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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개인주의자

여행자의 기록 15

by 홍재희 Hong Jaehee



최근에 누가 날더러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 같다고 요즘 시대에 태어났으면 좋았을 사람이라 했다. 또 묻기를 그렇게 살면 많이 외롭지 않냐고 했다. 문득 그런가 나는 외로웠던가 자문한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 고독은 디폴트 기본값이라 생각한다.




정작 내가 가장 외롭고 힘들었던 시기는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학창 시절이었다. 십 대 시절이 가장 어둡고 암울했다.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나있던 그 시기만큼 외로웠던 때도 없다. 부모나 가족 학교 어디에서도 이해받은 적이 없었다. 소속감을 느껴본 적도 없다. 고립감에 몸서리쳤고 자살충동과 싸워야 했고 우울과 분노와 눈물과 절망으로 점철된 나날이었다. 그나마 내게 삶의 위안을 주었던 것은 오직 책과 음악과 영화. 그리고 사랑과 우정. 동병상련으로 위로가 된 벗. 그렇다. 몇몇 빛나는 순간만을 기억한다. 냉소와 우울이 지배하던 그때의 나에 비교한다면 가족, 학교, 조직에서 벗어난 지금의 나는 무척 행복하고 아아, 평온하다.




한국 사회의 전형성에서 한참 벗어난, 남들과 확연히 다른 성향과 가치관을 가졌는데 왜 외국에 나가 살 생각을 하지 않았냐고 해외 - 북미나 유럽에서 살려고 한 적이 없냐고 또 물었다. 이주나 이민을 말하는 것인가 되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시절 나는 가족과 세상과 불화하는데 에너지를 너무 많이 낭비했다. 만일 투쟁하느라 허비한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었다면 내 삶은 과연 달라졌을까. 나 같은 개인주의 성향의 사람이 외국에 나가 살았다면 좀 더 잘 살았을까. 또 자문한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한국이란 사회에서 나란 사람은 쉽게 이해받고 받아들여지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집단 체제 순응형 인간을 정상으로 치는 사회에서는 나는 언제나 이질적인 변종이다. 그러니 어느 곳에서나 똑같았을 것이다.



나는 되물었다.



- 어느 나라 어디에 살던 뭐가 얼마나 달라질까요?




이곳이 싫어 떠난 곳이든 더 나은 미래를 다른 삶을 꿈꾸며 떠난 곳이든 역시 사람 사는 곳. 결국 먹고 자고 울고불고 싸우고 배우며 사는 소소한 일상은 어디에서 살든 간에 똑같다.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다. 만일 이주와 이민이 자신의 생각과 편견,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의 시선과 세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는 장소만을 바꿀 뿐이라면 그 삶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세계가 제 마음속에 존재하는 자라면 세상 어느 곳이든 그곳이 다 제 고향이며 제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이 또 고향이며 동시에 그 모든 곳이 고향이 아니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지니는 것이다"라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제 삶의 지평을 바꾸지 못하고 공간과 배경만 바뀔 뿐인 이주와 정주는 내가 바라는 삶이 아니다. 끓임 없이 탈주하는 삶, 회의하고 성찰하는 삶, 여행하는 삶이 내가 꿈꾸는 삶이다.



세계가 한 권의 책이라면 여행하지 않는 자는 그 책의 한 페이지만을 읽을 뿐이다.

하지만 죽는 그날까지 나는 한 권의 책을 완성하고 싶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던 어디에서 살던

언제 어디서든 나는 여행하는 사람으로 살다 가고 싶다.






오늘따라 세찬 바람이 불고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

가을이 서둘러 떠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노을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가을날.

남산에도 곱게 단풍이 들었다.

가을에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 마냥 슬퍼진다.

가을 노을은 더 길고 더 달고 시고 쓰고 짜고 매운 오미자 같은 맛이다.


인생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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