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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길섭 Sep 13. 2024

나는 겁쟁이다

인류의 조상은 사실 겁쟁이라고 한다. 만용을 부리다가는 명줄이 짧아지기 때문에 공포라는 본능이 인간의 DNA에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포는 생존에 유익한 도구다.

그런 면에서 나는 어쩌면 그 누구보다 '뛰어난' 유전자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굉장한 겁쟁이인 것이다. 오늘의 나는 조금 다를지 몰라도 적어도 내가 31년 간 축적해 온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그렇다. 앞으로 두 가지 예화를 써보려 한다. 나를 미화시키지 않고서.


우선은 내가 여덟 살이었을 때의 기억이다. 같은 아파트 아래층에는 나와 동갑인 친구가 한 명 살았다. 어느 날 그 친구와 나, 그리고 열한 살이었던 내 누나는 아파트 1층 입구에서 함께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 셋이 대화에 열을 올리고 있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열한 살 정도로 보이는 형들 두 명이 우리 옆을 지나가려 했다. 우리는 아주 잠깐 그들을 쳐다봤다. 악의는 없었다. 그저 시야에 새로 들어오니까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닿은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내 오른쪽에 있던 누나와 내 친구를 노려보며 내쏘았다.

"X발 뭘 꼬라봐?"

그러자 누나와 친구가 지지 않고 응수했다.

"니도 꼬라봤잖아."

양측에서 순식간에 두어 마디 설전이 더 오갔다. 그리고 그 두 남자는 누나와 내 친구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고는 누나와 내 친구를 각자 한 명씩 마주하고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아파트 복도는 쩌억, 쩌억 바람을 찢는 소리와 비명소리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비명소리에 내 소리는 없었다. 나는 조각상처럼 얼어붙어버린 것이다.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이질 않았고, '그만'이라는 단 한 단어도 입 밖으로 내뱉질 못했다. 살다 보면 어떤 일에 그다지 대단한 이유가 필요 없을 때가 있는데, 이 순간은 그저 (사실상) 묻지 마 폭행을 목격하면서 그런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뇌가 정지돼서 몇 분 동안 폭행했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때리는 것도 결국 지쳤는지 그 사람들은 얼마 뒤 자리를 떴다. 그리고 내 친구의 세 살 위 형제(내 누나와 동갑이었다)도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형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현장에 있었으면서도 도대체 왜 손놓고 구경만 했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 물음에조차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형의 눈동자 속에 비친 내 모습은 한없이 작아 보였다. 그는 내가 그 사람들과 대동소이하다고 느끼는 듯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어느 날 내가 누나한테 말했다. 21년 전 그날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겁 많은 나 자신도 증오스럽고, 또 그런 비난을 들어야만 했던 것도 괴로웠다고. 그랬더니 누나는 "그 당시에는 형들이랑 체격 차이가 워낙 많이 났으니 그럴 만도 했지."라며 위로해주었다.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내가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라고. 물론 마음 같아서는 옳은 선택을 함으로써 내 과오를 만회하고 싶다. 그러나 무릇 사람의 행동이란 그 상황에 실제로 놓여보기 전까진 100% 알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약한 사람이다.


앞선 일화에서 내가 죄책감을 느꼈다고 해서 나를 측은하게 생각하지는 않길 바란다. 나는 실제로 살면서 도덕적으로 지탄 받아 마땅한 일을 종종 저지른 사람이기도 하다. 다음의 일화를 읽어보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때는 내가 군복무 중이었던 2018년 무렵이었다. 같은 소대에 나보다 반년 정도 후임인 'C'가 있었는데, 잘생긴 데다가 재치까지 있어서 부대원들에게서 사랑을 많이 받던 동생이었다. 나 역시 그를 좋아했다.

어느 날 나는 C를 포함한 다른 부대원들과 분리수거를 하게 되었다. 다같이 일하니 금방 일단락되었고, 우리는 태평하게 생활관에서 TV나 보면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재앙이 들이닥쳤다. 분리수거 총책임자인 간부가 만면에 노기를 띤 채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생활관의 공기가 무겁게 우리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는 분리수거가 엉터리로 되었다면서 범인을 반드시 색출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너야?"

"아닙니다."

"그럼 너가 그랬냐?"

"저도 아닙니다······."

그다음으로 추궁당한 사람은 앞서 말한 후임 C였는데, 그는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서 망설이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분위기는 점점 C가 범인이라는 쪽으로 흘러갔고, 그런 상황에 놓이니 C 본인조차도 실제로 자기가 그랬다고 점차 믿게 되었다.

"제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범인이 '만들어지자' 간부는 C를 집어삼킬 듯 노려보며 들입다 노발대발했다. 피의자 신세를 벗어나 관찰자의 입장이 되니까 나는 솔직히 안도했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C가 참 안됐다.'

'도대체 이 상황은 언제 끝나려나.'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방관하고 있다가 갑자기 한 가지 의혹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어라? 잠깐만. 그거 설마 내가 잘못했던 건 아니겠지?'

머릿속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내 행동을 차근차근 되짚어보았다. 부정하고 싶었으나 의심은 점차 확신으로 바뀌었다.

'내가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했던 건가?'

'내가 했던 것 같다.'

'내가 했구나······.'

사실을 직면하고 C가 혼나는 걸 보니 이전까지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심장이 두방망이질치기 시작했고, 바짝 타들어간 입술을 핥아냈다. 그때라도 나는 자백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 간부가 너무 무서워서 그러지 못했다. 나는 용기라는 단어를 그저 사전적인 정의로만 알고 있는 겁쟁이였던 것이다. 결국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C가 나 대신 희생당했다.

간부의 화가 다소 누그러지자 우리는 분리수거를 다시 하러 갔다.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C를 보니 "사실 내가 그랬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마음을 저울질하는 데서 그쳤다.

나는 C의 얼굴을 볼 때마다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했다. 내 잘못을 만회하고자 전역할 때까지 그에게 잘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크게 뭔가를 해주진 못했다.

흐지부지 전역하고 4년이 지난 어느 날 밤, 나는 마침내 C에게 연락했다. 옛날에 그 간부가 분리수거 때문에 불같이 화를 냈던 일을 기억하느냐고. 워낙 호되게 혼나서 그런지 C는 그때의 일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이어서 나는 C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그때 사실 내가 잘못했던 거라고. 그런데 너무 겁이 나서 차마 나서질 못했다고. 정말로 미안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C는 이렇게 말하며 나를 오히려 다독여주었다. 그 간부는 중간에 끼어들면 오히려 화를 더 내는 거 형도 잘 알지 않냐고. 다 지난 일이고, 괜찮다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세상과 담을 쌓고 싶어서 SNS 계정도 삭제하고 휴대폰 번호도 바꾸게 되었다. 훗날 나는 부대원들에게 C의 근황을 수소문했으나 아쉽게도 다시는 그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그 친구가 부디 잘살고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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