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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가족의 힘

1-4. 장애 그게 뭔데? 정신 줄 잡기

by 우철UP


오후가 되자 병실문을 열며 아이들이 들어왔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두 녀석이 달려와 내게 안겼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내가 아이들에게 아빠를 만나면 절대 울지 말고, 밝은 표정으로 웃으라고 단단히 교육시켰다고 했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나의 사고과정과 현재 상태를 이야기했는데,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초등학생 딸과 아들은 무서움에 엄청 울었다고 했다.

하긴 초등학생 아들은 밤에 잠이 안 올 때면 꼭 내 품에서 잤다.

언젠가 아들은 하나님께 ' 아빠가 다치지 않게 해 달라고 ' 매일 기도한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그 소릴 들으니 가슴 한편이 먹먹했었다.

왜냐하면 나의 아버지는 내가 군대 있을 때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나는 그 빈자리를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그렇게 때문에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절대 다치거나 일찍 죽으면 안 되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다행이다.

비록 지금 다치기는 했어도,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서 아들 얼굴을 보니 너무나 행복했다.

그런 내 새끼들을 보니 더 힘이 나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속 깊은 딸은 내 상태가 심각한 걸 알고 있지만, 학교에서 친구들과 있었던 일, 재미있는 이야기 등등을 내게 이야기해 줬다.

잠시나마 내가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행복했다.

난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빠가 못 걸을 수 있는데 괜찮아?”


“못 걸어도 괜찮아, 우리 아빠잖아.” 딸의 대답이었다.


그래 맞다. 못 걸어도 난 아빠다.

설사 내가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고 해도 내가 아빠가 아닌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내 머릿속을 지배했던 나쁜 생각을 지웠다.

아내와 아이들을 고생시킬 수 없고 난 다시 일어나 아빠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즐거운 시간도 잠시였다.

현재 내가 입원한 곳이 외상센터 집중치료실이어서 아이들의 조잘거리는 소리에 힘이 나지만 면회시간에 제한되어 있어 아이들을 처갓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아내가 말하길 어제는 찬영가 왔었다고 한다.

찬영이와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로 지내왔기 때문에 형제와 다름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고민을 공유했고, 퇴근시간에 맞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사고 당일에도 안부 전화가 왔는데, 수술실에 갇혀 있어 전화는 불통이었고, 형과 통화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아내와 전화 연결이 되었는데 수화기 너머로 남자가 그렇게 서글프게 우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고 한다. 어제 찬영이가 잠깐 왔지만 나는 만나지 못하고 내 상태를 물어보고 돌아갔다고 했다.


오후에는 영관이가 왔다.

영관이는 내 상태를 보자 할 말을 잊은 듯했다.

하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저번주만 해도 편의점에서 같이 맥주를 마시던 친구였는데, 하루아침에 침대에 누워있으니.

그것도 언제 일어날지 모를 친구를 보고 있으니 그 마음이야 얼마나 먹먹할까.

누워있는 내 손을 잡아 주었고 우리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가족과 친구가 있으니 살아갈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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