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영웅의 서사시

by 우철UP

병원생활은 늘 낯설고 설익는다.

오랜 병원생활에 적응하게 되면 오히려 병원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꽉 막힌 콘크리트 건물은 더없이 안전한 건물이지만 단단한 벽만큼 답답한 마음은 쌓여만 간다.


옥상, 이곳은 나에겐 탈출구 같은 쉴 곳이다. 사람은 지치고 피곤할 때면 자기만의 동굴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공간이 나에겐 옥상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마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또는 바쁘게 살아와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틈만 나면 옥상으로 가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특히 낮에 옥상에서 즐기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그동안 회사생활에서 느끼지 못했던 햇살 가득한 여유의 시간이다. 옥상에서 즐기는 해방감 때문에 요즘은 잠도 잘 잔다. 하루 8~9시간을 푹 자고 일어나니 몸도 마음도 가볍고 홀가분하다.


옥상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문득 김영하 작가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김영하 작가는 영웅은 위기, 목표, 기회라는 서사 구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예로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꼽았다. 임진왜란이라는 위기 속에서 왜적을 소탕하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드라마틱한 기회가 이순신 장군에게 찾아와야만 했다. 그것은 일단 어렵게 과거 급제를 하고, 임진왜란이라는 위기 속에서 초라하기 짝이 없는 기회 바로 12척의 배. 중과부적의 전쟁 속에서 12척이라는 물리적으로 초라한 군사력으로 왜군 330척을 섬멸하는 서사시. 이것이 바로 영웅의 서사시이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인생에서도 이 같은 서사구조로 대입하면 인생사가 드라마처럼 극적의 인생사를 보여 줄 것 같다. 어찌 보면 이런 서사구조에 지금의 나를 대입하면, 지금이 바로 위기는 틀림없다. 그러나 목표, 기회라는 구조를 설정해 놓고 현재를 열심히 준비하다 보면 저 바위 속을 비집고 핀 들꽃처럼 자연스레 위기의 서사시가 쓰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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