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동창이었으나 정작 학교 다닐 때는 이름 석자 외에 아는 게 별로 없었던 한 사람이 있다.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 사이 밥을 먹고 술도 마시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이상하리만치 편했다. 대화가 끊기고 잠시의 침묵마저 편안했다. 세월이 흘렀어도 넌 조곤조곤 말하는 버릇과 차분한 성품은 여전하구나. 이십 대 풋풋하고 앳된 청춘은 떠나가고 귀공자처럼 잘생겼던 용모는 푸근한 나잇살 너머로 영영 사라졌지만 그의 맑고 초롱초롱한 눈빛과 따스한 마음씨만은 그대로였다. 나를 누나라 부르는 것마저 귀여웠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학창 시절에 아무리 가까웠던들,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던들 점점 멀어지는 사람이 있다. 맞지 않았던 거다. 나이 들수록 시간이 소중하다. 함께 있으면 편한 사람 좋은 사람과 보낼 시간도 별로 없는데 불편한 사람을 사적으로 만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쓸데없는 인간관계, 소모적인 관계는 정리하게 된다."
공감했다. 같이 산책을 하며 떠나가는 계절을 음미하고 모처럼 간단한 술자리. 여운이 길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떠올린 한 단어.
'표류'
결정하지 않는 것으로 내리는 결정 혹은 책임지지 못할 결과를 야기하는 결정을 표류라 한다.
인생을 표류하는 사람은 내 인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현재 상황에서 탈출하기를 꿈꾼다. 친구관계에서는 남을 무조건 따라가면서 표류가 시작된다. 다른 사람들이 인정한다는 이유로 어영부영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무엇이 나 자신을 위해 올바른 일인가에 대한 판단은 다른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흐릿해진다. 누군가가 뭘 사니까 나도 그걸 사고 친구들이 전부 결혼하니까 덩달아 결혼하고 부모가 원하니까 그 직업을 택하는 것이 표류다. 결론적으로 이런 결정은 불행을 불러올 수도 있다. 가족 친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받는 인정은 달콤할지는 몰라도 행복한 인생의 토대가 되기에는 불충분하다.
친구들이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한 자리에만 안주한다면 혹은 자신의 재능과 신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주위 사람들의 가치관에 쉽게 동조하는 성향이 강하다면 친구관계에도 의존하는 표류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란
몇 년에 고작 한 번을 만나도 여전히 좋을 사이.
오랜만에 봐도 어제 본 듯하고 부담 없고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고 젠 체하지 않으면서 솔직할 수 있는 사이.
이야기를 나누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서로에게 배울 게 있고 각자의 길을 서로를 응원하게 되는 사이.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울 수 있는 사이.
그런 사이.
친구는 정신 안정제라고 한다. 긴장이 강요되는 환경에 놓일 경우 인간은 반드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친구가 바로 그렇다. 친구는 이해관계나 타산을 따지지 않아도 되는 존재다.
그러므로 이해타산을 따지게 되는 직장에서는 친구를 되도록 안 만드는 게 좋다. 동료 가운데 친구를 만드는 건 최후의 선택이라 본다. 사람을 한낱 도구로 자랑할 트로피로 취급하는 건 인맥 쌓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친구를 얻는 데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 열심히 명함을 교환하고 돈으로 플렉스하고 폭풍칭찬을 줄줄 늘어놓은들 그래서 유지되는 관계에 얼마나 깊이가 있겠는가. 내 잠재성을 이끌어주는 사람들과 진심이 깃든 우정이 선사하는 만족감만 하겠는가.
속내를 털어놓거나 불평불만을 늘어놓거나 내 모자람과 결핍을 드러내고 칭얼거릴 상대를 구하는 데는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동료가 아니라 차라리 다른 세계나 다른 업종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서로 다른 일을 하다 보니 별 사심 없이 질투와 시기 없이 나를 받아주고 내가 하는 이야기를 색다른 호기심으로 관심 있게 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친구가 되어야 할까.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
그렇다면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란 것은 어떤 걸까. 웃기는 사람, 재미있는 사람, 화제가 풍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이는 혼자서 자기 애기만 떠드는 사람, 제가 대화의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은 겉만 번지르르하지 실은 인기도 없고 제 속내를 털어놓을 편한 진짜 친구가 없을 수도 있다. 대화가 오가지 않고 한 사람만 이야기를 떠드는데 맞장구를 쳐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리 유쾌하지도 즐겁지도 않다.
정확하게는 '함께 있어서 즐겁다'가 아니라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좋은 친구다. 자기 이야기도 재밌지만 상대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적재적소에 알맞은 반응을 보여주는 사람말이다. 연인이나 동반자도 친구 같은 사람을 만나야 관계가 오래간다. 끼리끼리 만나고 끼리끼리 논다. 근묵자흑. 그 사람의 친구 또는 배우자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는 말은 괜한 헛소리가 아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게 기본이 되어야 의사소통이 시작된다.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 같은 이야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사람, 상대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 비난, 불평, 반박만 하는 사람은 점점 싫어진다.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사람, 자기 편만 들어달라는 사람, 자기 걱정과 불안을 끊임없이 전가하는 사람, 무조건적인 공감을 원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사생활과 과거에 연연하는 사람, 남에게 설교하는 사람, 자기 객관화가 덜된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지쳐서 하나둘 나가떨어지고 어느샌가 주변에 사람들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내가 싫은 사람을 참으면서까지 만날 까닭은 없다. 시간도 에너지도 한정되어 있으니 기왕이면 기분 좋은 상대와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의 즐거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목사님을 찾고 누군가는 시를 찾지만 나는 친구에게 간다."
-버지니아 울프
독신인 경우에 친구가 행복도를 결정하는 요인이다. 열정의 불꽃이 잦아들 경우에 대비해 항상 주변에 친구를 두는 것이 좋다. 인간관계를 상의하고 분석하고 함께 고민해 줄 사람이 친구 말고 또 누가 있단 말인가. 친구들은 인생이라는 험난한 여정에 없어서는 안 될 안내자이자 길동무다. 삶이란 파고에서 버틸 힘이 되어주는 친구의 존재는 죽음에 강력하게 맞설 수 있다.
배우자의 여부보다 친구의 여부가 암 발생률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배우자가 있다한들 배우자가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지 못한다면 결혼 생활도 삶의 질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친구만도 못한 배우자나 가족이란 남보다 더 멀다. 가족이 있어도 결국 혼자 세상을 뜬 아버지를 보면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장례식에 찾아온 아버지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걸 보면서 생각했다.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친구 한 명 없는 사람들이 고독사를 더 걱정해야 한다.
"우정은 죽은 다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에 베푸는 것."
-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랄드
나는 친구들에게 어떤 친구인가.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 사람인가. 피하고 싶은 불편하고 싫은 사람은 아닌가.
거울 속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