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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ngtake Dec 29. 2022

너의 비염이 끼어들 때

나의 11세 아들 깨복의 별명은 ‘콧물 흘리는 대학생’이다. 언듯 보면 또리또리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일 년 365일 맑은 콧물을 머금고 있다. 깨복은 비염이 있다. 어릴 때 약한 천식이 있었는데 크면서 비염은 더 심해지고 있다. 콧물의 양이 늘었고, 자려고 누우면 코가 막히고, 아침에 일어나면 입 안이 가려워서 기침을 한다. 환절기, 요즘과 같은 춥고 건조한 날씨가 되면 정도는 더 심해진다.      


오늘도 깨복을 보니 작은 막대 콧물이 매달려 있다. 깨복은 콧물을 매달고 책을 보고, 달리기를 하고, 축구를 한다. 나는 깨복의 콧물이 목격될 때마다 막대 콧물을 누런 손수건으로 떼어준다. 내가 “깨복! 콧물 자꾸 나오는데 괜찮아? 힘들겠다.”하니, 깨복은 무심하게 “괜찮아. 콧물은 내 인생 친구야.”하고 옅게 웃는다.   

   

깨복의 콧물을 닦아줄 때마다 내 입에선 “아이고”,“어휴”,“어쩌”라는 안타까움이 터진다.‘어쩌다 비염이 생겼을까? 우리 집엔 아무도 비염이 없는데? 환경 때문인가? 집 먼지 때문인가? 진드기 때문인가?’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지만 실제 2년째 커튼 한번 빨지 않는다. 소아과를 다니다가 너무 센 약이 마음에 걸려서 사정보다 큰돈을 들여 한의원에서 약을 먹였다. 증세는 나아지지 않는다. 다시 찾은 소아과 명의는 “비염이 한약으로 고쳐질 거라 생각하세요?”한다. 명의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돈과 시간을 들인 한의원 치료가 삽질인 것만 같다. “몸을 좀 보하는 차원에서...”라고 작은 소리로 말하곤 조용히 진료실을 나오는 길,“어쩔 수 없어요. 크면 좋아져요.”명의의 이 말이 그나마 힘이 된다.      


병의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고, 확실한 치료법이 없고, 언제 나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장기 질병을 대처하는 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비염 치료를 위해 돈을 들여 약을 먹이는 방법 외에 생활 속에서 내가 하고 싶거나 하고 있는 것은 없다. 깨복이 어여 커서 비염을 물리치기를, 비염이 물리쳐지지 않더라도 깨복의 몸집이 커져 어여 덜 불쌍해 보이기를 바란다. 가끔 잠든 깨복의 콧등을 비비며 “깨복이 비염 나한테 주세요.”한다. 너의 아픔을 똑 떼서 나에게 가져오고 싶다.      


비염으로 깨복의 흰자가 부었다는 걸 안 아침. 안타까움은 배에 배가 된다. 깨복의 친부는 결단을 한 듯 공기가 좋은 곳에 가야겠다며 깨복과 만복을 데리고 제천 산골에 가서 5일을 있다 오겠다고 한다. 좋은 생각이라며 맞장구를 치고 곧 깨복의 콧물이 멈추기라도 한 듯 산골생활을 생각한다. 깨복이 돌아오는 날 맑은 낯빛에 콧물 공장이 멈추어 있기를 상상한다. 아마 누군가 “비염이 며칠 공기 좋은 곳에 간다고 고쳐질 거라 생각하세요?”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저렇게 얇은 귀로 궁지에 몰릴 때마다 무언가를 하다 보면 깨복도 크고 있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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