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에너지 ㅣ 윤성권
책상 앞에서가 아닌 사람들 속에서 좀 더 현실적이고 모두가 쉽게 접근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재생에너지 정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 프로필ㅣ 윤성권
평소에 꿈을 디테일하게 꾼다. 그것을 각색해서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함.
나는 막걸리를 좋아한다. 소주처럼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아서 좋고, 맥주처럼 특별한 안주를 준비하지 않아도 이것저것과 가볍게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심지어 외국 사람들에서 동급으로 취급되는 와인과 같은 용량(750ml)이지만 가격이 저렴해서 좋다.
나와 막걸리의 첫 만남은 20살 때이다. 대학에 들어와서 이곳저곳 술 마시러 다니면서, 술에 대한 애정은 날로 향상되었지만 자연스레 주머니 사정은 악화되었다. 용돈이 말라 가는 시점이 되면 술은 먹고 싶은데 돈은 없기에 결국 가격이 싼 술을 마시게 되었다. 심지어 나의 군복무 지역이 유명한 막걸리를 신선하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었기에 그에 대한 애정은 계속되었다.
막걸리는 상황과 장소에 따라 다양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예전부터 등산은 운동이 목적이 아니라 내려와서 마시는 술이 목적이었다. 이러한 철학을 갖고 도심 속에 험지 북한산을 힘들게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갈증도 나고 배도 살짝 고프기에 포장마차에 들러 사발에 얼음 송송 띄워 시원하게 한잔 걸칠 때면 북한산의 농축된 정기를 한 아름 받으며 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산행 후에 막걸리를 즐기는 것을 보면 막걸리가 다른 술에 비해 도수도 낮고, 부족한 열량도 채워줄 수 있고, 갈증도 해소할 수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또한 힘들게 회사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려는 데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질 때면 내 발은 나도 모르게 전집으로 향하곤 한다. 과거에 김유신이 큰 결심을 위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말 모가지를 쳐냈지만, 그보다 결심이 약한 나는 내 발모가지를 쳐내면 다음 날 출근할 수가 없으니 그냥 놔둔다. 전집에 들어오며 기름 냄새에 코가 즐겁고, 지글지글 전 부치는 소리에 귀가 즐겁고, 노릇노릇 구워지는 모습에 눈이 즐겁고, 마지막으로 막걸리 한잔에 입이 즐거우면서 비가 와서 축축한 기분과 업무의 스트레스를 함께 잊을 수 있어서 좋다. 여기서도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비 오는 날 막걸리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다들 촉각을 뺀 나머지 눈, 코, 입, 귀 오감의 맛을 느끼러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막걸리는 각 지역의 살아있는 전통과 문화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막걸리는 대표적인 지역 주(酒)이다. 막걸리는 그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와 오랜 시절 내려오던 기법(공법), 그리고 그 지역 주민들의 삶, 문화, 정서가 첨가되어 지역 특유의 맛을 만들어 내고 있다. 맥주, 포도주, 사케 등이 다양한 지역의 맛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꾸준하게 환영받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보다 가격이 저렴한 막걸리도 앞으로 세계인들에게 충분히 환영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여기서 잠깐 지역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막걸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전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서울장수막걸리, 제주도 특성이 고스란히 담긴 제주감귤 막걸리, 고소한 알밤 맛이 살아 있는 공주 밤막걸리, 포천의 약수로 만든 포천이동막걸리, 그리고 일체의 인공적인 것을 배제한 느린 마을 막걸리까지 전국 팔도에서 약 1,000여 종류의 막걸리가 만들어진다고 하니 어림잡아 1,000개 이상의 지역 정서와 문화가 막걸리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글도 계속 읽다 보면 이제는 내가 한번 써볼까 생각이 드는 것처럼 막걸리를 좋아하고, 마시다 보니 내가 직접 만들어 볼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만드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깨끗하게 씻은 쌀을 불려서 물기를 쫙 빼고, 고두밥을 짓는다. 식힌 고두밥(찬밥을 이용해도 됨)을 누룩과 골고루 섞어서 적당한 온도(25℃정도)에 일주일 정도 발효시키면 막걸리가 완성된다. 막걸리 담그는 법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데 지금까지 실행을 하지 못한 것을 보면 아직 그 맛을 덜 느낀 것 같다. 지역의 정서를 느낄 수 있도록 더 깊게 마셔봐야겠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네 정서를 대표하는 막걸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문화가 담겨 있다. 여러분들도 생각해보면 꼭 그것이 좋은 기억은 아니겠지만, 막걸리에 대한 인상적인 추억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삶과 인생이 녹아든 막걸리가 한방에 훅 가는 그러한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사람들의 추억을 간직하고,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콘텐츠로써 자리 잡으면 좋겠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 저녁에는 맛있는 두부김치를 안주로 서울의 정서와 애환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장수막걸리를 깊게 마셔야겠다. 한방에 훅 가지 않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