서울인들의 삶까지 들여다보는 공간을 통해 시간을 느끼고 역사를 자연스럽게 체험하는 시간.
그런데 정작 한국인 우리들만 이미 있는 재래시장을 우습게 보고 하찮게 지저분하게 쓸데없이 여기는 것이 아닌가. 주차할 데 없고 물건 찾아다니느라 발품 팔아야 해서 성가시고 불편한 곳이라고. 오죽하면 재래시장 이용상품권까지 만들어 재래시장 살리기에 나섰겠는가. 좀 떴다 하면 광장시장 바가지 행태나 뉴스에 나올 뿐….
우리에게는 불편함을 일부러 찾아 즐기는 문화로 전환시키는 것. 존재하는 것 이미 있는 것을 새롭게 보는 눈이 절실하다. 외국까지 나와서 남의 것 좋아라 부러워할 시간에 내 주변을 사소한 것도 소중히 찬찬히 들여다보고 아끼는 버릇을 들여야 할 텐데. 그러려면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언제나 너무 바쁘고 바쁘다. 시장에서조차 쉬어가는 짬 느리게 가는 순간이 너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