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가서 장을 봤다. 시장을 사랑하는 까닭은 시장에서는 내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 하나에 천 원. 애호박 하나에 천 5백 원. 대파 한 묶음 천 5백 원. 달래 세 묶음 2천 원. 브로콜리 천5백 원. 꼬마 양송이 봉지에 천 5백 원. 떨이로 섬초 석 단 3천원 블루베리 떨이로 만 원이라 냉큼 집었다. 대략 이만 원 남짓한 돈으로 채소와 과일을 샀다.
오랜만에 집밥을 맛난 나물 밥상을 차리리라는 생각에 그때까지는 기분이 아주 흡족했는데.
그 순간 주인장 사내 눙치며 왈
“아이고 신랑이 좋아하겠는데요."
윽… 산통 깨는 소리. 악의 없이 넘겨짚는 남자의 짜증 나는 오지랖.
"신랑 아니고 제가 먹을 겁니다."
뻘쭘해진 사내가 수습한답시고 한 마디 더.
“결혼 안 했어요? 미혼?"
아, 놔! 끓는 물 비등점에 다다른 머리 뚜껑이 살짝 들렸다가 내려앉는다.
저기요. TMI 질문 사절이에요. 도대체 왜들 알지도 못하는 모르는 남의 사생활에 쓸데없이 관심이 많은 건가?
"음..... 그 질문에 제가 대답해야 하나요?”
"아... 눼... 그게.. 네. 네. "
사내는 내 눈치를 보더니 스리슬쩍 말을 돌렸다. 오지랖을 활짝 펴주신 남자에게 눈알을 부라려준 다음 발길을 돌렸다. 참자. 모처럼 알뜰 장보기를 한 날 인상 구기고 화내지 말자. 밥 먹다 체할라.
위장이 거의 환자 수준이라 저녁에는 되도록 과식을 피하고 인스턴트 음식을 안 먹는데 그제는 오후 8시가 지나서 저녁을 먹고 어제는 너무 귀찮아서 라면 반 개를 먹었더니 간밤 내내 부글부글 꺽꺽대고 속이 부대꼈다. 일 때문에 몇 주 째 밖에서 끼니를 해결했더니 힘들다. 괴로워서 결국 밥을 지어먹었다.
첫끼. 된장찌개. 달래무침과 브로콜리무침. 달걀 푼 양곰탕.
지난 촬영 때 스태프들 식사로 먹고 남은 양곰탕과 깍두기 재활용. 포장 양곰탕이 너무 짜서 물을 한 바가지 들이부었다.
요즘 식당 음식은 하나같이 짜디 짜다. 소금 귀한 줄 모르고 있는 대로 퍼붓는 모양. 좋은 것도 지나치면 독이다. 덜 짜게 하려고 달걀물을 풀어 넣었다. 된장찌개에 넣을 감자도 바지락도 없지만 상관없다. 장 본 채소를 요리마다 소진하면 된다. 호박과 버섯, 쑥과 달래 잔뜩 넣어 만들어도 맛있다. 오랜만에 집에서 해 먹는 된장찌개에 속이 다 풀린다.
저녁에는 쑥취나물무밥. 쑥달걀말이. 황태뭇국이다. 소화 잘되는 무밥 뭇국으로 결정. 밥에 무 썰어 넣고 쑥도 넣고 냉동고에 넣어둔 말린 취나물도 넣고 밥을 지었다. 반찬 하기 귀찮을 때 밥 지을 때 뭐든 다 때려 넣으면 된다. 말린 나물을 활용하면 금상첨화.
냉동고에 넣어둔 말린 황태를 물에 잘 불려 놓고 쌀 씻은 뜬 물을 받아놓고 들기름에 무를 달달 볶는다. 들기름에 자박자박 무가 노랗게 고소하게 익으면 뜬 물을 붓고 끓인다. 불린 황태 넣고 대파 썰어 넣고 소금으로 간하면 끝.
달걀말이에도 대파와 쑥을 종종 썰어 넣었다. 양파도 당근도 없으니 다른 걸 활용하면 된다. 우유도 좀 부어주고 후추도 뿌려주고.
쑥과 취나물 넣은 무밥에 먹다 남아 슬슬 맛 가려 드는 달래 무침까지 몽땅 넣고 참기름과 간장에 슥슥 비벼 먹는다. 쑥의 알싸함 달래의 상큼함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봄이 혀를 간질인다. 뱃속에 봄이 한가득이다.
아, 별 거 없는 밥상이지만 배부르고 편안하다. 오늘밤은 내 뱃속도 숙면을 취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