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미쳐가는 한국의 결혼 문화 1
1.
얼마 전 영화학교 동기의 늦깎이 결혼식에 다녀왔다.
거기서 학교 동창 둘을 만났다.
졸업한 후 십여 년 만에 보는 얼굴도 있고, 몇 년만에 다시 보는 얼굴도 있다.
나를 보더니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란 J.
우리 학교는 수능 입시로 들어오는 학교가 아니라 자체 시험을 보기에 한 학년끼리 나이도 배경도 다양했다. 같은 학번 기수끼리도 거의 십여 년 나이 차이가 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왔거나 석사를 따고 들어온 사람, 사회생활을 하고 직장을 다니다가 온 사람 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온 사람도 있었다. 카이스트를 나온 사람, 대기업을 다닌 사람, 대학을 중퇴한 사람, 영화과를 졸업한 사람, 공대를 나온 사람, 학원 강사를 하다 온 사람, 결혼해서 애가 있는 사람도 있었다. 서울, 전주, 광주, 제주, 김해, 동해, 춘천, 부산, 대전, 인천 등등 ㅡ 전국 각지에서 갓 스물에서부터 서른을 넘은 사람까지 천차만별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똑같았다. 나이 배경 지역 상관없이 다들 동기로서 허물없이 지냈다.
당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19살에 학교에 들어왔던 J 가 내게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사운드 믹싱 회사에 인턴 조수로 들어갔던 그네가 이제 사운드 믹싱 회사의 공동 대표가 되었다니.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순간 J 가 던진 한 마디.
ㅡ 진짜 깜짝 놀랐네. 언니는 원래 결혼식에 코빼기도 얼굴 안 내밀잖아? 근데 뭔 일이래?
알아? 이 언니는 결혼식은 안 오고 장례식에서만 얼굴 볼 수 있다고.
그 말에 나도 그도 우리 모두 빵 터졌다.
맞다. 나는 장례식엔 가도 결혼식에는 안 간다. 그게 내 모토다. 기쁜 날은 누가 와도 안 와도 기쁘지만 슬픈 날 잃어버린 상실의 아픔은 혼자보다는 함께 나누고 덜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서다. 게다가 잘 알지도 못하고 친하지도 않은 이의 청첩장을 받으면 남의 결혼에 축의금 내며 쪽수 채우는 사람으로 동원되는 듯한 느낌이 싫다. 그래서 평소 어떤 이유를 대서든지 결혼식은 가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번갯불에 콩 볶듯 빨리 빨리 해치우는 예식장 결혼식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터라 예식장 결혼식은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단칼에 거른다. 그러다 보니 참석한 결혼식이 손에 꼽을 정도다. (단, 결혼식에 참석하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이유가 있다. 격의 없이 아주 가까운 친구라던가, 소박하고 아름다워 추억에 남길만한 결혼식이라던가) 그러다 보니 학창 시절 동기 동창, 지인, 친구들도 다들 날 그러려니 한다. 그러니 J는 내가 결혼식에 참석한 것에 정말 놀랐던 것이다.
그랬던 내가 결혼식에 참석한 이유인즉슨,
결혼한다는 소식에 십 년 만에 따로 얼굴을 보기로 한 자리에 H의 신부가 떡하니 나와 앉아있었다. 신부가 참석한다는 말이 전혀 없었기에 적이 당황했다. 우리는 갈빗집에서 고기를 먹으며 케케묵은 학창 시절 이야기를 던지며 실소를 날리다가 신부에게 우리가 서로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신부에게 결혼식에 꼭 오라는 말을 들었다. 이런 걸 빼박이라고 하지.......
예전 같으면 그러든지 말든지 하고 결혼식을 패스했을 텐데. 나도 나이를 먹었나. 가뜩이나 많지 않은 신랑 측 친구들 사이에서 내 얼굴까지 똑똑히 기억할 신부를 모른 체 하기가 영....... 녀석이 욕먹게 할 수는 없잖은가. 게다가 H의 동생과 내 동생은 서로 절친이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이번에 결혼하는 동창에게는 개인적인 마음의 빚이 있었다. 오래전 그가 사심 없이 내게 베푼 호의였는데 그걸 십여 년 동안 마음에 담고 있었고 어쩌면 이번 기회에 그 빚을 갚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ㅡ 스몰웨딩이니까. 올 수 있으면 와.
그으래? 작고 소박한 결혼식이라고? 예식장이 아니라고?
그랬는데...... 스몰웨딩이라고 했는데 속았다. 스몰웨딩은 무슨 얼어 죽을.
하객만 얼추 2백여 명이 넘은 빅 웨딩이었다. 산자락 아래 숲 속 카페와 레스토랑을 겸한 야외 웨딩홀이라는 점만 빼고 기성 결혼식과 전혀 다를 바 없잖아 이거! 셔틀버스가 하객들을 쉼 없이 나르고 사방팔방에 서로 모르는 하객들로 북적대는 광경은 일반 예식장과 똑같았다. 다행하게도 신랑신부 스펙 나열과 유치 찬란한 만세 삼창과 큰절과 신랑신부의 아이돌 댄스 자랑 따위가 빠진 간략한 결혼식이었기에 망정이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요즘 결혼식을 보면 신랑신부가 무슨 연예인병에 걸렸는지 무대 위에서 3분짜리 댄스쇼를 보여주는데. 진짜 극혐이다. 이보다 더 재밌는 쇼는 없다는 듯. SNS 스타가 되려고 작정한 듯. 그래ㅡ 동기 녀석의 결혼식이 쇼쇼쇼 대환장 이벤트가 아닌 게 어디야.
주례사가 끝나고 나와 J는 신랑신부를 지켜봤다.
ㅡ 쟤가 설마 큰절을 할까?
ㅡ 오빠는 결혼식 하는 것도 진짜 싫어했는데.... 과연.... 저 얼굴 표정 좀 봐봐.
신랑 웃으세요~~ 하는데도 유체 이탈한 H의 표정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뻔해서.
빨리 끝나라 끝나라 주문을 외고 있겠지. ㅋㅋㅋ
우리는 마주 보고 킥킥 웃었다.
평소 H는 턱수염을 기르고 탈모가 있어서 머리를 밀고 비니를 쓰고 다녔다. 상견례에서부터 결혼식 당일까지 신랑이 머리를 빡빡 밀은 대머리라 뒷말이 있었다 한다. 수염은 반강제로 말끔히 깎고 파르라니 민머리를 드러내고 양복을 입은 채(이날 평생 양복 입는 직장을 다녀본 적도 없는 놈이 ㅋㅋ) 사진사 앞에 이리저리 온갖 포즈를 취하고 있는 걸 보니 짠........ 했다. 결혼식이든 결혼이든 식이라면 뭐든 넌더리를 내는 녀석이었는데.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옆에서 J가 농담을 했다.
ㅡ 식이라면 질색 팔색을 하던 오빠가 저러고 있는 걸 보니.... 어머, 찐사랑이네 찐사랑~~~
사진 촬영이 끝난 후 평소대로 비니를 쓰고 셔츠에 면바지로 갈아입은 그가 우리들 자리로 왔다. 짓궂게 다들 놀렸더니 씩 웃으며 셔츠를 들어 올리고 속에 입은 뭔가를 보여줬다.
ㅡ 이게 뭔지 알아?
ㅡ?
ㅡ 배 나온 거 감추려고 보정 속옷 입었어. 숨을 못 쉬겠네. 죽겠어..... 아 씨. 이게 뭐야. 코르셋까지 입어야 되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짜증 나서 그런데 귀엽게 툴툴거리는 녀석을 보며 그 순간 일제히 모두 뿜었다. 오늘 하루만은 어떻게 서든 모든 결점을 감추고 못나도 잘난 척, 눈 가리고 아웅, 남들 보기에 그럴듯해 보여야 하는, 모두를 깜쪽같이 속여야 하는 위장 결혼식이라.
그때 젊은 날 가수로 활동했다던 녀석의 아버지가 마이크를 잡고 흘러간 옛 노래와 올드팝송을 구성지게 뽑기 시작했다. 마치 이 날을 평생 기다렸다는 듯이. 결혼식은 순식간에 신랑 아버지의 라이브 무대로 변신했다. 앗싸! 하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흥겨운 춤사위가 시작되었다. 앗싸라비야! 경로잔치 전국노래자랑 만만세!
맞아. 우리나라에서 결혼식은 말이야. 미안하지만 신랑 신부 너희들을 위한 자리, 너희 둘이 부부가 되었음을 축복하는 자리가 아니야. 네 부모님이 그동안 남의 결혼식에 가서 뿌린 축의금을 회수하는 자리, 자식 잘 키운 자랑을 하는 날, 부모의 위신을 세우고 집안을 내세우고 남들에게 체면치레를 하며 공치사를 하는 날이야. 그래서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의례적으로 '어머 어쩜 이렇게 훌륭한 아들(딸)을 두셨어요!'라면서 인사를 받는 날이야. 물론 결혼식 비용을 축의금으로 보전해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2.
인터넷에서 이 야외 웨딩홀 결혼식 뷔페 가격과 견적 금액을 보고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항목(단가) 비고 가격
웨딩 연주 (330,000원) 330,000원 기타 (500,000원)
필수 500,000원
BBQ+뷔페 A (77,000원) 250명 19,250,000원
최종 견적 금액(부가세 포함) 31,080,000원
웨딩 연주를 뺀다 한들 거의 삼천 만 원에 육박하는 결혼식 비용. 유명세에 플렉스 돈자랑하는 셀럽 스타도 아닌 일반인들의 결혼식이 이 정도라니.
고작 두서너 시간에 삼천 만 원을 한 방에 날려먹다니.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돈 아까워라~~~!! 아름다운 야외에서 결혼식을 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보다 그 돈이면 더 많은 것을, 다른 일을 할 수 있는데, 집을 구하는데 보탤 수도 있고, 아아, 나라면 사랑하는 이와 둘이 같이 세계일주도 갈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돈 아까비....
한국의 결혼식 문화는 너도 나도 평균 올려치기 과시형 이벤트다. 대기업 평균 초임 연봉이 삼천만 원 선인데 일 년 연봉을 하루에 날려 버리는 씀씀이라니. 사회초년생이나 대기업 정규직이 아닌 다수의 젊은이들에게 가당키나 한가. 이러니 부모의 재력이 없으면 못하는 결혼, 빚을 내서라도 무리하는 결혼, 다들 돈 없어서 결혼 못하겠다고 아우성. 2030이 결혼 파업 중이지.
정말 한국의 결혼식은 낭비와 겉치레 과소비와 허례허식의 끝판왕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러니 다들 결혼식 축의금이 얼마 들어왔냐 누가 얼마를 냈는가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축의금 장사로 결혼식 비용을 보전하지 못하면 빚잔치 아닌가. 청첩장을 누구에게까지 보내느냐로 골머리를 쓰고 축의금 액수 때문에 가족 일가친척들 간에 의가 상하고 친구 지인들 사이에 빈축을 사고 마음 상하고 서운해지는 이유가 전부 그놈의 돈, 돈 때문이 아닌가. 내가 그동안 뿌린 축의금이 얼만데라며 뿌린 돈을 회수하려고 자식 결혼식은 죽어도 남 보란 듯이 해야 한다는 부모들부터, 서로 위신을 세우려고 모양 빠지지 않으려고 성대한 결혼식을 굳이 고집하는 남녀들 투성이.
전문 사회자와 주례와 요란한 음악으로 치장한 삼십 여 분의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하객들이 득달같이 뷔페에 길게 줄을 섰다. 7만 7천 원짜리 뷔페 밥맛이 어떤지 좀 보자야. 신랑신부가 있든 말든 그저 자기들 핸드폰 들여다보고 끼리끼리 다들 먹고 마시기 바빴다. 신랑 신부는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또 인사를 하고 또 인사를 하러 다녔다. 앉아서 편하게 저녁을 먹지도 못하고 와인 한 잔도 마시지 못하며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웃고 놀지도 못하는 결혼식. 얼굴도 잘 모르는 먼 데서 온 신랑신부의 일가친척들. 오늘 보고 다시 십여 년 동안 아니면 평생 안 볼 부모의 어느 지인들에게까지 정신없이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러 다니는 신랑신부.
사업을 하는 사람이기에 사업상 관련 있는 모든 이들이 의무적으로든 예의상이든 와야 할 자리를 만들어야 했겠지 생각했지만 어딘가 씁쓸했다. 이렇듯 밥만 먹고 갈비를 뜯고 와인 한 잔에 목을 축이며 하객들로 정신없는 가운데, 서둘러 사진 한 방 찍고, 있을 자리를 찾지 못해서 뻘쭘하게 아는 사람 찾다가, 또는 다른 일 보려고 서둘러 짐을 챙겨 식장을 나와야 하는 결혼식 문화라니. 하아.......... !
셔틀버스가 끊어졌네 어쩌네 택시를 부르네 마네 버스를 타네 주차한 차를 빼네 마네 직원들과 하객들로 어수선한 웨딩홀 입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동창 둘과 버스 정류장에서 나중에 또 보자...라는 말을 의례적으로 나누며 뿔뿔이 헤어졌다.
3.
내가 삐딱한 걸까. 그렇겠지.
허례허식에 전 보통의 한국 결혼식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떠오른 그동안 내가 참석했던 아름다웠던 결혼식 몇몇 장면.
한강 둔치에서 오가는 사람들까지 지켜보는 야외 결혼식을 올린 독일인 지인의 결혼식과
프랑스 부르고뉴 시골 농가에서 사흘간 가족 친구들이 모여 즐거운 파티를 하며 보낸 친구의 한-프 국제 결혼식,
레스토랑을 빌려 가족, 친구들만을 초대해 결혼식을 올렸던 친구와
친구와 지인을 초대해 신혼여행으로 강원도 동강 캠핑을 떠났던 지인이 떠올랐다.
우리 집은 허례허식과 과소비, 남에게 과시하는 풍토를 끔찍하게 싫어한다.
결혼식에 퍼부을 그 돈이면 차라리 아껴서 집을 사는데 보태거나 저축을 해서 나중에 긴요할 때 쓰는 게 낫다는 주의다.
아마존 이베이에서 백 불에 산 웨딩드레스를 입고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대신 셀프 화장을 하고 내가 사진을 찍고 성당에서 2백만 원짜리 결혼식을 거행했던 언니.
동생 부부도 원래 성당에서 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취소되면서 예식장으로 급히 변경했는데 성당 신부님이 혼배 기도를 올려주러 예식장까지 와주셨다. 덕분에 훈계조의 듣기 싫은 자화자찬 주례사 대신 아름다운 기도문을 경청했다.
실용주의자 동생 부부는 코로나 때 결혼식을 하면서 방역 탓에 하객을 양측 50명 도합 백 명으로 제한하게 되었다며 좋아라 했다.
미국인과 결혼한 언니는 신랑 측 부모의 집에서 가족 모임으로 결혼식을 올렸고 한국에 들어와 성당에서 결혼식을 했다. 신혼여행은 남편과 국내 여기저기를 여행 다닌 거로 대신했다.
동생 내외는 코로나 때라 신혼여행도 따로 안 갔다. 거창한 신혼여행에 쓸 돈으로 대신 둘이 오래오래 같이 살면서 시간 날 때 마음이 맞을 때 가고 싶은 곳 더 많은 곳을 같이 다니면 된다고 했다.
동생이 결혼할 때 신부 측 부모와 상견례 날.
우리 엄마가 폐백 패스하고 신부 측의 혼수 예단 예물을 모두 받지 않겠다고 하자 신부 부모가 놀라서 반문했다.
ㅡ 하나뿐인 아들 결혼식인데... 그래도... 안 하면 서운하지 않으세요?
신부 부모가 쉽게 물러설 기미가 안 보이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ㅡ서운하지 않습니다. 제가 허리가 아파서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없고요. 한복을 맞춘 들 늙은이가 입고 다닐 일도 없어요. 식만 해도 충분합니다. 둘이 잘 살면 그거면 됩니다.
엄마는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폐백 혼수 예단 따위는 쓸데없는 돈낭비라고 생각하는 우리 엄마가 좀 멋있었다.
나는 이런 우리 집 풍토가 아주, 아주, 마음에 든다.
4.
같은 결혼식이라도 예식장보다 교회나 성당에서 하는 결혼식은 그나마 위화감이 덜하다.
예식장 결혼식은 한 시간 간격으로 동시다발로 이벤트를 찍어내는 공장 컨베이어 벨트다.
예식장에서 유명한 누구누구를 불러다가 구구절절 영혼 없는 훈계를 늘어놓는 주례사는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다.
신랑 신부의 학벌과 직장과 직위를 어쩌고 저쩌고까지 줄구장창 늘어놓는 데에서는 토가 나올 지경이다.
도대체 결혼식에서 신랑신부의 이력과 스펙을 왜 공표해야 하는 걸까. 면접장도 아닌데.
재산 학벌 자랑하기 배틀이라도 벌이나.
남들 앞에서 하지 말아야 할 예의가 제 자식자랑 돈자랑이라는데. 부끄러움조차 없다.
우리의 결혼식 문화를 보면 촌스럽다 못해 너무 천박해서 솔직히 역겹다.
한국인의 속물근성의 최고 경연장이 결혼식과 장례식이 아닐까.
지금 한국의 결혼식 문화는 개인 대 개인의 결혼식도, 가족과 가족의 결합도, 소중한 친구들의 축하를 받는 자리도 아니다.
그저 나 이 정도 되는 사람이야. 내 자식이 이 정도 되는 집이랑 결혼해.
이 정도 되는 웨딩홀에서 결혼식 할 정도로 돈 좀 있다고 돈 좀 쓴다고,
자식자랑 돈자랑을 일가친척과 남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며 과시하는 자리인 듯.
.
'연애는 니들 맘대로 해도 결혼(식)은 니들 맘대로 안 된다. 부모 맘대로 한다'는 것이 한국의 결혼식 문화다.
뭐랄까. 나는 이런 결혼식을 생각할 때마다 숨이 막힌다.
한국의 결혼식은 '부모의 세를 과시하는 장이고 장례식은 자식의 세를 과시하는 장' 이란 말이 있다.
결국 이 나라에서 결혼식은 '비즈니스'다.
그러다 보니 아무개 씨 아들 딸이 결혼한대라서 가고,
부장님, 팀장님, 사업 파트너 직장 동료라서, 또는 학교 동기 동창이라서 가고,
고향 선후배라서 가고,
축의금을 받았기에 도로 빚 갚으러 가고,
가깝지도 않은데 연락도 없다가 수년 만에 만났어도 청첩장 받아서 가고,
가기 싫은데도 의무적으로 가고,
그냥저냥 한 이유로
인간관계의 피곤함을 달고 사회생활 만렙 찍으려고,
적정 축의금 액수에 머리를 굴려가며 서로 눈치 보면서 간다.
그런데 결혼식에서 나 잘 나간다 잘 산다를 과시하는 것보다 10년 뒤 이혼 안 하고 서로 아끼고 존중하며 잘 살아가고 있는 게 더 중요한 건 아닐까?
대한민국의 쇼 비즈니스 속물 결혼식 문화.
주차로 시작해 축의금 비교하고 밥맛으로 끝나는 우리의 결혼식 문화. 밥맛 없다. 최악이다.
백일잔치 돌잔치 환갑잔치가 없어졌듯이 허례허식에 전 결혼식도 이제 바뀔 때가 없어질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