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1.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욕망이 가득 끓어 넘치는 세상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생은 곧 고통이다.
인간이 평생을 고통받는 이유는 바로 이 욕망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건 언젠가 다 망하고 어차피 나는 죽는다.
모든 일은 다 끝이 있다.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상황은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끝이 난다.
궁극적으로 우리 인생도 언젠가는 끝이 온다.
세상에서 사라지고 난 후에는 길고 짧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인간의 수명이 백 년이라면 우주의 수억 광년의 시간에 비하면 눈깜박임에 불과한 순간이다.
시간 속에서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불행은 그저 먼지가 날리는 일일 뿐.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행복하거나 불행한 인생을 산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우리는 삶을 사는 동시에 죽음을 사는 존재다.
죽음은 인생의 결론이라고 이미 정해져 있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죽음 아래서 평등하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죽고 부모도 자식도 죽고 나도 죽는다.
오래 살았던 짧게 살았던 병으로 죽었던 사고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상관없다.
죽음 앞에서는 다 똑같다.
죽음은 우리가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우리는 태어나서 살지만 동시에 산다는 것은 결국 죽음으로 한 발씩 다가서게 된다는 뜻이다.
죽음은 자연의 섭리이고 우리는 그 거대한 자연의 미세한 일부일 뿐이다.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미래에 늙어서 혼자 살다가 아파서 고통 속에서 홀로 죽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다고 대답했다.
어차피 인생은 생로병사다. 누구든 피해 갈 수 없다.
혼자 살던 같이 살던 죽는 그 순간에는 누구나 혼자일 텐데 죽음을 느끼고 받아들이고 죽음을 죽음으로 체험하는 사람은 오롯이 혼자일 텐데 무얼 지금부터 두려워하나.
아파서 죽든 외로워 죽든 괴로워 죽던 어떤 이유로 죽던 간에 오히려 생이 안겨준 긴긴 고통이 끝날 텐데 죽으면 평온이 찾아올 텐데 뭐가 그리 두려운가.
그리고 홀로 사는 사람이 홀로 죽는 것이, 혼자 사는 노인이 혼자 죽는 게 뭐가 그리 나쁜가.
기실 살아있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잊히는 것, 아무도 모른 채 사라지는 것, 즉 고립되고 소외되었다는 '자각'이다.
어쩌면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살아있는 자의 특권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에 살아있는 한 우리는 죽음을 상상할 뿐 결코 알, 수, 없, 다.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은 늙고 아프고 병들다는 노화에 원인이 있는 게 아니다.
대다수는 신체적 죽음이 아니라 사회적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죽음' 그 자체보다는 '외롭게' '혼자'에 더 크게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홀로 죽는 고독사가 아니라 혼자 소외되는 고립사다.
그러나 홀로 사는 것, 고독과 소외되는 것, 고립은 전혀 다르다.
임종의 순간에 혼자이거나 사후에 발견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살아 있을 때 고립되거나 소외되지 않는 것이다.
고독사를 떠올리며 두려워할 시간에 더 적극적으로 함께 하는 삶과 고립되지 않는 일상을 꾸려가는 것이다.
몇 년째 늙고 병들어가는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아, 나는 운이 좋구나 생각했다.
어머니가 노화에서 노쇠로 향하는 길을 곁에서 가까이 지켜보면서,
어머니가 늙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통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기에 미리 연습할 수 있기 때문에.
늙는다는 것은 아주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는 죽어가고 있다.
사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간다.
성장기가 끝나고 날마다 조금씩 늙어간다.
머리카락과 털 피부처럼 매일 죽고 새로 태어나는 세포도 있지만
죽음의 그 순간에야 비로소 멈추는 심장도 있다.
그렇게 숨이 끊어지면 우리가 잠시 머물었던 육신은 유기체에서 무기질로 원소로 우주로 돌아간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고 열매는 땅으로 낙하하듯이
이렇듯 삶은 동시에 천천히 죽어가는 과정이라는 자명한 이치를 진실로 느끼고 있다.
어머니에게 감사하다.
어머니를 통해서 나는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고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삶의 이치를 순리를 배운다.
나이 드는 것, 늙어가는 것, 죽어가는 것에 대하여.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 죽음과 벗하는 법, 죽음과 춤을 추는 아름다운 삶 사람다운 삶을.
2.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죽는다는 것을 완전히 잊고 끝이 정해지지 않는 것처럼 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언젠가 반드시 끝이 있으며
결국 나는 죽는다는 결론을 받아들이고 기억하고 사는 것이다.
죽음에서 도망가는 것은 삶에서 도망가는 것이다.
인간은 온전히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싶다.
죽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의 섭리이며, 그러므로 나는 잘 사는 것만큼 잘 죽고 싶다.
인생의 끝을 받아들이고 직시하는 것만이 삶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면 우리 삶의 본래 모습이 드러난다.
내가 죽기 직전에 소중하다고 생각한 것들과 기억과 추억이
내게 진실로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터이니.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나다운 삶을 살지 않고 남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게 앞만 보고 열심히 살 필요가 없었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더 표현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결론은 죽는다 라는 '사실'을 직시했을 때가 되어서야 진정한 삶의 '현실'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엄정한 사실을 통해
삶의 우선순위를 정립할 수 있게 되고
우리를 짓눌렀던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 후에는 단지 삶을 즐기면 된다.
내가 삶을 즐긴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온전히 그 자체로 누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춤을 추고 싶을 때는 춤을 춘다.
산책을 할 때는 걷는 것에만 집중한다.
산책을 하다가 다른 생각이 들면 그 생각을 걷어내고 산책에만 집중한다.
인생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무엇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끊임없이 가치판단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행동하고 인생을 살아간다.
미래를 걱정하며 지금 미래에 집중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아직 오지도 않는 미래에 대한 걱정에 빠져서 현재를 사는 방법을 잊게 된다.
미래에 대해 근심하는 영혼은 불행하다.
3.
우리가 지금 행복하지 않은 것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내면의 욕망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행복이라는 추상명사에 경도되어 ‘행복해야 한다 ‘ 집착하는 것만 같다.
그런데 굳이 행복해야 할 이유가 뭘까?
사는 데는 즐겁다 기쁘다는 감정, 편안한 상태, 동요하지 않는 마음으로 족하지 않은가.
무엇이 있고 없고 무엇이 되고 안 되고의 여부로 행복이 외부의 조건으로 결정된다면 나는 굳이 행복하고 싶지 않다.
행복이라는 말보다 만족이라던가 자족이 더 맞는 것 같다.
일상의 만족이란 부유하던 부유하지 않던 돈이 많던 적든 간에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을 긍정하는 태도에 달려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 아닌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상황을 해석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삶에서 판단과 평가는 남들의 기준이 아니라 내면의 기준으로 스스로 평가해야 한다.
매일 매 순간 타인을 향하는 타인을 향해있는 시선을 나에게로 돌려서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먼저 느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남이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남이 나를 봐주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나를 이해하고 나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런데 내가 자신이 자신을 먼저 이해하라고 하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고 다들 고개를 갸우뚱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나의 기쁨은 내가 스스로 정하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도 나 스스로 정하고
타인에게 의존하는 기쁨은 경계해야 한다.
내가 바꿀 수 있고 의도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밖에 없다.
나라는 존재는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 할 동반자이다.
내 안의 동반자가 스스로 나를 아끼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살피고 나를 존중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비난받는다 해도
최소한 한 명은 절대적으로 내 편인 동반자를 얻는다는 뜻이다.
이 생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단 하나의 목표.
삶을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기.
그러려면 온전히 나만의 공간과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나라는 존재는 오직 스스로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타인을 향한 시선을 거두고 모든 관심과 생각을 오직 자기 자신에게 쏟아부어야 한다.
타인을 향한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사랑이 행복보다 위대하다.
그 외엔 모두 부차적이며 부질없다.
인생 별 거 없다.
살아가는 이 순간을 즐기고 아끼고 사랑하며
나라는 사람과 나와 함께
나를 최우선으로 하는 동반자와
재미있게 살면 된다.
그거로 족하다. 그거면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