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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단상

감성과 감정의 차이

우리는 왜 토론을 하지 못할까?

by 홍재희 Hong Jaehee


일전에 내가 영화를 보고 울었다고 했더니 글도 그렇고 이성적인 사람이라 내게 그런 감성이 있을 줄 몰랐다며 놀라던 지인이 있었다. 엥? 어이없어서 웃었다. 감정적인 것과 감성적인 걸 혼동한 모양이었다.


'이성적' '논리적' '합리적'이라는 걸 싫어하는 한국인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성, 합리, 논리라는 말에 두드러기를 일으키거나 이성적인 사람을 냉정한 사람, 까칠한 사람, 차가운 사람, 말발만 센 사람으로 곡해하는 이들도 많다.



살면서 수도 없이 겪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대화를 할 때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말해달라고 하면 불쾌해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할 사안에 대뜸 감정적으로 나온다. 사실과 의견을 한데 섞지 말고 근거에 입각해서 말해달라고 하면 자기 말에 토를 다는 거냐며 발끈하는 사람도 많이 봤다. 논리가 막혀 할 말이 없으면 꼭 이런다. 원천봉쇄의 오류다.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 주워들은 -카더라로 우겨대다가 논점일탈하는 건 부지기수다. 내 의견은 좀 다르다라고 하면 너만 그렇지 안 그런 사람 없다 남들은 세상은 다 이렇다로 밀고 나온다. 성급한 일반화다.



근거를 대라고 하면, 대뜸 난 너랑 더 이상 이야기 못해라고 오리발을 내밀거나, 그냥 좀 동의해 주면 덧나나 너무 섭섭하다고 감정에 호소하거나, 사람이 왜 이렇게 딱딱하냐며 논리 좋아해서 좋겠다라며 빈정대기까지 한다.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이 사실과 다르거나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명되었을 때조차 쿨하게 인정하기보다 일단 우기고 본다. 맥락과 관계없는 외부 조건이나 남 탓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든다. 주제와 하등 상관없는 딴소리를 늘어놓는다. 예를 들어 상대가 나이가 어리면 어린 게 대든다 싹수가 없다, 왜곡된 관점과 틀린 정보 또는 오류를 지적하면 말 잘해서 재수 없다, 잘난 체한다, 뭐든 따지고 드니 주변에 사람 없겠다, 그렇게 살면 안 피곤하냐, 세상 피곤하게 산다 등등. 아니면 의견에 대한 반박이나 비판을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멋대로 상처받는다.



토론을 하려고 하면 되려 논쟁하려 든다. 그런데 토론도 안되는데 논쟁이 될 리가 없다. 논쟁이 가능할 이성적, 합리적 사고도 하지 못하는데 무슨. 말싸움이나 안 하면 다행이다. 남의 견해를 인정하면 내가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조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내 말을 무조건 따르라고 강요하거나 반대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겠다면서 설득이 될 때까지 두 손 두 발 들 때까지 자기 주장만을 관찰시키려고 기를 쓴다. 말이 되는 안 되든 일단 우기고 또 우기고 본다. 다들 남을 이기고 봐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한국인 우리들은 그걸 토론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 부모 지식 간에 대화와 소통을 배운 적도 없고 학교에서도 토론을 해본 적이 없으니 도대체 알 리가 없다. 집이든 학교에서든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데 몸에 배어있지 않은데 책에서 개념만으로 외운 걸 실제 일상에서 언행으로 실천할 리 만무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그렇게 생각하구나. 그렇구나. 알았다. 이렇게 사고하는 것이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수용의 태도다. 안타깝게도 한국인 우리들은 남의 견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법을 모른다.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 우리들은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근거를 대면서 차근차근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법을 배운 적도 나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나의 견해에 반하는 주장을 펼치는 이의 말을 편견 없이 경청하는 연습을 해본 적이 없다. 토론하는 법을 배우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대화를 한다면서 늘 내가 옳다 네가 틀렸다를 반복하고, 토론을 한다면서 모든 사안을 맞다/그르다라는 옳고 그름의 문제로 환원하고, 서로의 약점을 찾아내기 바쁘고 감정적으로 핏대를 세우거나 잔뜩 날이 서서 인신공격으로 서로 못 잡아먹어서 으르렁 댄다.



그런데 토론에서 중요한 것은 옳다 /그르다를 판별하는 것보다 아,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저 사람은 나와 똑같은 걸 보고도 저렇게 다르게 생각하는 구나,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구나, 사람은 세상은 참으로 다양하구나...를 깨우치게 하는 것 아닐까. 그 과정에서 기존과 다른 더 나은 방법을 도출할 수도 있고, 나와 그의 생각의 다름과 같음을 가운데 제 3의 길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 그게 토론의 필요성이 아니겠는가.


주입식 암기 교육의 폐해가 한국 사회 도처에 뿌려놓은 것들.


도 아니면 모라는 극단적 이분법, 부모 학교 사회가 정해놓은 프레임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획일성, 고장관념을 디폴트로 여기고 절대시 하는 비주체성과 추종주의가 기본이 되는 곳에서는 왜?라는 질문이 싹틀 수가 없다. 호기심과 자발성 그리고 주체성이 자라날 시공간이 없다. 즉 정신적으로 자립할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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