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연애라니

6월 공통주제 <연애> ㅣ 임나무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1-22 오후 1.57.50.png 책 먹는 여자
매일 500 페이지를 읽습니다. 제가 글을 쓴다면 '카프카'처럼 쓰고 싶어요. 카프카를 읽으면 약간 푸르스름한 흑백영화를 보는 기분이 듭니다.


작가 프로필 ㅣ 임나무

취미가 독서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엄청난 독서광.

자신이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어려운 주제다. 기본적으로 연애에 관심이 없다. 나이 마흔셋, 다소 율법주의적 기독교 신자이며, 여중-여고-여대를 나왔고, 기혼에 애 둘, 모태솔로로 살다가 딱 한 명의 남자와 1년간 교제하여 결혼한 빈약한 연애경험에, 그마저도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그 시절을 뒤돌아보고 싶지 않아진 지 오래니 아름다운 연애를 논하기엔 여러모로 부적절한 데모그라피다. 아마 무슨 글을 쓰더라도 쓴 즙이 배어 나올 듯하다.


게다가 나의 이상향은 샤이어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들의 보금자리 말이다. 나지막한 집에서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오늘 먹은 것 내일 또 먹고, 오늘 한 일 내일 또 하며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변함없이 이어지는 평화롭고 무료한 세계. 샤이어에는 격정적 로맨스나 고도의 밀당전, 극적 갈등이나 긴박한 과제가 들어설 일이 없다. 하물며 꽃미남 영웅도 반갑지 않다. 그 곳의 가장 큰 이벤트는 빌보의 생일잔치 정도다. 내가 꿈꾸는 삶은 그런 것이다. 설렐 일없는 삶 말이다.


그런 나에게 감정의 강한 부침을 요구하는 연애는 경계대상이다. 아, 미리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내가 연애 자체를 혐오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도한 범람에 대해 까칠하게 구는 것뿐이다. 연애는 필요하다. 인류역사 초기에 남성과 여성의 짝짓기는 폭력의 형태에 의존했다. 그러던 것이 점차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형식이나 기교가 발전하였다. 고대 신화에서는 거리낌 없이 여성을 도둑질하고 강제로 관계를 맺던 제우스가 있었다면, 근대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애만 태우다가 자기 생명을 버리는 베르테르가 있다. 그리하여 여성과, 여성화된 남성의 성적 결합을 모색하는 진보된 방식이 오늘날의 연애인 것이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할 일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발전이란 하나의 흐름인지라 어느 시점, 어느 지역에서는 분명 과도한 범람이 발생한다. 나는 지금이 그 시기인 것 같다. 바야흐로 '연애의, 연애에 의한, 연애를 위한' 시대다. 결혼 적령기의 남녀가 상호 간의 의사를 타진하는 일련의 행동이었던 연애의 범주가 지금은 유 초등 어린 아이들부터 기혼자에 이르기까지 무차별 확장되어 있다. '썸'은 연애의 시기를 훨씬 앞으로 당겨놓았고 '브로맨스'는 연애의 대상에 동성을 포함시키는 식이다(브로맨스와 동성애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도 확실히 해두자).


시대를 반영하고 조장하는 미디어도 다를 바 없다. 이제 주부들이 드라마 남주에 빠져 허우적대며 남편을 '오징어'로 칭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정당한 일이 되었다. 되레 그녀들은 드라마 마케팅의 메인 타겟으로 우대받는다. 영화도 거장급 감독들이 나오는 시대이긴 하지만 그들이 어떤 거대한 주제를 다룰 때조차 그 주제를 표현하고자 반드시 연애와 폭력의 알레고리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것은 거의 한국 영화의 공식이 된 듯하다. 그것 말고는 끌어다 쓸 알레고리가 정녕 없는 것인가.


미디어와 트렌드를 앞세워 시도 때도 없이 설렘 주의보와 심쿵 경보를 무차별적으로 발령해대는 연애의 범람은, 나의 샤이어까지 밀고 들어와 무료한 평화를 잠식한다. 특히나 로맨스를 자칭하는 불륜을 본의 아니게 오래 지켜보며 공범이 되어야 했던 경험도 나에게 연애에 대한 경계를 강화할 이유를 주었다. 기혼녀였던 나의 보스는 회사 워크숍에, 역시 기혼인 남친과 커플티를 입고, 열 살짜리 딸의 손을 잡고 직원들의 숙소에 찾아왔다. 커플티를 선물한 직원들에게 직접 '착용 인증'하기 위해서였다. 잘 어울린다는 환호성을 뒤로 하고 세 사람은 유유히 그들의 숙소로 사라졌다. 그 사건은 범람하는 연애의 끝이 어디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것은 연애의 시대를 지나 잉태될 또 다른 폭력으로의 회귀, 지킬 것이 남지 않은 공허한 폐허였고 평화의 종결이었다.


나의 샤이어에는 지킬 것이 많다. 그것들은 오직 평화로만 지켜낼 수 있는 것들, 작은 생명체들이다. 오늘 먹은 것 내일 또 먹고, 오늘 한 것 내일 또 해야 지킬 수 있는 어린 생명들 말이다. 샤이어를 초라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화려한 물랑루즈는 미안하지만 사양하겠다. 작은 집이 전부인 줄 알고 저녁 반찬과 내일 할 일을 고민하며 방바닥의 머리카락을 줍는 이 남루한 하루가 나의 샤이어에 어울리는 삶이다. 잠들기 직전의 내 마음에 유시진 대위가 아니라 내 못생긴 아들과 딸로 빈틈없이 채워지는 이 어미로서의 하루가 나에게 부족함 없는 삶이다.

연애라니... 나의 샤이어엔 가당치 않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기적,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