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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우렁각시가 필요하다

by 홍재희 Hong Jaehee


시장에서 벌교산 꼬막 두 봉지를 떨이로 8천 원에 샀다. 꼬막은 먹는 건 순식간인데 씻고 해감하고 까는 게 일이다. 내가 꼬막을 까고 있을 줄이야. 꼬막 까면서 혼자 히죽히죽 웃었다.


싱싱하고 큼직한 관자 두 줄에 만 원, 매생이 세 덩이에 5천 원으로 할인해서 팔길래 싸도 싸도 너무 싸서 질렀다. 거기에 섬초 한 봉지 2천원, 무 하나 1천 원. 합해서 2만 5천 원으로 차리는 밥상. 이 가격에 어디 가서 꼬막을 관자를 먹겠어 응? 하는 마음에 덜컥 질렀는데....그런데 사자마자 곧 후회했다. 이 많은 양을 어쩐다?



문제는 싱싱할 때 손질해서 요리를 해 먹어야 한다는 사실. 부랴부랴 박박 씻고 또 씻고 해감해놓고 입을 안 여는 꼬막을 일일이 칼로 따고 끝도 없었다. 내가 이 많은 꼬막을 왜 산 걸까 후회하면서 꼬막 손질에만 거의 두 시간. 그 많아 보이던 꼬막이 기껏해야 한 대접. 아, 기진맥진 후회막급. 게다가 매생이 한 덩이로 국을 끓이는데도 양이 넘쳐 대형 냄비가 필요했다. 한동안 매일 매생이국만 먹게 생겼다. 굴 대신 관자를 쓱쓱 썰어 넣는다. 비싸서 먹기 힘들었던 관자를 이렇게 마구 낭비해 보긴 처음이다.






겨울무 넣은 꼬막 무침과 매생이 관자 떡국. 그리고 파프리카&섬초 샐러드. 맛은.... 음… 푸른 바다가 입안에 가득 출렁이는 맛이다. 적당히 알맞게 짭조름한 소금기로 몸 속 구석 구석의 더러운 찌꺼기를 씻어내고 싱그러운 섬초향에 온 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맛이다. 싱싱하고 건강한 밥상인 건 두 말할 나위도 없지.


하지만 밥 한 끼 제대로 먹겠다고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요리하고 먹는데만 세 시간 넘게 소요. 밥상 한 번 차리려다 오전 시간을 죄다 날렸다. 이럴 때마다 불현듯 짜증이 올라오면서 동시에 허탈감과 죄책감이 몰려온다. 아, 씻고 다듬고 요리하는데 들일 시간에 일을, 일을 했어야 했는데..... 특히 글을 쓰고 있을 때 요리하고 상 차리고 설거지 하는데 쓰는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아깝다.







보통은 일품요리로 간단히 먹다가 어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반찬까지 만들었다. 미쳤나 보다. 참나물두부무침 시금치나물 김무침 도라지 오이 초무침그리고 신김치 볶아서 두부김치. 다른 날은 같은 나물무침에다 곁들여 미역줄거리 무침 콩나물무침 감자볶음. 그리고 서리태콩 불려서 잡곡밥과 함께.






배달음식을 전혀 먹지 않고 약속이 있지 않는 한 외식을 안 하다 보니 하루만 빼고 이주일 동안 내내 꼬박 집밥을 해 먹었다. 그런데 밥 해 먹는 거 일이다 일 정말. 살려면 날마다 밥은 먹어야는데 집밥은 좋은데 맛있는데 가끔씩 극강의 귀차니즘이 발동한다.해 먹는 거 지겹고 치우는 거 너무 귀찮다. 매일 요리해도 질리지 않는다는 사람, 설거지가 취미라는 사람 이해불가. 집에 우렁각시가 살고 있어서 나 몰래 밥상 좀 차려주고 가면 좋겠다.



먹고사는 게 뭐냐고? 사는 건 말 그대로 먹는 게 반이다. 안 먹으면 죽는다. 결국 우리는 살기 위해 죽는날까지 끊임없이 먹어야 하고 나를 먹이기 위한 노동을 해야 한다. 살림. 살리다에서 나온 명사. 즉 사람을 살리는 일이 살림이다. 그리고 살림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게 삶이다.



그래서 내가 밥 해 먹는 거 장보고 요리하고 설거지 하고 청소하고 집을 살리고 나를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삶을 살리는 살림. 집안일과 요리를 우습게 보는 남자들을, 스스로 밥을 해 먹지도 못하는 인간을 경멸하는 것이다. 한 번 해보면 안다. 이게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노동을 요구하는지.



세상의 모든 밥상을 살림을 오늘 하루도 책임지는 이들에게 존경을.



그나저나 아아, 나도 우렁각시가 아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또한 내 이기심이니 날마다 이렇게 차려먹는 밥상은 재빨리 포기하고, 밥먹으러 동네 도서관으로. 요즘처럼 장바구니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외식비에 눈알이 휘둥그레 지는 고물가 시절에는, 도서관 식당의 오천 오백원 착한 백반에 만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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