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친구에게 배우는 것들

시시콜콜한 이야기 ㅣ 이정민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2-03 오후 2.30.52.png 대구아가씨
전 건망증이 심해서 병적으로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전 10시반에서 11시까지 무엇을 했는지, 점심은 무엇을 먹었는지, 물은 몇 잔을 마셨는지...흘러간 시간 속에서 사라질지 모르는 감정들까지도 세세하게 기록하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이정민
직장인. 성격이 무척이나 쾌활한데 힘든 내면을 보호하기 위한 과장일지도 모름.




옛날에 공자가 사람이 3명 지나가면 그 중에 한명은 배울 것이 있어 스승이라고 하였다지만 세상에 아무리 배울 만한 사람이 많아도 '그건 그 사람 일이지 뭐 흥' 이라고 생각해버리면 사실 세상에 배울 만한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 되어버린다. 친구는 나와 가깝고 비슷하지만 다른 어떤 존재라는 점에서 내가 그와 나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보고 고쳐나가며 친구는 나의 스승이 되어가는 것 같다.

나보다 2살 많은 친구가 있다. 한국 사회는 경어가 발달하고 위아래 서열이 중요하여 친구=동갑 이라는 생각이 만연한데, 그녀는 생물학적으로 나보다 2년 정도 먼저 태어났지만 '친한 언니'가 아니라 정말로 친구이다. 그녀와 내가 친구가 된 것은, 그녀가 나를 친구로 생각해줘서다. 앞서 한국사회를 들먹거리기는 하였지만 사실 나야말로 권위적인 인물이다. 아직 나의 권위적인 면모가 나타날 만큼 나에게 지위가 주어지지 않아서 미처 몰랐을 뿐이지만, 연구실에서 새로 온 후배에게 약 한 달 가까이 존댓말을 썼던 것도 (나중에 그 후배가 그런 점이 좋았다고 말해줘서 새삼 깨달았다) 사실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대접받고 싶어서인 것 같고, 특히나 내가 한 살 어린 사람과 친구라며 서로 반말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는 점에서 더 그런 것 같다.

나는 2월에 태어나서 초등학교를 일찍 입학했고 흔히 말하는 빠른 90년생이다. 달수로 치면 별로 차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년으로 나이를 구분하는 우리나라 제도에서는 1년 언니들과 학교를 같이 다닌 셈이다. 대학교를 다닐 때는 그나마 학번으로 나이를 묻는 질문에 대답하곤 하였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나이를 묻는 질문에 조금 뻘쭘해 하며 학번으로 나이를 대답한다. 나는 08학번인데 09학번들과 친구가 되어버리면 나의 대학교 1학년이 삭제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득바득 우겨서 빠른 90이 아니라 08로서 살고 있다.

그녀가 나를 친구삼아 준 것은, 대학교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서로 나이를 묻지 않아서 당연히 동갑이라고 생각하고 친구를 했었던 것으로 시작한다. 그 후 그녀의 자취방에서 짜장면을 시켜먹으면서 그녀가 재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어색하게 ".. 오 ... 그럼 미영언니..... ?"라고 말하는 순간 그녀가 질겁하며 그러지 말라고, 자기는 나이를 잊고 사는데 너가 그렇게 나이 이야기하면 새삼 나이를 깨닫는다고 했을 때부터 그녀와 나의 나이차는 우리가 술을 마시며 내가 연장자 먼저 술잔을 채워줘야 된다며 너스레 떨 때만 존재하게 되었다.

처음 사람을 만났을 때 나이를 물어보고 서열을 정하는 건 정말 고루한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그 서열 속에서 누구까지는 나랑 동갑이니까 친구이고 아직 충분히 친하지 않지만 반말해도 되는 사이라고 지정하는 것도. 나랑 쟤랑 친하지 않고 그러니까 나는 계속 서로 높임말을 썼으면 좋겠는데 분위기상 반말을 허용해야 되는 상황에서 걸맞은 예일지는 모르겠지만 내 친구 미영이를 생각하며 나도 위아래로 2살까지는 반말 쓰는 친구 후보에 넣어줘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 중에 타지에서 온 학생은 그녀와 나 뿐이었고, 나는 곧잘 그녀를 따라다니고 데려다달라고 징징거렸던 것 같다. 하루는 아마 그런 이유로 그녀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녀가 어제 곰플레이어에서 국화꽃향기를 봤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디선가 봤던 그 책의 표지를 떠올리며 귀를 기울였는데,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이야기하며 후배 남주가 선배 여주에게 고백하고 여주에게 장난치지 말라며 배를 맞았을 때, 남주가 '배가 아니라 가슴이 아팠다'는 나레이션이 나오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며, 그 이야기를 하는데 미영이는 원래 눈이 가로로 긴 큰 눈인데 울상을 지으니 눈망울이 그렁그렁했다.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국화꽃향기를 봤는데, 혼자 보았던 국화꽃향기는 생각보다 슬프거나 감동적이지 않았다. 미영이를 통해 기대를 너무 많이 한 것일 수도, 혹은 미영이를 통해 이미 감상을 마친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컨텐츠는 그의 내용보다는 그에 도달하는 방식이 그것을 감상하는 데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는 음식에 대한 태도. 미영이와 한 학기 정도 같이 살았던 적이 있다. 그녀는 먹는 것을 좋아하여 맛있는 음식을 다양하게 자주 먹어서 그녀와 함께 있다 보면 먹을 일이 많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여자친구를 만나기 시작하면 그렇다지만 그녀의 남자친구는 내가 미영이의 식습관을 의식해서인지 볼 때마다 살이 쪄 가는 게 느껴졌었다. 그녀가 자신의 음식철학에 대해서 특별히 얘기한 적은 없었지만, 옛날에 인터넷에서 읽었던 글 중에 글쓴이의 친구 중에 하나가 밥을 진짜 열심히 챙겨먹는데 같이 놀러가거나 하면 진짜 편리하다고, 글쓴이의 아이들까지 다 챙겨 먹일 정도로 열성적이라며, 그 친구의 음식철학은 '오늘 먹지 못한 한 끼는 다시 오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이건 정말 미영이의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친구 옆에 있다 보니 비슷해진 것 같은데 하루는 딸기파르페가 갑자기 먹고 싶어서 그걸 사러 갔다가 카드가 잔액부족으로 안 긁혀서 현금을 끌어 모아 사서 먹었다. 그러고는 독서모임 친구들한테 이거 진짜 맛있다고 자랑했더니, 내 주머니 사정에 대해 알고 있던 애들이 '오늘만 사는 누나...'라며 재밌어했다. 그리고 그 카톡을 보면서 이건 완전히 미영이 얘기인데, 라고 생각했었다.

네 번째, 종교에 대해서 미영이를 포함한 친구들은 제각기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데 친구들 사이에서는 종교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는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서로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미영이는 어머니께서 성당을 다니시는데 남자친구는 기독교라고 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랑 기독교와 불교보다 기독교와 천주교가 더 대립이 심하다던데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걱정했었다. 그런데 미영이는 템플스테이도 가끔 하고 남자친구랑 절로 놀러도 다닌다며 '나는 교회든 성당이든 절이든 어디든 종교건물은 다 좋은 거 같아, 들어가면 마음이 편안해져'라고 했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남자친구는 기독교라서 그와의 갈등을 예상하고 있는데 미영이의 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러고는 남자친구를 이해하기 위해 관련 서적을 좀 읽었는데, 심층종교라는 단어에서 미영이가 의도치 않았을 수도 있지만 미영이의 말과 같은 맥락을 찾았고, 아마 이것이 나의 해답이 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공자가 지나가는 사람 3명 중에 한 명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고 한 것을 보면, 나 역시 1/3의 확률로 스승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평소에는 흥청망청 살지만 가끔 친구에게 받는 편지에서 ‘너의 ~면이 난 참 좋은 것 같아. 나이로는 동생이지만 언니 같아.’라는 문구에서 만화에 나오는 어설픈 선생님처럼 주위를 둘러보며 헛기침을 하게 된다. 나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많은 문제를 만날 것이다. 내 주위에 누구든 비슷하겠지. 하지만 서로서로 각자가 알지 못할 때도 해답을 주고 있으니까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그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는 일.


KakaoTalk_20160620_190303286.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행편 4. 함께 여행을 하다