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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국수 예찬

by 홍재희 Hong Jaehee





너무 더워서 입맛도 없고 요리하기도 귀찮고 사흘동안 피죽도 못 먹은 사람처럼 시름시름 깨작깨작 거리고 있다가... 아,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일 하려면 뭐라도 해 먹자. 챙겨 먹자 싶어서. 며칠 내내 머릿속에서 콩국수가 아른거렸다. 식당에서 사 먹을까 했는데 어라, 가격표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 만원 아래가 없다. 기본 만원. 만 이천 원 만 사천 원. 헉, 뭐야! 왜 이렇게 비싸? 됐다. 이럴 바에 내가 직접 해 먹지.



시장에서 백태와 서리태를 한 봉지씩 샀다. 콩국수를 해 먹자!


해마다 여름이면 어머니가 손수 시원하고 고소한 콩국수를 해주셨다. 그런데 어릴 적엔 콩 비린내가 싫다고 안 먹는다고 툴툴거리며 한 숟갈도 입에 안 댄 적이 많았다. (복에 겨워서 그게 복인 줄도 몰랐던 거지)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스스로 콩국수를 해 먹게 되는 날이 오다니!


할머니가 된 엄마는 몸이 성치 않은 환자라 콩을 불리고 갈 기력도 없다. 어머니의 콩국수, 그 맛을 떠올리면서 엄마를 생각하며 콩국수를 만든다. 아, 콩국수는 엄마의 사랑이었구나. 그리고 가슴에 차오르는 그것. 이제 내가 어머니를 위해 콩국수를 해드려야겠구나. 내가 받은 사랑을 되갚아야 할 때가 그 나이가 되었구나.





짬짬이 해 먹는 한여름 별미. 백태 서리태 불리고 갈아 콩국수도 해 먹고 오이 송송 올리고 아삭한 콩나물도 올려서 비빔국수도 해 먹고. 곁들여 참외 조조종 예쁘게 썰어서 담아내면 집 나갔던 입맛이 제 발로 돌아오고 무더운 한 여름 거뜬히 난다.


콩물 사랑, 콩국수 사랑, 콩밥 사랑, 콩, 콩, 콩 사랑 뿜뿜.


과거에는 감방에서나 콩밥 먹는다고 했지만

이제 콩밥, 콩국수를 먹는 건 레알 럭셔리~ 슬로푸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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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