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해마다 기억하는 것이 줄어든다.
움켜쥐기도 전에 미처 손을 쓸 수도 없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해가 겹치고 날이 쌓일수록 특별한 사건사고가 아니고서야 특정한 날에 무엇을 했는지 가물가물하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무언가 특별한 일을 벌이고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해야 이 날을 기억할 텐데.
그렇다면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추억을 남겨야 한다.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서 뭔가 기억할 만한 일을 하기로 했다.
되돌아보면 십 여년 전 오늘.
2012년 크리스마스에는 방콕 람부뜨리 노천카페에서 캐럴을 들으며 망고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31일 마지막 날 밤에는 라오스 팍세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오는 밤거리를 자전거를 타며 지났다.
2013년 크리스마스와 연말은 어지럼증과 이석증에 쓰러져 내내 누워있거나 쳇바퀴 돌듯 병원을 다닌 기억만 난다.
2014년 크리스마스는 경리단 단골 바에서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와 동생과 벗들과 술잔을 나눴다. 그리고 그 해의 마지막 31일 마지막 밤엔 보스니아에서 망명한 캐나다인과 송구영신을 외쳤다.
그리고 2015년 12월 25일 나는 차귀도에서 매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새해를 제주도 서귀포에서 한 달을 칩거하며 첫 책을 썼다. 그리고 2016년 새해 눈 내린 겨울 한라산에 올랐다.
2016년 크리스마스에는 비행기를 타고 호주 멜버른으로 날아갔다. 도척하자마자 트렁크 짐도 못 풀고 지독한 감기몸살에 걸려 31일까지 이불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앓아누웠던 기억이 난다.
2017년 새해 한 달 동안 두 번째 책을 끝냈다. 그리고 태즈메이니아로 홀로 여행을 떠났다.
이듬해 2017년 크리스마스에도 나는 호주 멜버른에 있었다. 사랑하는 이와의 7년을 끝낸 친구와 친구의 강아지와 함께 2017년의 마지막 밤을 지새우고 2018년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구경하러 나갔다.
2018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2019년 새해 나는 다시 호주 멜버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고, 윤슬이 아름다운 바닷가, 수평선 너머로 스러지는 노을빛이 스며드는 도크랜드 항구 도서관의 창가에 앉아 세 번째 책을 쓰기 시작했다.
2019년 겨울 즈음에 멜버른에 사는 친구에게 또 연락이 왔다. 올겨울에도 호주에 오지 않겠냐고. 하지만 왠지 내키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멜버른에 가고 싶지만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멜버른이 그립지만 친구와 함께 있는 건 더 이상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2020년 새해 벽두에 코로나가 전 세계를 집어삼켰다. 멜버른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락다운으로 도시가 전면 봉쇄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해 겨울은 아무 데도 갈 수 없었고, 아무 곳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동네 도서관에 처박혀 글을 쓰고 또 썼다. 그리고 그 해 봄 세 번째 책이 나왔다.
그런데 코로나 시기였던 2020년 겨울, 2021년 겨울, 크리스마스와 12월 31일은 무엇을 하고 보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코로나는 내게 과거도 기억도 추억도 깡그리 빼앗아 가버렸다.
마치 예리한 칼로 뇌의 기억 중추를 도려낸 것처럼 남김없이 삭제된 기억.
아마도 코로나가 세계를 삼킨 2년의 연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늘 하던 대로 일 없이 보낸 하루하루였거나.
그렇게 긴 긴 겨울을 버텨내거나 어떡하든 어찌 되었든 살아냈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항상 빈틈이 있다. 한해의 끝과 다음 해의 시작은 12월과 이듬해 1월은 언제나 연도가 헛갈린다. 겨울과 여름을 동시에 넘나드는 생활을 하면 더욱 그렇다.
시나브로 떠오른다.
서울에는 집도 절도 없이 태국과 라오스로 정처 없이 마음을 비우고 이전과 이후의 삶을 정리한 그 해 겨울이. 말이 좋아 어지럼증이지 추위에 구안와사가 오지 않은 것만 해도 천운이었던 머릿속에 찬바람이 찬기운이 엄습했던 그해 겨울이. 제 버릇 개주나 술집에서 파티로 광란의 밤을 그리고 사고로 부상당하고 자숙하는 재활의 시간을 보냈던 그 해 겨울이.
북쪽에서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면 손발이 얼어붙고 혈관 속에 고드름이 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갈수록 맥박은 느려지고 어깨는 움츠려 들고 머릿속에 달린 추가 기우는 듯 세상이 기우는 느낌이 뇌를 돌로 내리누르는 듯 무겁다. 그랬다. 서울의 겨울은 따뜻한 게 아니라 내게는 언제나 추웠다. 우울했다.
2015년인가 2016년인가 두 해 동안 겨울에는 제주도에서 차귀도에서 칼바람 바닷바람을 맞으며 25일을 보냈고 2017년 12월 25일은 호주 멜버른에서 햇볕이 내리쬐는 창가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종일 일을 하며 보냈다. 바다 건너 호주에 겨울에서 여름으로 날아온 것만으로도 이미 특별하지만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벗과 함께 부둣가 인도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을 함께 먹은 걸로 2017년 12월 25일을 기억한다.
그런데 페북 일기를 읽다 보니 정말이지 난 영원히 철새로 살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겨울에 찬바람이 들지 않으려면 피가 얼지 않으려면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야 한다.
2022년 크리스마스이브는 십여 년을 알고 지낸 지인의 집에서 웃음보를 터트리며 보냈다.
공교롭게도 올해 죄다 여자 친구와 깨진 마흔 살 동갑내기 세 명의 싱글 남자들과 재회했다.
결혼하고 싶다고 아우성치면서도 연신 결혼의 문턱에서 미끄러지는 이 연애 얼뜨기들, 연애 곧 결혼으로 착각하는 세 얼간이들을 바라보노라니 측은하면서도 웃기고 마냥 안쓰럽기도 하고.
스물아홉 띠동갑 여자와 데이트를 했는데 카톡 답장이 오지 않는다며 노심초사하더니 내게 오고 간 카톡을 보여줬다.
23일 약속이 깨지고 '크리스마스 잘 보내'라고 문자를 보냈는데 여자는 문자를 읽고 답장이 없었다.
끙, 제가 혹시 문자를 잘못 보낸 걸까요? 읽씹 했는데 이건 무슨 뜻일까요? 다시 만날 생각은 있는 걸까요?
세 남자의 좌중우돌 엉망징창 연애 기는 서로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으며, 여자 보는 눈이 없는 자신을 한탄하면서, 누구의 자학개그가 더 웃기나 겨루면서
누구도 좌절하거나 슬퍼하거나 실망하거나 괴로워하는 대신
서로 웃고 장난치며 웃음으로 자신의 상처를 유쾌하게 휘발시켰다.
내게도 일 년 치 웃음을 선사해 주었다.
슬퍼할 시간에 웃자 웃으면 복이 와요.
새해에는 이 세 얼간이들 옆에 짝이 있기를 바라며,
그래서 2023년 크리스마스에는 그들이 사랑하는 짝꿍과 함께 긴 긴 밤을 보내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2024년 가을. 세 명 중 한 명에게 드디어 사귀는 사람이 생겼다.
2024년 12월은 계엄령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과 더불어 내전을 획책한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21세기 대한민국 2024년에 계엄이라니 도저히 믿기지 않아 12월 3일에서 4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뜬눈으로 생방송을 지켜보며 지샜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고 기괴한 초현실적인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 국회의사당에 중무장한 병력이 들이닥치고 의사당 잔디밭에 헬기가 착륙하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이거 꿈은 아니지? 아니 꿈인가? 생시인가?
소설가 한강의 통찰처럼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자, 역사를 망각하는 자에게 미래란 없다. 1980년 5.18 광주의 아픔이 2024년 12월 3일 반복되었다면 우리에게 오늘 평화로운 크리스마스, 자유로운 연말연시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6시간 만에 계엄 해제가 되었음에도,세상은 돌아가고 일상은 평화로운데도 나는 어딘가 불안하다. 2024년 12월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이상야릇하고 화나고 분노하면서도 차분한 달. 계엄령과 내전의 달로 기억할 거 같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나도 2024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기억할 만한일을 해야겠다. 그리고 차분히 12월 31일을 기다린다.
2025년에는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날마다 똑같은 해가 떠오르고 지고 달이 뜨고 지고.
해가 바뀌는 자연현상에는 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하는 짓이다.
그러므로 사람만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억을 남기기로.
일일신우일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