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공통주제 <봄> ㅣ 이상은
다리를 다친 선배가 페이스북에 파란 봄 하늘 사진을 올렸다. 이래저래 일이 안 풀리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길래 ‘선배한테도 곧 봄이 올 거예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내 인생에도 봄날을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따뜻하고 포근한 봄의 흔적을 어린 시절 추억에서 찾는다. 소풍 가서 했던 보물찾기, 엄마랑 같이했던 봄나물 캐기 등……. 그중에서 국민학교 입학 전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해성유치원 2년 차, 6살 가을에 부모님이 싸웠다. 아빠에 대한 반발로 엄마는 나와 남동생과 함께 가출했다. 아빠가 완전히 싫은 게 아닌지, 자식 때문에 참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영암 외할머니 집이 아니라 승주 친할머니 집으로 갔다. 가기 전 옆집에 들러 엄마가 하소연했다. 아빠가 없어진 3식구를 찾으러 왔을 때, 엄마가 나와 동생을 데리고 병풍 뒤로 재빨리 숨었다. 그때 엄마 마음은 아마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나?’ 였을 것이다.
집에서는 책과 그림밖에 몰랐는데, 시골집에서 다양한 놀이를 하며 보냈다. 동네 아이들과 눈싸움을 실컷 하고 논에서 썰매를 처음 타보았다. 그림책에서만 보던 연을 날려보기도 하고 말이다. 닭을 쫒아가서 놀라게 하는 장난 때문에 엄마에게 많이 혼나기도 하였다. 날씨가 따뜻해지니까 친척 언니랑 산에 올라가 이름 모를 열매도 따 먹고, 꽃으로 반지를 만들었다. 제일 즐거웠던 놀이는 언덕에서 쌀포대를 타고 내려오기이다.
내 생일 3월 15일, 아빠가 선물로 분홍색 내복을 가지고 찾아왔다. 여느 아침처럼 까치가 우는 소리에 깨서 세수하러 방문을 열었는데, 아빠가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쪼르르 달려가 아빠를 꼭 안았다. 미역국과 생일떡을 맛있게 먹고, 그동안 정이 많이 든 할머니께 ‘우리 집에 빨리 놀러 오세요’ 라고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때만큼 차를 타고 어디를 가는 게 신나는 순간이 있었을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엄마는 나를 학교에 보냈다. 유치원을 3년이나 다니는 게 싫으니까 나도 분명 좋아했을 것이다. 뒤늦게 학교 가기가 힘든지 입학수속을 돕는 동사무소 아저씨게 엄마는 담배 두 보루를 선물로 주었던 게 기억이 난다. 등교 첫날 엄마가 데려다주겠다고 했는데, ‘나 혼자 갈 수 있어요’라며 씩씩하게 학교에 갔다.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챙겨 신나게 걸어가는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1학년 3반 교실에 도착해 문을 열었는데, 선생님과 아이들이 북,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로 연주하고 있었다. 놀라서 멍하니 서 있는데, 선생님이 오전에는 1학년 4반 수업 중이고 우리 반 수업은 오후에 한다고 했다. 시멘트로 만든 응원석에 앉아 괜히 서러운 마음에 펑펑 울고 있는데, 곧 1학년 3반 선생님과 아이들이 오면서 즐거운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받아쓰기는 거의 100점을 맞았다. 한 번은 질문을 낼게 떨어지셨는지, '장충식' 담임선생님이 마지막 문제로 자기 이름을 쓰라고 하셨다. 나는 '장식충'이라고 적었는데 '식충'이가 나쁜 말인 걸 정말 몰랐다. 벽에 다 걸어주는 건데 내가 그림을 특별히 잘 그리는 줄 알았다.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도 잘해 ‘참 잘했어요’ 색종이를 반에서 제일 많이 모은 아이가 되었다. 나는 귀엽고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아 세상에 별로 부러운 게 없는 아이였다. 그러다가 1학년 2학기에 부모님은 다시 싸우기 시작해 결국 이혼을 하였다. 1학기 때는 ‘수’만 있던 성적표에 ‘우, 미’도 있게 되고, 명랑했던 성격이 내성적이 되었다. 작은고모가 미용실에 데려가서 아침마다 묶어줄 사람이 없다며 머리를 자르게 했다.
사람은 과거를 미화시켜 기억한다고 한다. 과거에서 나쁜 면을 약화하고, 좋았던 것을 강화해 기분을 더 좋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학교 입학 전후가 가장 내 인생에 아름다운 봄날로 남아있는 것이리라. 나중에 부모님이 재결합하셨지만 이미 크게 받은 상처를 그때 추억으로 치유하고 있다. 시골에서 잠깐 살 때, 나빴던 일은 기억나지 않고 즐겁게 놀았던 기억뿐이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할머니는 남동생을 분명 더 많이 예뻐했을 것이고, 나는 아빠를 보고 싶어 했을 텐데 말이다. 오히려 당시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다. 할머니 집에 가기 전 옆집 병풍 뒤에 숨었을 때 나는 아빠한테 들키면 어쩌나하고 두려웠을 것이고, 학교 첫날 다른 반 수업을 보고 눈물을 흘렸는데 말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 ‘국제시장’같이 복고물 콘텐츠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진취적인 내가 과거를 그리워하는 내용물에 시간을 쓴다는 게 싫다고 할까?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며 서서히 생각이 바뀌었다. 과거의 추억으로 현실의 고담함을 잠시 잊고, 마음속 상처들을 치유한다. 어렸을 때 엄마 없는 아이라는 사실을 들키기 싫어서 친구를 집에 데려오지 않았는데 이제는 담담하게 글을 쓰고 있다. 재편성된 과거 덕분에 역설적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됐다. 내 인생의 봄날들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에 흐뭇해지며 앞으로도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