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르네상스 노동자의 미소"
스마트폰을 열고 아무 생각 없이 계좌를 열고 들여다본다. 특별히 기억할 것도, 확인해야 할 이유가 없지만 습관처럼, 손가락으로 화면을 밀어 올렸다. 순간, 숫자가 낯설다. 눈을 한 번 껌뻑이고 다시 들여다본다.
"엥? 이게 뭐지?"
잔고에 정확히 100만 원이 더 있다. 입금 내역을 확인해 보니 출판사였다.
이틀 전, 출판 계약을 했던 그 출판사. 계약금은 10분 내로 입금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솔직히 '며칠 있다 들어오겠지' 생각하고 잊고 있었는데, 얼떨떨했다.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이미 약속이 이행되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소리 내어 웃지도 않았고, 환호를 지르지도 않았다. 올해 나를 미소 짓게 한순간이 조용히 찾아왔다. 돈이 들어왔다는 사실 하나 때문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기쁨 보다 먼저 밀려온 감정은 묵직한 책임감이었다.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을 눌렀다. 계약금 100만 원은 내가 앞으로 써 내려가야 할 시간과 글에 대한 선물 같은 느낌이다.
나는 앞으로 써야 할 책들을 떠 올렸다. 원고지 위에 내려놓을 이야기들, 밤을 새우며 다듬어야 할 이야기들, 쉽게 쓰이지 않아 씨름해야 할 언어들에 대한 생각으로 바뀌자 미소는 회심의 미소로 바뀌었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거창한 성공담이 아니다. 하루를 이겨내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마음을 짓누르는 생활의 압박감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의 이야기, 관계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끝내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분명한 근거는 없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살아보게 만드는 희망의 싹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지금의 나를 통해 그 이야기를 쓰고 싶다. 완벽하지도, 여유롭지도 않지만, 그래도 하루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서의 나, 버티는 삶이 아니라, 의미를 붙이며 견뎌내는 삶,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로 남길 이야기들이다.
이 100만 원은 그래서 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나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린다는 사람의 신호였고, 이제는 쓰겠다는 말이 아니라 써야 한다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나 자신에게 보내는 셀프 동기부여이기도 했다. 흔들릴 때마다, 그래도 시작은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증거다.
과거에 강사라는 이름으로 일정이 빡빡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분명 화려해 보이는 것 같았다. 사회가 부여한 역할 안에서 또렷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것은 나를 지켜주는 갑옷이 아니라, 벗어나기 어려운 허울 좋은 틀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 강사는 떠났다. 대신 1인 르네상스 노동자로서의 내가 새로이 서 있다. 글을 쓰고, 생각을 팔고, 경험을 콘텐츠로 만들며, 하루의 노동을 스스로 설계하는 사람, 안정이라는 보호막은 사라졌지만, 선택의 자유와 책임이 함께 찾아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쓰고, 누구의 호출이 없어도 준비하는 삶이다.
이 길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새로운 나를 응원한다. 무대가 없어도 스스로의 삶을 무대 삼아 서는 사람, 여러 재능을 엮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화려했던 과거를 추억으로 남기고, 지금의 불안 속에서도 성장 중인 나를, 나는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림 https://pixabay.com/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