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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의 신세계

by 홍재희 Hong Jaehee



입맛 없다고 라면에 김치 쪼가리를 먹거나 맨밥에 물 말아 김치 하나로 대충 때우긴 싫다.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일터로 가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집에 있는 시간만큼은 집에서 해 먹는 것만큼은 제대로 해 먹고 싶다.


나를 위해서 제대로 먹여주고 싶다.

나를 귀하게 대접해주고 싶다.

남이 챙겨주길 기대하기 전에

내가 바라고 원하는 걸 내가 잘 챙겨주고 싶다.

그게 내게는 날마다 먹는 한 끼 밥상이다.



내게 '잘 먹는다' '잘 챙겨 먹는다'라는 말의 의미는

비싼 식재료로 비싼 음식을 비싼 돈 주고 배 터지게 먹는 게 아니라

있는 재료로 영양적으로 균형 있게 속이 편안한 음식을

스스로 해 먹고 뭐든 적당히 먹고 배부르면 숟가락을 내려놓는 것을 말한다.



먼저 나 자신을 귀하게 대접할 것.

나 자신을 아끼는 마음으로 스스로 돌보고 보살피고 챙기는 것.

소박한 밥상을 잘 차려 먹는 것.

내 몸은 내가 챙긴다.

자기 사랑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아파봐야 아픈 사람 마음을 안다. 내 몸 아픈 거 아프지 않은 남은 모른다. 아프면 외롭고 서럽다. 그렇다고 아픈 티를 내고 남에게 힘들다 하고 아프다고 불평하고 징징대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몸도 아픈데 정신마저 병들뿐이다. 챙겨주고 보살피는 것도 한두 번이다. 매번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누구나 지친다. 아무리 잘해주고 챙겨줘도 아픈 사람이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자신을 함부로 대하면 긴 병에 효자 없고 열렬한 사랑도 식는다. 헌신적인 가족이라도 나가떨어진다. 아프면 매사에 의욕도 사라지고 우울해지고 성격도 변한다. 한마디로 모든 게 나빠진다. 그러므로 더 나빠지기 전에 나만 왜 이러지 왜 이렇게 운이 없지 나는 왜 아프지 억울하다 신세한탄을 집어치우고 자기부터 돌보고 챙기는 마음을 일으켜 일상을 바꿔야 한다.



내 인생 남이 대신 살아주지도 나 대신 아파주지도 않는다. 내 몸과 건강은 자신이 스스로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평소의 습관이 몸을 만든다는 걸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는 걸 체득하고 있다. 아파서 병원 갈 시간과 돈이면 차라리 날마다 하루 세끼 밥상만 신경 쓰고 살아도 돈과 시간을 벌고 건강을 벌고 삶의 질이 한결 나아진다는 것을.




만성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으로 오랫동안 고생했다. 죽을 것 같은 통증에도 절대 죽지 않는 병이지만 식도암에 걸리면 죽는다는 의사의 친절한 겁박. 이 병은 평소에 늘 관리를 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의사의 권고대로 밥상에서 찌개와 국과 같은 국물 요리를 거의 없앴다. 밥에 물 말아먹는 습관도 없앴고, 후루룩 씹지도 않고 삼키는 버릇도 없앴다. 뜨거운 국도 식을 때까지 기다려 천천히 먹었다. 국물에 밥 말아먹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고 라면 국물을 마지막으로 언제 먹었는지는 이젠 기억도 안 난다.



그렇게 밥상머리 습관을 통째로 바꿨다. 이제는 뭐든 꼭꼭 씹어먹고 느긋하게 먹는다. 특히 아침 첫 끼에는 되도록 국을 먹지 않는다. 먹을 경우에는 감잣국, 북엇국, 계란국, 된장국, 콩나물국, 쇠고기뭇국, 미역국과 같이 간이 덜하고 심심하니 맵지 않은 국을 끓인다. 그 대신 위장에 좋은 양배추와 같은 채소를 늘 먹는데 생 양배추만 뜯기에는 너무 심심해서 꾀를 냈다.




샐러드. 샐러드. 샐러드.


어제는 그릭 샐러드 오늘은 오리엔탈 샐러드 내일은 시저 샐러드.

한 가지 샐러드에 질리면 변형을 주기도 한다.

삶은 계란을 올리고 감자를 올리고 때로는 파스타를 올리고 치즈를 올리고 견과류를 올리고 과일을 올리고 이런 식으로 각종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다.

빵이나 파스타를 곁들여 먹으면 한 끼 일품요리로 그만이다.

한식을 먹을 때는 제철 나물을 사서 무쳐서 밥을 먹지만

더워서 요리하기도 귀찮은 여름엔 데치거나 무칠 필요조차 없는 초간단 영양 샐러드로.

으슬으슬 춥고 속이 냉해지는 겨울에는 따끈하면서 속 편한 채소 수프로.




오늘은 무슨 샐러드를 해 먹을까?

오늘은 뭐 먹지?

궁리할수록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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