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누는 대화 ㅣ 임나무
매일 500 페이지를 읽습니다. 제가 글을 쓴다면 '카프카'처럼 쓰고 싶어요. 카프카를 읽으면 약간 푸르스름한 흑백영화를 보는 기분이 듭니다.
작가 프로필 ㅣ 임나무
취미가 독서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엄청난 독서광.
자신이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언젠가 너를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어.
너는 내 앞에 덫을 놓고 나를 폭로하려고 했었지.
아무도 없는 야심한 거리, 어둠 속에서 걸음을 재촉하던 내가 '그것'이 진열된 쇼윈도에 흘끗 눈길을 던졌을 때 너는 기다렸다는 듯이, 들리지 않는 노래로 유리창에 구멍을 냈어.
꼭 내 손이 들어갈 만큼의 구멍을, 내 손이 들어갈 만한 위치에.
하마터면 손을 집어넣을 뻔했지.
'그것'은 나에게 세상에 실물로 존재하는 단 하나의 탐재(貪財)이니까.
보는 사람도, CCTV도 없었고, 지문이나 머리카락이 남을 염려도 없었어.
아마 너도 날 남들에게 고발하진 않았을 거야.
그 전까지 네가 똑같은 방식으로 넘어뜨렸던 수많은 사람처럼.
어차피 네가 내 실체를 까발리고 싶어 했던 대상은 '나' 아니었어?
문득 그걸 깨닫고 유리 앞에서 덜덜 떨던 손을 움츠리며 씩 웃었지.
너의 유혹에 걸려들지 않은 열 명 중의 한두 명에 들어갈 수 있었어.
네가 내 손에 쥐여주려던 거울은 이미 내 안에 있단 말이지.
나는 승리를 확신했고, 기쁘게 너를 조롱했어.
그 유리 앞에서 너는 모습을 감추고 나만 혼자 심판대에 세웠던 거야.
내가 널 따돌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홀로 심판대에 선 그 자리는 익숙하거든.
그곳을 피하는 방법은 오랫동안 연습해왔다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이번엔 네가 심판대 위에 함께 서 있었어.
날 손가락질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죄를 자백하면서.
나의 패배를 인정해야겠어.
그 방법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
설마... 자폭까지 불사할 줄이야.
너의 이야기인 줄만 알고 넋 놓고 듣다가 내 가면 하나가 스르륵 벗겨져 버렸어.
내 안의 은밀한 거울 앞에서조차 잘 드러나지 않던 가면이,
너의 어스름한 빛에 그만 윤곽을 드러내고 만 거지.
밝은 빛은 눈이 부셔서 똑바로 보기 어렵지만, 흐린 빛은 모든 사물을 또렷이 보여준다던 네 말이 떠올랐지.
그래, 한 방 제대로 먹었네.
생각해보니 너, 직업을 잘 선택한 것 같군.
재판관이자 참회자라고 했었지?
네가 스스로 참회하면서 나를 고발한 죄목들을 좀 들어볼까?
첫째, 오로지 자신에게 과오가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다는 이유로 죄를 저지르는 사람.
둘째, 은혜를 베푸는 데 있어서 나 스스로 주인이 되어야 성이 차는 사람.
셋째, 우아한 척 누군가를 용서해주고, 마음속으론 원한에 차서 그놈을 후려갈겨 주는 상상을 수없이 되풀이하는 사람.
넷째, 남을 단죄하고 누구도 용서하는 법이 없는 사람.
아아... 이쯤에서 그만하지.
그 밖에도 많지만, 내 입으로 말하다 보니 참 얼굴이 화끈거리는군.
맞아, 난 그런 사람이지.
이미 다 아는 처지에 뭐, 숨길 이유도 없어.
네 말마따나 우린 공범자가 된 거야.
사실 나도 누군가를 붙들고 내 속을 솔직히 까발리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없었던 때가 있었어.
몇 년 전 교회에서 선교훈련 중에 선교팀을 짤 때였지.
지역마다 인원이 정해져 있었는데, 다행히 나는 희망하는 지역팀에 배속되었어.
첫 예비모임에 갔더니 우리 팀에 정말 꺼림칙한 사람이 하나 끼어있더라고.
강의 때마다 술 담배 냄새에 찌들어 늦게야 나타나는데, 얘길 해보면 아무것도 함께 할 생각이 없는 친구였어.
한눈에 봐도 부모에게 억지로 등 떠밀려 온 것이 분명했지.
팀원들은 모두 그 친구를 허물없이 대했어.
나만 그의 합류를 못마땅해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더군.
그런데 한편으로는 '니들도 속마음은 나랑 똑같을걸' 하며 쓴웃음을 지었지.
선교지역으로 출발하기 얼마 전, 그는 돌연 과정을 포기했어.
그때 내 마음이 어땠을 것 같아?
나는 팀원들에게 내 솔직한 마음을 자책하며 털어놓았어.
어떻게 나오는지도 좀 보고 싶었던 게 사실이야.
팀원들은 나를 다독였고, 은밀한 공감을 표시했고, 나의 용기 있는 고백을 치하했어.
네가 사교계에서 누렸던 존경과 평판을 나도 차지하게 되었지.
하지만 내가 원한 건 그게 아니었나 봐, 뭔가가 계속 찜찜하더라고.
마음속에서 누군가가 계속 물었지.
'왜 그가 포기하기 전에는 말하지 못하고 만사가 내 맘대로 된 후에야 '죄책감'을 가장하며 말했지?'
너를 만난 후에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어.
그것이 허위자백과 위선적인 위로일 뿐이었다는 것을.
난 가면을 벗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밑에 또 내가 모르는 가면이 있었던 거지.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면서, 자신의 죄를 고통스러워할 줄도 아는 겸손한 신앙인의 가면.
아마 그 가면들은 겹겹이, 교묘하게 살에 파고들어 자리를 잡고 있었던가 봐.
그 가면을 쓰고 기도할 때면 신이 정한 답, 어차피 정해진 그 답을 읊조리며 점점 더 숨이 막혀.
그걸 벗으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전엔 어디까지가 내 맨살이고 어디서부터가 가면인지 구별조차 하지 못했어.
불어로 된 너의 이름을 해석해준 이가 알려주기를, 네 이름이 '세례 요한, 외치는 자'라 하더군.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과격한 신의 예언자의 이름을 취한 네가,
신을 믿으면서도 그 이름으로 강요되는 회개를 외면하던 나를 신 앞으로 한 발짝 끌고 간 것은
그 이름에서 예고된 역설인 걸까.
가면은 가면일 뿐이야.
살 속을 파고들면 살을 썩게 하고 악취를 풍기고 종국에는 나의 날 것을 질식시킬 테지.
더 늦기 전에 나도 너의 전락에 참여해야 해.
가면들을 긁어내고, 흉하고 원시적인 날 것인 채로 두려움 없이 나를 폭로해야 해.
정갈한 언어 대신 한숨과 외침과 환호와 비명과 신음과 침묵으로 그분을 만날 거야.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게 말이야.
아! 생각만 해도 살 것 같아.
그 후엔 과연 어떻게 될까?
너의 말처럼 '신의 유용성'은 죄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벌을 주는 데에도 있지 않아.
그것은 인간들끼리도 충분히 할 수 있어.
다만 무죄를 보증하는 것만이 신의 존재 이유이지.
'종교란 일종의 대대적인 세탁 작업'이라고 했었지, 아마?
이제야 비로소 그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
완전한 날 것인 채 설 수 있을 테니까.
고발자, 너의 덕분으로
이방인, 페스트 등으로 잘 알려진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중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이다.
한 사람의 독백으로 쭉 이어져서 읽다보면 모노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 같다.
주인공의 이름은 '장 바티스트 클라망스'.
파리의 잘 나가는 변호사였는데 지금은 네덜란드의 음침한 항구도시에서 사람 낚시를 하는 중이다.
술집을 얼쩡대다가 걸려드는 사람을 붙들고 자기 인생 얘기를 하며 소일하고 있다.
딱히 사건이 있는 것도, 기승전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사는 얘기란 별다른 것 없이도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가.
그의 이야기도 그렇게 흥미롭게 듣게 된다.
게다가 그는 꽤 재주있는 이야기꾼이다.
문득 책을 읽다가 양철북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에 함께 섞어서 끄적여보았다.
야심한 밤에 쇼윈도에 구멍을 내고 물건을 훔쳐내도록 유혹하던 오스카 말이다.
겹겹이 나를 휘감고 있는 예의와 교양과 매너들에 가려진 나의 날 것을 만나고 싶을 때,
그럴 용기가 생긴다면 클라망스를 만나보길 권한다.
아마 어느 순간 그의 공범자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될 터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