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연애, 부품, 시스템적 사고

6월 공통주제 <연애> ㅣ 곽정빈

by 한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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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또 좋아하는 책이 헤르만헤쎄의 데미안입니다. 그래서인지 평소 인간 본연의 양면성을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말을 곧 잘하곤 합니다.


작가프로필 ㅣ 곽정빈

저는 3년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난 1년간 세계여행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두 눈을 황홀하게 채우는 수많은 풍경들보다도 여태껏 가져보지 못했던 무지막지한 혼자만의 시간을 대면해야 했던 것이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들을 글을 쓰면서 채워 왔습니다. 글을 쓸 때 비로소나 나 스스로가 나 다워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희미해져만 갔던 나의 자아가 글을 쓰면서 뚜렷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된 제 인생의 2막에서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글을 써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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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지난 연애를 떠올려 본다.


사내 직장 동료였던 그녀와 나는 물리적인 거리는 가까웠지만 그래서 멀었다. 다소 외향적인 나와 내성적인 그녀의 생활방식과 반경이 달랐고, 삶의 중심이 달랐으며, 서로의 나이 차이만큼 각자의 시간은 다르고 아득했다. 그녀는 내게 자주 아프다고 했고 내 퇴근 시간이 늦어질수록 더 아프다고 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매번 수화기 너머 건너편에서 서로에 의해 오해되었다.


서로가 이별을 직감하고도 그 과정은 1여 년간이나 지난하게 이어졌고, 그 기간 동안 나는 내 안에 점차 새겨져 가는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기준이었다.

그녀는 그 이후로 내가 다른 연인을 대함에 있어 직접적인 기준이 되었다.

그녀는 나라는 시스템을 오작동시키는 잘못된 부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실연의 아픔과 상처는 생각보다 빠르게 잊혀 갔다. 잘못된 부품으로 인한 불량은 결국 다른 부품으로 대체되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삐거덕대며 오작동하는 나를 안정적으로 만들 꼭 맞는 부품을 찾으면 될 것이었다.내게는 오랫동안 몸소 체득한 확실한 기준이 있으니까.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나는 연애에 번번이 실패했다. 나는 상대와 예상할 수 있는 어려움을 쉽게 피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연애는 언제나 내가 예상할 수 있는 울타리 안이었던 것이었다. 예상할 수 있는 연애는 아프지 않았지만, 결코 뜨겁지도 설레지도 않았다.


내 안에 새겨진 것은 기준이 아니라 커다란 결핍의 구멍들이었다. 한낱 소슬바람에도 많이 시렸던 그 구멍들은 마땅히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지만,난 아주 쉽고 편리한 변명으로 이를 유기했던 것이었다. 달콤한 자기 위안은 마치 마취제처럼 나를 몽롱하게 만들었지만 결코 나를 치유하지는 못했다.


철학자 들뢰즈는 말했다.

‘사랑은 유기체를 위태롭게 만든다’

적군을 사랑한 병사는 적탄에 목숨을 잃고 가난한 자를 사랑한 자는 그 사람의 가난에 의해 고통받듯이 어쩌면 사랑은 유기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항상 연애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내 루틴의 삶을 위태롭게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아마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맨다는 것은 그 달콤한 위태로움이 내 자아라는 시스템을 완성하는 진정한 의미의 핵심부품이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 그 어느 것도 자신보다 큰 것은 없기에 상대는 대상일 뿐이고 내겐 그저 부품일 뿐일지 모른다. 그리고나마저도 내 연인에겐 결국 부품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을 완전무결하게 만드는 존재로써의 부품이아니라, 각자 시스템의 불완전함을 자각하게 하는 의미로서의 부품이라는 것이다. 상대에게 의존할수록 상대에게 요구할 것이고 내 자아는 궁색해질 것이다.


아픔 없이 성숙할 수 없듯이 사랑한 만큼 그 사랑이 남긴 상처를 직면하고 감내하라. 그 것이 지나간 연인에 대한 예의이자 다가올 연인에 대한 준비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삐거덕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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