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기적,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일

6월 공통주제 <연애> ㅣ 해원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4-01 오후 2.14.40.png 지구여행자


작가 프로필 ㅣ 해원

현재 요가원에서 일하면서 요가를 배우고 있고, 주말에는 종종 커피숍에서 일하고 있어요.

요가로 신체를 단련하고, 글쓰기를 통해 정신을 단련해서 초인이 되고자 합니다. (...)

필살기는 음... '머뭇거림...'입니다. -_-




<기적,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일>




자판기 앞에서 너는 어색하게 말을 건넸지

괜찮다고 하는데도

커피가 뜨겁다고 후, 불어서 나에게 주었다.

나는 그 모습이 우스워 후후, 웃었다.

어쩜 좋니.

너는 자판기 커피도 이렇게 귀엽게 만드는 재주가 있구나.


해가 질 무렵 공원 벤치

발 밑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

그 옆에 농구하는 남자아이들의 소리

이어폰 한 쪽씩 나누어 끼고서 들은 이름 없는 밴드의 노래

너가 좋아하는 곡은 뭐야, 하고 찾아주다가 손이 부딪히고

꼴랑,

그것뿐인데도

이 모든 순간이 영화처럼 특별해지는 기적


바보같이 흘리고 먹고 있으면

칠칠하지 못하게,

웃으면서 그것을 닦아주는 일

손을 들어 너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일

돗자리를 챙겨들고 도시락을 싸고


유치하고

번거롭고

식상하고

사소한 것들이

해일처럼 나에게 와서 의미가 되는 기적

내가 존재함이 너로 인하여 증명되는 기적

내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너의 웃음이 확인해주고

너를 통해 내가 새롭게 탄생하는 기적

난 그런 생각을 했었어

어쩌면 그것이 연애가 아닐까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어느 날

누군가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으면

그저 입가에 조용한 미소를 띠고서

글쎄요, 그건 아마도

아무것도 아닌 일

그렇게 밖에 대답할 수 없는

가슴 저며오는 아스라함이

어쩌면 그것이 연애, 바로 네가 아닐까


오늘은 너를 생각해,

기적과 아무것도 아닌 일 그 사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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