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지키는 기술
결론을 더디게 내리는 태도를 가진 사람
"결론을 더디게 내리는 태도를 가진 사람"
석 달에 한 번 모이는 친목회에 가기 위해 예약된 식당으로 갔다. 정식이는 항상 일찍 도착한다. 누구는 어디까지 왔는지, 누구는 누구랑 같이 오는지 전화로 확인하기 바쁘다. 오후 다섯 시까지 모이기로 했지만, 30분이 지났지만, 한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준비된 음식은 불판 위에서 벌써부터 끓고 있었다. 그때 창규가 큰소리로 한마디 던졌다.
"항상 늦는 사람이 늦는다. 먼저 먹자."
창규의 말에 모임 분위기는 마치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았다. 모두 시선을 주고받지 않은 채 수저를 들기도 하고, 의자를 식탁 쪽으로 당겨 앉기도 했다. 그 늦는다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다는 것을 침묵이 증명하고 있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냉랭한 기운이 돌았다. 기다림은 배려가 아니라 손해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항상 일찍 도착하는 정식에게 창규가 물었다. "아까 진호한테 연락 안 해봤어?" 바로 그때, 진호가 헐레벌떡 식당으로 들어왔다.
"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길이 막혀서 늦었는데, 도착을 해서도 주차할 곳이 없어서 식당 주변을 몇 바퀴나 돌았어, 늦는다고 총무한테 전화를 했는데 안 받더라?"
그제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지각이었지만, 이유를 알고 나니 감정도 달라졌다. 사실은 처음부터 진호를 배려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상황을 모르니 판단부터 먼저 한 거였다. 사실 그 책임이 진호에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항상 늦게 도착했고, 일찍 가는 친구로 낙인이 찍힌 선입견 탓도 있다. 특히 이런 경우에는 사정을 미리 알지 못하고 판단하는 오해가 관계의 틈을 만들기도 한다.
관계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는 상황 보다 먼저 사람을 평가한다. 설명을 듣기 전에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에 맞춰 감정을 정리한다. 그 순간 관계가 혼란스러워진다. 이럴 때는 판단을 미루는 태도가 필요하다. 만약 진호가 평소에도 모임에 일찍 나타나는 친구였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관계를 유연하게 지키는 사람은 판단을 빨리하는 사람이기보다, 결론을 더디게 내리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직장 동료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다. 프로젝트 회의 중 한 사람이 의견을 냈다. 논리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었고, 경험이 적은 티가 났다. 그때 상사가 이렇게 말했다.
"그건 현실성이 없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회의실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 이후로 그 사람은 회의 시간에 안건을 거의 내지 않았다. 옳은 말이 항상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며칠 뒤, 다른 회의에서 같은 상사는 이렇게 말했다.
"방향은 흥미롭네요. 다만 현실적으로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의미는 같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그 동료는 다시 의견을 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핵심은 말의 내용이 아니다. 관계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느냐의 문제다. 관계는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남기고 버리는 선택의 결과다.
우리는 종종 관계를 망치는 말을 했다고 후회할 때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 말을 선택한 순간의 태도를 돌아봐야 한다. 기다릴 것인가, 판단할 것인가, 살릴 것인가, 잘라 낼 것인가, 그 선택은 아주 짧은 순간에 이루어지지만, 관계에서는 오래 남는다. 관계의 품격은 말이 아니라 선택의 누적으로 만들어진다.
오늘 하루에도 이런 순간은 반드시 온다. 누군가 늦고, 누군가 서툴고, 누군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순간, 그때 무엇을 말할지 보다, 어떤 선택을 할지가 더 중요하다.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 감정을 해소할 것인지, 관계는 감정을 쏟아내는 곳이 아니라, 태도를 선택하는 자리다. 아침에 이 글을 읽고 하루를 시작한다면, 한 가지만 기억해도 좋겠다. 상황이 불편해질수록 말은 줄이고, 판단은 늦추는 것. 그것이 관계를 오래 가게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기술이다. 관계는 설명으로 지켜지지 않고, 선택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