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궁극의 필살기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드립니다 ㅣ 한공기

by 한공기
427155_315705241826240_873170111_n 복사본.jpg 마음탐정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마감시간이 코 앞이다. 벌써부터 콧잔등이 간지럽다. 책상 앞에 앉았다. 컴퓨터를 켰다. 커서가 깜빡거리며 내게 말을 건다.

"뭐라도 써 줘."

뭔가 아무거나 써 본다. 촤르르르르...겨우 한 문장을 채웠다. 그리고? 그리고? 생각이 안 난다. 시계를 본다. 3시간 남았다. 마감시간 11시 59분을 생각할 때마다 머리가 하얘져서 다음 문장이 생각이 안 난다. 딜레트키로 문장을 지운다. 커서가 비명을 지른다.

"안 돼~!"

다시 원점이다. 하얀 바탕 구석에 있는 커서가 껌뻑인다. 아니 숨을 쉰다. 이 아이는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으나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의지가 없는 걸까? 고민해본다. 한 번도 공모전에 글을 내 본 적이 없다. 소설반 동료들은 내게 묻는다. 공기님은 왜 출품 안 했나요? 난 애꿎은 뒤통수를 긁으며 한숨 섞인 대답을 한다. 글쎄요... 의지가 없는 걸까?
글쓰기 선생님은 언제나 강조하셨다. 말하듯이 쓰세요... 하지만 침묵은 나의 친구이다. 평소에 말을 잘 안 한다. 회사에서도 혼자 일하니까 회의 때 말고는 말할 일이 없다. 평소에 누구와도 전화 통화를 안 하니까 말할 일이 없다. 퇴근 후 집 앞 편의점에서 라면을 살 때도 말할 일이 없다. 계산을 마치고 편의점을 나가려는데 종업원이 외쳤다. "손님, 카드 놓고 가셨어요!"
카운터로 돌아와 카드를 집으며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데 목소리가 잠겨 쉰소리가 난다. 그래서 글을 못 쓰는 걸까? 말하듯이 쓰라는데 말하는 법을 잃어버렸으니까... 그래도 뭔가 써야 한다. 그래서 난 나만의 궁극의 필살기를 개발하게 된다. 그것은...

숨 쉬듯이 쓰는 것이다.

커서도 숨을 쉬고 나도 숨을 쉰다. 우리의 숨이 하나가 될 때 뭔가 터져 나온다. 난 그것을 <커서 돈오>라고 부른다.

나도 한 때 입시생을 대상으로 글쓰기 선생을 한 적이 있다.
난 학생들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 내게 단어 두개만 던져줘요, 어떤 이야기라도 만들어 드릴게요!"

스토리텔링 강연할 때 내가 했던 말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는 매우 쉬운 것이라 강조하면서 즉석에서 시범을 보였다.

학생들은 두개의 단어를 던져줬다. 한 남학생이 '우체통'을... 다른 여학생이 '고래'을 말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두 단어를 억지로 조합하여 이야기를 만드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접근해봤자 시간이 지나도 진전이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하냐고요?
일단 Keyword를 해체해야 합니다.
두 단어를 세상에서 지워버립니다.
당신이 우체통이란 낱말을 모른 채 우체통을 만나야 하고
당신이 고래라는 낱말을 모른 채 고래를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그 두 단어를 모른다면 그것을 뭐라고 표현할까요?

우체통 하면 떠오르는 모든 것을 생각해봐요.

딱딱함, 붉은색, 경직됨, 기다림, 고독함, 메신저, 깡통, 보고 싶은 사람에게...

혹은 문장을 떠올려 봐요.

'당신의 소식이 올 때까지 여기서 꿈쩍하지 않고 기다릴 겁니다.'

자 이제 고래 하면 떠오르는 모든 것을 생각해 봅시다.
신성함, 거대함, 꿈, 소망, 눈물, 바다, 경이로움...

또 문장...

'난장이가 꿈을 꾸었다. 그는 자신의 육체를 떠나 바다로 향했고 거대한 울음이 되어 아직도 헤엄치고 있다. "

이제 두개의 단상을 조합하여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숨 쉬듯이 말이다.

소녀는 선생님이 떠날 때 차마 인사를 못했습니다.
학생들을 위한 선생님의 작은 소망은 학부모를, 교장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어른들은 선생님의 생각이 위험하다고 했고
우리가 보호받기 위해 선생님이 떠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소녀는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에 마음이 울렸었습니다.

" 너희들의 꿈은 대학 너머에 있다.
대학이란 작은 공간에 꿈을 가둬두지 말고
보고 싶은 책 다 읽고, 하고 싶은 것 다해라!
어항 속의 물고기가 아니라 바다를 가르는 고래가 되어라!"

소녀는 선생님을 그리워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횡단보도 앞에 서있는 고독한 우체통을 볼 때마다 선생님께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독서실에서 몇 번이고 편지를 썼지만 차마 보낼 수 없었습니다.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 갈 때까지 입시에만 전념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엄마 몰래 모았던 소설책도 모두 버렸습니다.

소녀는 집으로 갈 때마다 자신을 기다리는 우체통을 만났습니다. 몇 번이고 우체통 앞에서 서성거리던 소녀는 답답한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우체통을 발로 찼습니다.

깡!

무엇도 채워져 있지 않은 텅 빈 우체통에서 공허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우체통을 쓰다듬고 있던 소녀는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우체통도 울었습니다.

소녀는 결국 입시에 실패했고 가고 싶은 대학에 떨어졌습니다.
엄마는 재수를 해서 더 좋은 대학에 가자며 소녀를 달랬고 소녀는 1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1월부터 입시학원을 등록했습니다.

학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독서실로 이동하다가 너무 배가 고파 편의점에 들어갔습니다.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멍하니 서있는데 창 너머로 우체통이 보였습니다. 우체통이 외로워 보였습니다.
소녀는 갑자기 서글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라면이 다 익어 불어가는데 한 젓가락도 입에 넣을 수 없었습니다.
소녀는 조그만 입술을 오물거리며 혼잣말로 속삭였습니다.

" 선생님 전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엄마는 경영학과를 지원하라고 하네요... 선생님 전 어쩌죠?"

그날 소녀는 편의점에서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사고 말았습니다.
소녀는 독서실 자리에 앉아 책상 위에 편지지를 올려놓았습니다.
연분홍 편지지를 소녀는 쓰다듬었습니다.
그리고 냄새를 맡았습니다. 모래사장 구석에 내팽겨진 젖은 나뭇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소녀는 그 편지지가 마치 자기 자신처럼 느껴져서 용기 내어 펜을 들었습니다.

보고 싶은 선생님께.

고작 한 줄을 썼는데 소녀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두둑 떨어졌습니다.
편지지에 얼룩이 졌습니다. 자신의 친구는 오직 침묵이었던 소녀의 심장에서 언어가 쏟아져나왔고 소녀는 눈물이 마를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다음 문장을 이어나갔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6반 김송희예요. 기억나세요?
.
.
.


소녀는 그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소녀는 우체통 앞에 섰습니다. 가방에서 편지를 꺼내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편지가 소녀의 손가락 틈에서 빠져나가는 찰나 소녀의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가녀린 편지가 텅 빈 우체통 바닥에 떨어지자 '툭' 소리가 우체통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우체통이 파르르르 떨립니다.
우체통 바닥이 푸르게 빛나고 물결이 일렁입니다.
산란하는 빛 속을 뚫고 물고기들이 나란히 쏜살같이 헤엄칩니다.
편지는 점점 거대한 혹등 고래로 변하고 끝없이 드넓은 바다를 가로지릅니다. 고래는 바다를 뚫고 하늘 높이 치솟아 오릅니다.




"김선생! 뭐해? 안 들어가고? 김선생반 학생들 다 모였어! "

강남 입시학원 옥상입니다. 선생님은 놀라며 눈물을 훔치고 잠긴 목소리로 말합니다.

" 아 예 곧 내려갈게요... "

선생님은 손에 들려있던 연분홍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습니다.
한숨을 내쉬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붉게 물든 하늘에 펼쳐진 새털구름 사이로 커다란 고래 모양의 구름이 보입니다. 선생님은 묵직한 우체통처럼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습니다.

-끝-

마지막으로 제목을 정한다.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제목이 제일 좋다.

'눈물바다' or '고래 배달부'

어떤 게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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