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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 mind is the best way

여행자의 기록 19

by 홍재희 Hong Jaehee



라오스 무앙 응에서 태국 훼이 콘 국경을 넘어 태국 난으로 방향을 틀었다. 원래는 국경을 넘어 곧장 치앙마이로 이동할까 했는데 뭘 굳이 그리 서두를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리고 곧장 난 게으른 여행자가 되었다.



기차를 타고 난과 치앙마이 사이로 가는 경로에 있는 도시마다 거쳐서 굼벵이처럼 느릿느릿 이동 중이다.



난 Nan - 프레 Phrae- 덴 차이 Den Chai- 람빵 Ram Pang까지.



국경 넘어 난까지는 시골버스로. 난에서 프레까지는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로. 프레에서는 덴차이라는 도시에서 치앙마이까지 가는 기차 노선이 있다는 걸 발견. 프레에서 덴차이까지 버스로 고고씽. 덴차이에서 다시 오토바이 뚝뚝으로 신나게 기차역으로. 원래 덴차이에서 치앙마이까지 가려고 했다가 중간에 람빵이라는 도시가 있는 걸 보고 - 람빵? 람빵! 이라는 이름이 입속에 휘파람처럼 자꾸 맴돌아서 - 에라 모르겠다, 람빵에서 내렸다.



덴차이 역에서는 오후 나절 내내 사람 없는 기차역에서 졸다가 쉬다가 빈둥댔다. 기차는 삼십 분 이상을 연착하고 나는 서두를 게 없고 돈은 없고 시간은 남아도는 여행자이니.



람빵에 도착하니 일곱 시. 해가 훅- 졌다. 기차역 앞에 서있는 쎙테우 기사와 흥정. 근처 싼 게스트하우스 알아요? 안단다. 그런데 이런. 꼬르륵꼬르륵. 배가 너무 고프다. 다 필요 없다. 일단 먹고 생각하자. 밥 먹고 숙소 갈 요량하고 기차역전 야시장에서 행장을 풀었다. 철판 볶음밥과 맥주 한 잔. 배부르고 등 따습고 술 들어가니 낯선 곳도 괜스레 친근해진다. 한 박자 쉬어가면 모든 것이 편안해진다. 세상에 겁날게 하나 없다.







첫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는 관련 여행책을 읽고 지도를 보고 어디를 갈지 어디에서 묵을지 여행 계획을 세우며 만반의 준비를 별의별 마음의 준비를 다 했다. 그런데 한 두 번 길을 떠나고 여행의 궤적이 점차 길어지면서 깨달았다. 아니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어디를 가나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인 걸. 하룻밤 묵어갈 곳은 있을 것이고 나는 시간은 많고 돈이 없는 여행자이니 거기에 맞게 길을 가면 되는 게 아닐까.



그러고 나서 시나브로 언제부터인가 나는 게으르지만 느긋한, 방랑자, 관찰자, 여행자가 되었다. 철두철미한 사전 계획을 세워 이걸 봐야 하고, 미리 전 일정을 예약해 놓아야 안심하며, 여길 가야 하고 이걸 먹어봐야 하는 그런 여행은 사절이다. 가이드북 하나 없이도 돌아다니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인터넷 검색 역시 말 그대로 가이드일 뿐 매뉴얼이 아니다. 게스트하우스 하나만 찾으면 그곳에 도시 안내 지도도 있고 관광안내소 가면 무료 책자도 준다. 종이라는 실물이 주는 그 감촉에 내가 여기, 이곳을 방문한 여행자라는 사실을 실, 감, 한다. 그거면 충분하다. 길을 잃어버리면? 까짓 거 물어 물어 가면 된다. 말 안 통하면 목적지만 알고 있음 된다. 손짓 발짓 눈짓으로 다 해결된다.



때로는 여행안내책자나 인터넷 검색 자체가 짐이 되거나 방해가 될 때도 있다. 검색창에 소개된 대로 무조건 따르게 되고, 검색 상위 링크, 블로그에 안 나와 있으면 그냥 지나치고, 조회수가 많은 순서대로 여행경로를 짜는, 한마디로 정보가 없으면 못 다니는 검색 의존증이 생기게 된다. 검색창과 SNS에 의존하다 보면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실제 감정과 생각보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인스타에 올릴 예쁜 샷이 더 중요해진다. 남의 시선으로 떠먹여 준 이미지를 따라 하고 쫓아가기에 급급해진다. 남들 다 가는 데를 가서 남들과 똑같은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서는 진짜 여행을 했다고 만족한다. 주객전도다. 그러나 가이드북이나 검색창은 말 그대로 가이드, 그러니까 길잡이일 뿐이다. 길에 익숙해지면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고 자신이 길잡이가 되어야 여행의 묘미가 있다. 그다음에는 가이드 없이도 특정한 계획 없이도 예약해놓지 않아도 발 길 닿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



먼 길 낯선 땅 긴 여행이 처음일수록, 길을 떠나기 전 초보여행자는 불안한 마음에 걱정이 앞선다. 완벽을 기하고 미리 여행 경로든 계획을 짜고 숙소 예약을 하고 혹시나 필요할까 해서 온갖 것들을 바리바리 싸서 짐을 꾸린다. 그러다 길 위에서 어느 순간 조용히 깨닫게 된다. 배낭이 가벼울수록 마음도 가벼워진다는 것을. 가이드를 정보를 내려놓을 때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는 것을.



길 위에서 배낭여행을 다니면 단순해진다. 생각도 단순해지고 마음도 단순해지고 행동도 단순해진다. 굳이 복잡하게 생각하고 따지고 계획해 봐야 소용없다. 제가 잘 알고 익숙한 곳이 아니면 어딜 가나 실수를 하고 사건이 벌어지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다 길눈이 어둡고 말귀가 성치 않고 입이 안 열리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쉽게 생각하고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인생도 똑같다.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막힐수록 돌아가고 쉬어가면 된다.



Slow down, simplify, clear your mind, slow thinking,
slow mind is the best way on the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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