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멀리 떨어져 사는 아빠가 다녀갔다. 아빠를 보면서 ‘사과’라는 단어가 둥둥 떠다녔다. 나는 아빠의 폭력에 대해 제대로 사과를 받은 적이 있었던가? 나는 아빠에게 어떤 사과를 받고 싶었나? 아빠가 어떻게 사과를 하면 충분한 사과로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러다 성희롱․성폭력 피해 이후 가해자의 사과를 원하는 피해자들이 생각났다.
직장 내에서 성희롱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가끔 가해자에게 ‘진정한 사과’를 원하는 피해자를 만난다. ‘진정한 사과’를 하기로 마음먹은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진정한 사과’를 한다. 그런데, 피해자가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며 가해자의 진심을 뭉갠다. 가해자는 답답하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용서를 구한다.”라고 피해자가 알고 있을 세상 모든 사과의 말들을 붙여서 이야기했는데 피해자는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고 한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애초에 사과를 받아줄 마음이 없었으면서 자신을 기만한 것이라는 생각에 울분이 찬다. 도대체 ‘진정한 사과’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원하는 방법과 방식을 알려주면 그대로 하겠다고 진정성 있게 요청하는 가해자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가끔은 매뉴얼이 답이 된다. ‘자신이 한 가해 행위를 인정하고, 솔직한 감정을 담아, 구체적인 책임 행동과 재발방지 대책을 담아 해야 한다.’는 것인데 가해자는 이 마저도 모호하다며 답답함을 호소한다. 그런데 어쩌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인 ‘사과’라는 것이 문서 한 장으로 끝나는 일이면 왜 어려울까.
나는 가해자의 사과를 바라는 피해자를 보면서, ‘기대’를 본다. 일면식이 있던 가해자가 최소한 인간적이길 바라는 기대이고, 마지막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은 기대이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싶은 기대이고, 가해 행동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기대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해자는 피해자의 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실패한다.
가해자는 현실적으로 가해 행위를 인정하면 향후 사건 진행에 발목을 잡힐 수 있고, 법적인 자료로 불리하게 활용될 수 있어 위험부담이 크다.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가 이 사과를 받아줄지 받아주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무모하게 많은 정보를 노출할 없다는 계산이다. 가해자는 자신을 방어해야 하고, 그 권리와 판단 안에서 행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신에게 최선의 이익을 찾을 수밖에 없다. 한편, 피해자가 사과를 받아준다면 어쩌면 ‘일이 쉬 풀릴 수도’ 있다. 이 모호함들 안에서 사과라는 선택지를 덥석 잡는 결정은 쉽지 않다. 사과는 현실적으로 이 모든 불안한 상황을 감안하고도 가해자 자신에 대한 ‘존중과 책임감’,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과 회복에 대한 책임감’으로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적당히 피해자를 간 보는 사과라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가해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과는 사과라 할 수 없고, 그러한 사과를 해놓고 받아주지 않는 피해자를 원망하는 것은 본인을 괴롭게 하는 일이기도 하니 말이다. 무엇보다, 다시 한번 피해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다. 성희롱 피해, 그리고 해결 과정에서의 2차 피해까지 또다시 겪어내야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