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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ngtake Feb 16. 2023

한번 클라이머는 영원한 클라이머

나는 클라이머다. 한번 클라이머가 되었다고 계속 클라이머는 아닌데 나는 클라이밍을 하지 않는 지금도 나를 클라이머라 칭한다. 동네 바위산을 오를 때는 “나는 클라이머니까 이쯤은 할 수 있지.”라고 말하고, 사무실의 15리터 생수통을 거뜬히 갈 때는 “역시 클라이머는 다르지.”라고 나에게 우쭐한다. 벗은 배 위로 보이는 아주 얕은 흔적의 복근을 보며 “그래도 클라이머의 흔적이 아직 다 없어지진 않았어.”라며 나를 다독인다. 나는 언젠가는 실제 바위산을 타는 클라이머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작년 육아휴직 1년 동안 제일 잘한 일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일주일에 두 번, 클라이밍을 제대로 좋은 코치에게 배웠다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던 면에서 40분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 클라이밍을 하고 오면 하루가 꼬박 갔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좀 넋을 찾고 있으면 아이들이 올 시간이었다.      


그렇게 재밌게 했던 클라이밍을 복직을 한 6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나는 총 5회 했다. 회사 근처의 클라이밍장을 찾아 그 첫 문을 열고 들어가기까지 4개월이 걸렸다. 클라이밍을 하고 싶었지만 새로운 클라이밍장을 가는 그 길이 무척 멀게만 느껴졌다. 처음 등록을 하러 가던 그날도 처음 가는 길을 네비를 켜고 돌고 돌아가면서 ‘가기 싫다... 집에 가고 싶다...’ 하면서 걸었다. 그리고 결국 나에게 말했다. ‘오늘은 클라이밍장 위치만 알고 가자. 문 앞에서 들어가기 싫으면 가지 말자.’ 그리고 클라이밍장에 당도했다.      


지하로 난 클라이밍장을 마주하고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들어갔다. 등록하고 분위기를 훑는다. 여기는 대체 몸풀기를 어디서 하는지, 나에게 가르침을 하사했던 코치님은 팔 벌려 뛰기를 금쪽같이 하라는 지침이 있었는데 여기는 왜 뛰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건지, 오랜만에 왔더니 지구력인지 볼더링인지 규칙도 읽을 수가 없어 멍하니 홀드만 바라본다. 그러다 슬슬 몸을 움직였다.      


나는 6개월 제대로 레슨 받은 클라이머. 하던 대로 몸을 풀고, 아무도 뛰지 않는 클라이밍장 한가운데에서 나의 루틴대로 50회 팔 벌려 뛰기를 하고, 노련한 주변 클라이머에게 간단히 규칙을 학습하여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첫 번째, 아무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두 번째, 홀드를 읽는 법과 자세가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세 번째, 제일 낮은 난이도의 볼더링을 통과했다. 역시 몸은 나의 클라이밍 역사를 기억한다며 다음을 기약하고 얼른 클라이밍장을 나왔다.      


이 감응을 잘 이어가야 하는데 쉽지 않다. 클라이밍을 빠진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의 몸과 마음은 오만 근이다. 드디어 어제 바스러질 것 같은 눈을 비비며 졸고 누워 체력 3종 경기를 통과한 여성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있는 나를 보며, 더 이상 클라이밍을 미룰 수 없는 지경임을 깨달았다.    

   

운동을 하는 장소와 시간에도 적응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클라이밍을 하는 공간에 정이 붙어야 하는데 그 정을 붙일 새가 없었다. 얼른 정을 만들어 클라이밍장을 들어서는 그 문이 좀 편해지면 좋겠다. 그러니 오늘은 즐클을 하러 꼭 가겠다! 


*사진 : 김자인 선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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